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니여비 그림책방> 사장님 인터뷰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해요.
1시간 30분을 달려, 왜관역에 도착했다. 선글라스를 장착한 사장님이 차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사장님은 멀리서 다가오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셨다. 딱 봐도 작가의 기운이 느껴졌다고 하셨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니여비 그림책방>은 기차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더 가야 할 만큼 외곽에 있었다. 가는 동안, 초면에도 불구하고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낯 가리는 방법이 꽤 외향적인 나는 사장님이 나와 같은 동족이라는 걸 쉽게 눈치챘다. 원정 글방을 위해 이것저것 여쭤보다가 흘러내리는 대화를 양동이에 담고 싶어, 두뇌 에너지를 기억하는데 쏟아부었다.
처음에 책방 여신 계기가 있을까요?
사장님
책을 좋아하는데 빌리는 게 항상 아쉬웠어요. 집에 가져다 놓고 자꾸 보고 싶잖아요. 마음대로 많이 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순진해서 취미처럼 가볍게 생각했다가, 올해 벌써 7년 차에요. 더 오래 하신 분도 많아요. 그분들 보면 힘들어도 어떻게든 방법이 있는 것 같아 안심도 되어요.
우와. 그림책이 진짜 많네요. (감탄)
사장님
그래도 부족해서 오늘 또 주문했어요. 안 팔려도 계속 주문해요.
'원정 글방*'을 신청해주신 계기가 있을까요?
(*글쓰기 모임을 위한 책방을 모집한다는 '원정글방' 프로젝트를 내가 진행하고 있다.)
사장님
저는 책방에 사람들이 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책들이 주로 아이들 대상이긴 하지만, 가끔 어른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모임이 있는 날이면 매대에 있는 책들이 싹 바뀌어요. 책들이 수시로 이사 다녀요.
파는 게 아니더라도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알릴 기회라 생각해서 저는 신청했어요.
책방에서 모임이나 활동을 자주 하세요?
사장님
교육청 프로그램으로 나가서 수업도 하고, 여기 책방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모사나 필사 같은 프로그램도 운영해요. 서점과 강사 타이틀 중에서 고르라면 전 무조건 전자거든요. 근데 서점만으로는 유지가 힘들어요. 영수증 끊는 날이 드물어요. 서점이 힘들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매번 볼 때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막 나와요.
진짜 좋아서 그냥 하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그래서 강사 일을 병행해야 하는데 책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요. 실제로 아이들이 이런 수업 또 열어달라는 좋은 후기를 들을 때면 힘도 나요. 다음에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그림책을 살 때도 있고요.
아이들이 주요 고객이네요.
사장님
이 동네에 책방이 여기 하나밖에 없고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지나가다가 엄마한테 전화 오면 "여기 그니여비 책방!"이라고 하는 걸 듣곤 해요. 평소에 문을 활짝 열어두거든요. 아이들이 편하게 들어와서 책 구경하라고.
아이들에겐 여기가 랜드마크네요.
사장님
그게 제 희망 사항이에요. 가끔은 여자애들이 놀러 와서 옆에서 ‘오늘 학교에서 있잖아요~’하면서 재잘재잘 떠들어요. 하도 오래 떠들길래 ‘나 일하는 중인데.’라고 해요. 그러면 쿨하게‘다음에 또 올게요.’하고 가요.
어릴 때, 사장님에게도 이런 공간이 있었을까요?
사장님
제가 어릴 땐, 동네 가게마다 다 들어가서 놀았어요. 동네 두붓집에 아이들이 앉았다가 가고, 아이스크림 집도 지나가면 찌그러진 메로나 공짜로 주고 그랬어요. 그니여비 책방도 아이들이 편하게 들어와서 놀다 가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책 가운데, 사장님만의 인생 책이 있을까요?
사장님
그럼요. 제가 직접 읽어드릴게요. <별과 나>라는 그림책이고요. '삶의 지침서' 같은 책이에요. 확김에 책방을 열고 월세도 못 내면서 많이 불안했어요. 가끔 그런 시기가 있잖아요.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는 시기. 사실, 매몰되어 있을 때는 잘 몰라요. 이 책을 읽고 내가 지금 그런 시기이라는 것을 인식했어요.
사실, 불안하기만 했던 건 아니거든요. 아침에 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는 안정감도 있고, 내 마음대로 책을 넣었다가 뺐다 하는 즐거움도 있고요. 주위에 가족들과 친구들의 응원도 7년간 책방을 운영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어요. 이후로는 여유를 좀 찾았어요.
그래서 아이들도 억지로 데려오려고 하진 않아요. 저는 모임에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들이지는 않거든요. 인원수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해요.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손해날 게 없으니까 안 하면 그만이잖아요.
요즘 제가 많이 하는 생각이 '아님 말고'에요. 손님 없어도 아님 말고, 모객이 안되어도 아님 말고!
요즘 제 불안은 원정 글방인데요. 친구가 제 콘텐츠 보고 궁상 맞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니, 할 맛이 안 나더라고요.
사장님
전혀 궁상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한 곳에 가만히 머물러서 내 것만 이렇게 고수하는 것보다 어쨌든 돌아다니면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그중에 단어 하나는 얻어오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남는 장사이지 않나요?
저도 플리마켓 같은 데에 나가면 그런 말을 종종 들었어요. 다들 농산물, 핸드메이드 공예품 들고 오는데 한 쪽에 끼여서 책 파는 게 별로지 않냐고 하는 거예요. 그때 제가 했던 말이 있어요.
"책 한 권 사주지도 않을 거면 조용하자."
작업실도 있고 글 쓸 일도 많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뭐라도 해봐야 하잖아요.
<별과 나>처럼 모든 책이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와 상황이 들어맞을 때 인생 책이 되는 거잖아요.
사장님
맞아요. 시시했던 책도 딱 떠올리게 되는 날이 있어요. 그 타이밍에 생각나는 그림책이 있다는 것도 행복해요.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단해요. 밤에도 갑자기 책 보러 가게에 와요.
<별과 나> 한 권 살게요. 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시는 분은 처음이에요.
사장님
정말요? 그림책은 너무나 해석하기 나름이다 보니까 뭘 갖다 붙여도 다 통용이 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딱 갖다 붙이면 ‘맞다. 이 책이 이렇게도 읽힐 수 있지.’라는 걸 배워요.
그니여비 책방만의 앞으로의 계획이 있을까요?
사장님
아이들에게 변하지 않는 동네 책방이었으면 좋겠는데, 언젠가 이 가게를 나가야 하는 날이 오겠죠. 아직 명확하진 않은데 또 다른 동네에서 다른 이름으로 책방을 열 것 같아요. 그땐 시집도 좀 들이고 제 취향을 더 듬뿍 부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