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대찬사
건강검진 결과로 이상소견이 나왔다. 고지혈증 수치가 평균 이상을 벗어났으니 재검사를 받아 야 한다는 것이다. 러닝을 매일 같이 갔을 적에는 괜찮더니 고작 한 달을 쉬었다고 범위가 벗 어났다. 정말이지 투명한 몸뚱아리다. 사실, 고지혈증의 이상 수치는 우리 집에서 늘 먹는 역 할을 담당하는 나에게 생소한 일이 아니다. 학창 시절, 엄마가 아침잠이 많은 나를 한 번에 깨우는 주문은 일종의 협박이었다.
“지금 안 일어나면 언니들이 삼겹살 다 먹는대.”
그러면 벌떡 일어나 식탁 앞에 얌전히 앉았다. 언니들은 아침부터 삼겹살을 야무지게 먹는 나 를 보며 경악했다. 이 외에도 빵과 과자, 막창을 좋아하는 나는 고지혈증을 키링처럼 달고 살 았다. 엄마는 내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꾸준히 요리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식구가 입이 짧아서 나만큼이나 먹일 맛이 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손 이 장군급이라 한가지 메뉴를 할 때면 솥과 맞먹는 크기의 냄비를 꺼냈다. 비 오는 날이면 엄마의 필살기인 솥 냄비 꺼내는 소리가 집 안에 퍼졌다. 철커덕 소리를 감지 하고 냉장고 문을 열면 휴지 중인 밀가루 반죽이 놓여있었다. 나의 최애 메뉴인 밀가루 수제 비를 만들기 위한 반죽. 냄비에 멸치 육수가 펄펄 끓으면 엄마와 나는 합을 맞춘 듯이 밀가루 를 떼어 넣었다.
“너무 두꺼우면 맛없어. 얇고 넓게 펴야 해.”
물컹한 반죽이 손에 쩍쩍 붙어 얇게 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의 수제비는 반대편 이 훤히 비칠 정도로 얇았다. 반면에 내 수제비는 떡 정도의 두께였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참 치 액을 살짝 넣어 마무리하면, 나는 식탁에 수저를 깔고 식구별로 그릇을 꺼냈다. 사발 2개 와 일반 국그릇 3개. 사발의 주인공은 아빠와 나다. 아빠는 수제비 국물이 출렁이는 사발 앞 에서 신난 내 얼굴을 보더니 엄마를 향해 잔소리를 쏟아부었다.
“애 배를 터뜨리려고 하는 거야? 초등학생이 먹는 그릇이 이게 뭐야?”
시원한 멸치 육수에 포슬한 감자, 쫀득한 수제비를 한 숟갈 호호 불어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아빠는 먹어도 먹어도 어떻게 줄지를 않는다며 포기 선언했지만 나는 국물까지 싹 싹 긁어먹었다. 엄마는 몇 안 되는 수제비를 먹지도 않고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를 텅텅 두드 리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깨너머로 볼 때는 엄마의 수제비는 요술 지팡이였다. 뚝딱하면 휘리릭 나타나서 쉬워 보였 다. 근데 어른이 되어 직접 만들어보니,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멸치만 넣으면 시원할 줄 알았던 육수는 밍밍했고 밀가루와 물만 있으면 될 줄 알았던 반죽은 슬라임이 되어버렸다. 한참을 자취방에서 수제비와 씨름한 끝에 이상한 죽이 완성되어 있었다. 엄마에게 처음 만든 수제비 아니 죽을 사진 찍어 보냈다. 곧바로 전화가 오더니 엄마가 한참을 웃었다.
“아이고. 밀가루에 식용유 넣었어? 식용유를 한 바퀴 둘러야 반죽이 쫀쫀하지. 그리고 감자부 터 넣어야 해. 익는데 오래 걸리는 순으로 넣어야 해. 국물은 조선간장도 넣고. 엄마 없이 어 떻게 살래?”
수제비의 비밀은 마법이 아닌 노하우였다. 먹는 역할만 해온 사람은 노하우를 모른다. 그동안 먹은 수제비가 얼만데 이런 조리법 하나 모르다니 민망했다. 엄마는 집에 오면 얼마든지 해줄 테니 괜히 고생하지 말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다시 밀가루를 꺼내 들었다. 엄마가 알려준 조리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용했다. ‘식 용유 한 바퀴, 조선간장, 감자부터….’ 머릿속으로 몇 번을 되뇌며 반죽을 치댔다. 결과는 성 공적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자랑했다. 수제비가 망했을 때처럼 유쾌한 반응을 기대했다. 근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시들했다.
“그래. 좋네. 엄마는 이제 딸한테 뭐해주지?”
엄마의 한숨 섞인 말에 혼란스러웠다. 자식이 커서 잘 먹고 잘살면 좋은 게 당연한 게 아닌 가. 엄마의 어떤 마음을 내가 몰라주고 있는 건지 오래 곱씹었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자신의 요리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마치 요리하는 역할은 엄마, 먹는 역할은 자식 으로 딱 정해둔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만든 수제비로 인해 엄마라는 회사로부터 실직자가 된 기분이 아니었을까. 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을 동경했다. 그래서 엄마가 자신을 엄마로만 한정해두는 게 안타깝고, 이제부터라도 주방에서 벗어나는 좋은 전환점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30년을 한 길만 걸은 사람이 방향을 순식간에 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사무직을 때려 치우고 현장에서 일하라고 하면 아득해진다. 엄마에게 허술한 수제비로 응원을 보내주고 싶 다. 아직까진 나도 엄마가 필요하고 엄마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