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를 읽고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의 저서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를 읽고 떠오른 생각을 3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찰스 핸디는 2001년에 <코끼리와 벼룩>이라는 책에서 포트폴리오 인생을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포트폴리오 생활자란 오직 자신만을 위해 고용된 사람, 조직이 아닌 자신의 미래에 헌신하는 사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며 워라밸이 아닌 워워밸(Work & Work Balance)을 추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책을 쓴 당시는 그가 코끼리(대기업)에서 벼룩(프리랜서)으로 전환한 지 20년이 지난 시기였다. 이후로 다시 20년이 지났고 1932년 생인 찰스 핸디는 이제 91세가 되었다.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을 몸으로 실천한 40년 차 벼룩. 어쩌면 그의 마지막 저서일지도 모르는 이 책에 한 세기를 살아내고 깨달은 통찰을 편지의 형태로 담아냈다.
찰스 핸디는 1979년 즈음 'Portfolio Life'라는 말을 만들고 2000년이 되면 전일제 직장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모든 진리는 3단계를 거친다고 말했다. 첫째 조롱받고, 둘째 반대를 받다가, 셋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그의 말대로 찰스 핸디의 놀라운 예언은 사람들에게 조롱받거나 거부당했다. 기업가, 정치가, 학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40여 년이 지난 지금 '포트폴리오 인생'은 시대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예언자 찰스 핸디는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에서 일의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이미 <코끼리와 벼룩>에서 말한 내용과 다르지 않다. 그의 선견지명에 잠시 소름이 돋았다.
조직은 점차 세 개의 잎이 전체를 이루는 클로버의 형태를 닮아갈 것이다. 첫 번째 잎은 핵심 직원이고, 두 번째 잎은 하청업체, 마지막 세 번째 잎은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비용이 많이 들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개인 전문가 혹은 프리랜서 노동자다.
조직은 끊임없이 개편되며 더 많은 일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해고하고, 시간제나 프리랜서로 다시 고용한다. 따라서 조직은 고용인을 관리하기가 더 어려워지더라도,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 더 정확히 말하면 법이 지우는 의무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정규직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할 목적에서 설계된 조치들, 가령 직원의 해고를 더 어렵게 하는 조치들은 얄궂게도 고용주가 애초부터 노동자의 고용을 단념하게 만들 것이다.
이미 노동 인구의 4분의 1이 시간제이고, 또 다른 4분의 1은 자영업자이거나 4명 이하의 직원을 둔 소기업에 속해 있다. 그들 대부분이 자신이 원해서 그 일을 선택한 것이고, 특히 노령층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변해갈 것이다.
찰스 핸디는 직업관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나의 오래된 스승이다. 일하는 사람으로 지내는 동안 나는 언제나 완전한 자율성을 지닌 벼룩으로 자립하고 싶었고, 마침내 그렇게 되었다. 책에 담긴 21통의 편지는 그의 손자들에게 보내는 것이지만,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정한 사상가 찰스 할아버지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찰스 핸디의 배우자인 앨리자베스를 더 좋아한다. (할아버지, 미안!) 찰스 핸디가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건 앨리자베스라는 지혜로운 동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에 헌신하는 주부였던 그녀는 40대 중반에 사진을 시작해 예술가가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정체성을 초상의 형태로 찍었는데 그녀의 독특한 발상과 표현에 반했다.
찰스는 그의 저서에서 언제나 엘리자베스를 언급하며 존경심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부부는 노년에 1년을 반으로 나누어 상반기는 포토그래퍼 엘리자베스를 찰스가 서포트하고, 하반기는 작가 찰스를 엘리자베스가 서포트했다. 서로의 일과 삶을 지원한 두 사람은 진정한 동반자였다.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엘리자베스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쓸쓸함이 밀려왔지만 79세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그래, 자연스러운 일이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득 그녀에 대한 기사가 있는지 궁금해져 검색을 했다. 그런데 첫 번째 기사의 제목을 보고서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엘리자베스는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4중 추돌 사고였고, 운전자는 찰스 핸디였다. 자신의 부주의로 동반자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엘리자베스가 없는 지난 4년은 그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찰스 핸디가 <인생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를 국내에 출간하고 나서 병상에 누워 인터뷰한 글을 읽었다. 그는 말했다. 삶에 아쉬움이 없다고, 죽음 이후의 삶이 꿈 없이 빠져드는 달콤한 숙면일거라 기대한다고.
나도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주체적으로 일하고, 성숙한 사랑을 하고, 아쉬움 없이 평안함 속에서 마감하는 그런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