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둔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멈춘 적이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돈을 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마음을 쓰고 정신을 쏟다 보면 하루가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리는 그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해야 할 일들에 밀려 시간에 쫓기고, 머리가 살짝 묵직해지는 정도의 스트레스를 견디면서도 시계보다 내 하루가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삶 말이다.
마감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보고서를 제출하던 그 순간의 긴장감처럼.
나는 그것이 의미 있게 사는 것, 인생을 충만하게 살아내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숨이 조금 가쁘고, 그래서 살아 있다는 감각이 더 또렷해지는 삶.
마치 달리기의 출발선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삶.
그리고 그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설명할 수 없지만,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보다는 창의적이고 빠른 감각을 요구하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해왔기에 익숙했고, 무엇보다 좋아했다.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반짝이는 순간, 가슴이 뛰는 그 느낌이 좋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런 일들이 가치 있다고 믿어왔던 것 같다. 빛나는 아이디어가 현실이 될 때, 주변으로부터 받는 인정 역시 싫지 않았다.
주부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그 후 내가 하게 된 일들은 창의나 순간적인 재치를 요구하기보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로 채워져 있었다.
삼시 세끼를 준비하는 일.
청소를 하는 일.
빨래를 하는 일.
아이들의 일정에 맞춰 하루를 움직이는 일.
내가 반복하는 이 단조로운 일들 위에서 식구들의 일상은 무탈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해도 티 나지 않고, 하지 않으면 금세 드러나는 일들. 조금은 억울해도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그런 일들이다. 어떤 순간에도 나의 아이디어와 센스는 필요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반복되는 일들을 빠짐없이 해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눈을 뜨면 늘 같은 일들이 나를 기다린다.
습관처럼 몸을 바쁘게 움직이며 하루를 해치우다 보면, 나는 늘 같은 다짐을 하게 된다.
“나는 꼭 다시 일을 시작할 거야.”
그러다 보면 가정주부와 엄마라는 역할이 인정받지 못해 억울하다고 느끼면서도, 혹시 그 역할을 가장 먼저 낮춰 보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끔은 삶이 왜 이렇게까지 지루할 만큼 반복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러다 생각은 자연스레 더 깊어져, 우리는 대체 왜 살아가는 걸까라는, 심해처럼 어둡고 깊은 질문에 이르게 된다.
최근 우연히 독서모임 덕분에 정기적으로 찾게 된 한 독립서점의 운영자가 성탄 연휴를 앞두고 올린 ‘연휴에 쉽니다’라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그 전날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아침 열 시면 늘 어김없이 서점 문을 열어왔다는 고백 같은 문장이 함께였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면.
비 오는 걸 싫어해 비가 오는 날이면 외출조차 꺼리는 나는, 아마 비가 오면 서점 문을 닫았을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기분이 가라앉은 날에도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전날 밤 남편과 크게 다퉜거나,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상했어도 역시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들로, 하루도 빠짐없이 약속한 시간에 문을 여는 일이 꽤 버겁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일을 다시 생각할 때, 예전처럼 나를 증명하는 방식부터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 대신 어떤 날이든 문을 여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들 밥을 차리고, 식탁을 닦고, 빨래를 널었다.
대단한 성취는 없었지만, 해야 할 일들은 빠짐없이 끝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루는 그렇게 무탈하게 열렸다.
아마도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일은, 반짝이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런 하루를 계속 이어가는 일일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마음이 가라앉은 날에도 문을 여는 사람처럼.
반짝이지 않아도, 오늘도 문을 열었다는 사실 하나로 하루는 충분히 살아낼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