배우는 자의 일상1
합정동에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들만 모여 있는 댄스학원 “댄싱보라”가 있다. 코로나 시기 방탄소년단에 푹 빠진 나는 신곡 출시 기념 챌린지 이벤트에 도전하려고 학원을 찾았다. 전화 통화만으로도 선생님은 내게 하늘이 주신 “그루브”는 전혀 없다는 걸 단번에 파악하고, 죽었다 깨어나도 하루 만에 배울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운동시설에서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던 시기라 숨이 차도 얼굴을 가릴 수 있기에 시작했다. 나이나 하는 일을 묻지 않고, 방탄 이야기면 화기애애한 주제가 되는 곳이라 맘에 들었다.
아이돌 체험 수업이라고 할까, 동선 안무 수업은 7명 이상 모여야 각 멤버를 맡아서 그대로 안무를 배울 수 있다. 인원이 많아서 더블 캐스팅되면 여유가 있지만, 한 멤버 자리라도 빠지면, 그날 수업은 진도가 나갈 수 없다. 실력보다 성실함이 필요한 수업이었고, 그루브보다 암기력이 필요한 수업이었다.
목요일 저녁 7시 삼성동에서 합정동으로 퇴근, 다섯 곡의 동선 안무를 마친 스스로를 칭찬하며 일주년 기념, 팬클럽을 상징하는 보라색 타월을 만들어 수업을 함께 듣는 사람들에게 돌렸다. 공들인 시간만큼 실력이 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들과 거울을 보면서 춤을 추는 어색함과 부끄러움은 익숙해졌다. 반 박자 느리던 동작도 조금씩 맞추어져 갔다.
친구들은 웃었다. 관절 외에는 접히지 않은 뻣뻣함으로 구체관절 인형이라 불리던 내가 댄스 수업을 받고 있다니 가족들은 어이없어했다.
“방탄을 좋아해도 엄마처럼 춤을 배우러 가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거야. 그 사람들은 엄마 나이를 알아?”
“아니 모르지. 추측은 하겠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었어.”
용감함과 무모함의 중간쯤 애매한 마음으로 수업은 4년째 진행형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어쩌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못하는 것을 해보는 도전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도 있다. 학원에서 만난 아미들이 알려준 노하우 덕분에 십만 명의 경쟁을 뚫는 피켓팅에 성공하고. 혼자 가는 콘서트 장에서도 외롭지 않다.
주변에 “혼자서 아무것도 못해”. 혹은 “이 나이에 혼자 무슨 재미로 하냐”고 말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 나이가 들면 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가 나이들 때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 아닐까? 누군가 알려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배우러 가야 한다. 나이를 핑계로 하고 싶은 것 앞에서 망설이는 친구들이 있다면 스스로 에이지즘*을 만드는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시간을 그냥 보내면 나이만 먹지만. 배우는 사람에게는 경력이 된다.
주식장이 온통 파란색인 어제, 정지우 작가의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를 다시 펼쳤다. “내가 시간으로 쌓은 어떤 기술이나 취향, 능력, 태도 지식 등은 돈이 없어져도 남는다. 그것들은 내가 길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며 삶의 근본이자 자존감의 바탕이 된다.” ( P.142)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서 하나씩 배워보는 중이라, 퇴사 후 요즘 일정은 고3아들보다 빼곡하다.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발견하는 중이다.
참고:
에이지즘 (Ageism) : 나이를 이유로 노인들을 차별하는 사회적 편견, 연령주의 , 연령차별주의. 노인과 노화과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담김 고정관념을 말함. 1969년 로버트 버틀러가 제안한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