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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루의 클래식 Sep 14. 2017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여름과 가을 사이에 듣는 현의 소나타

안녕하세요.

얼마만의 연재인지 모를 만큼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아무 공지 없이 연재를 중단해서 구독자 분들께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간에 개인적인 일과 함께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연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한 상태이고 앞으로 개인적인 일이 끝나는 11월까지는 매주 연재는 힘들지만 되도록 꾸준히 연재를 하고자 계획하고 있어요. 

조금 더디게 연재되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리며, 이번 주에는 그만큼 아름답고 좋은 곡을 준비했으니 기대해주세요.^^


요즘 건강을 위해서 매일 1시간씩 꾸준히 걷고 있는데요. 

낮은 여전히 덥지만 저녁 공기가 제법 쌀쌀해서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들으면 딱! 좋을 만한 음악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곡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입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기구한 삶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슈베르트는 빈 근교의 리히텐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농민 출신의 교사였고, 첫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 14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슈베르트는 그중 넷째였습니다.

슈베르트는 아버지와 형에게 피아노 기초과정만 배웠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여 8세부터는 교회 오르가니스트 홀처에게 기초 교욱을 받았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 출생이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은 금방 소문이 퍼졌고 왕실과 황실 예배당의 스카우트로 빈으로 거처를 옮겨 당대 최고의 음악교육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모차르트의 생애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고, 그가 지휘했던 빈 궁정 소년합창단에서 하이든과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빈 궁정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던 슈베르트는 변성기에 접어들면서 아버지의 요청도 있고 해서 16세의 나이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사범 학교에 교사로 취직하게 됩니다. 

그는 안정적인 생활을 꿈꿨지만 정식 발령을 받지 못해서 가난을 면하지 못했고, 결국 다시 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빈으로 돌아와서도 지휘자가 되려고 애를 썼으나 기회들이 모두 좌절되었고 근근이 가곡을 쓰면서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던 슈베르트에게도 최초이자 최후의 성공적인 연주가 있었습니다. 

1828년 열었던 작곡 연주회가 성공하면서 교향곡과 현악 5중주를 작곡하게 되고 생애 처음으로 큰돈을 손에 쥐게 됩니다. 

하지만 그해 11월부터 장티푸스 진단을 받고 며칠 지나지 않아 31세의 나이로 일찍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세계를 가장 즐겁게 하리라
   
아르페지오네

아르페지오네는 1823년 빈의 악기 제작자인 슈타우퍼가 고안한 악기로, 기타-첼로 혹은 기타-다모르라는 별칭을 가졌고 첼로와 비슷한 크기에 기타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활로 문질러 연주하는 찰현악기입니다. 

아르페지오네는 6개의 현을 가졌으며(첼로는 4현 악기)  첼로보다 고음역대의 악기였습니다. 

마치 콧노래를 부르는 듯한 독특한 정취를 가졌고, 약 10년가량만 사용되어서 현재 남아 있지 않은 악기입니다. 

현대에는 이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첼로가 주로 사용되는데, 사실 첼로 주자가 이 곡을 연주하기에는 꽤 힘든 곡입니다.

왜냐하면 첼로의 고음역대에서 많이 움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비올라의 연주도 추천합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아르페지오네 악기를 위한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으로, 슈베르트가 1842년에 작곡한 곡입니다. 

1악장의 느리고 슬픈 노래가 귀를 압도하는데요. 이는 가곡을 작곡해 선율에 강점을 보이는 슈베르트의 음악성이 물씬 드러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슈베르트가 빈 궁정 합창단에서 노래를 했고, 노래를 잘하는 음악가로 유명했기 때문에 이러한 음악적 감수성이 그의 음악세계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사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작곡한 1842년에 슈베르트는 이미 건강이 굉장히 악화된 상태이었습니다. 

그의 1842년의 삶을 엿보기 위해서 그의 일기 일부 발췌한 것을 덧붙입니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또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만이 나에게 엄습하여 옵니다. 이렇게 환희도 친근감도 없이 하루가 지나갑니다. 또 나의 작품은 음악에의 나의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세계를 가장 즐겁게 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슬픔은 이해를 돕게 하고 정신을 강하게 합니다. 
 - 슈베르트의 일기 중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 슈베르트 (클래식 명곡 명연주))


하루하루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슈베르트는 빈센초 슈스터라는 아르페지오네 주자를 위해 이 곡을 작곡하게 됩니다. 

그의 일기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세계를 가장 즐겁게 하리라..'는 부분인데요. 

그의 일기 내용 그대로, 가장 괴롭고 힘든 시절에 쓰인 이 곡이 현재 슈베르트의 대표작이 되었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네요.^^


오늘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의 명반으로 꼽히는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 벤자민 브리튼의 반주 연주를 감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과 NYCP의 반주로 들어 보시면 좋겠어요.

용재 오닐이 이 곡을 여러 번 연주했고 녹음도 할 정도로, 그가 꽤 사랑하는 레퍼토리입니다. 

그리고 NYP는 한국 지휘자가 지휘하는 단체로,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연주 단체입니다. 

첼로와 비올라의 연주를 비교해서 꼭 들어보세요.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 벤자민 브리튼의 연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PLOfZW5VwE


다음은 용재 오닐과 NYCP의 연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0YLqYI6x1A


깊어가는 가을밤, 슈베르트의 음악에 푹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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