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좋은 경험이 점점 우리의 나쁜 기억(과거의 경험)을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제가 얘기했거든요.
생각이 깊은 어린 친구가 제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설거지를 하는데요. 선생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설거지 통에 자꾸자꾸 새 물이 들어오게 되면
더러운 물이 언젠가는 새 물로 가득 차겠죠. 그런데요. 선생님.
라면 스프에 자잘한 찌꺼기 같은 것들은 새물이 들어오면서 금방 나가게 되지만
묵직한, 무거운 고기 덩어리 같은 찌꺼기는 새물이 들어와도 밑바닥에 그대로 가라앉아있어요.
나올 듯 나올 듯하면서 그대로 가라앉아 있지요.
그렇다면 좋은 기억이 영원히 나쁜 기억을 없앨 수는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 이렇게 가장 무겁고 없애기 어려운 덩어리들이 남아있지 않을까요?
아, 맞아요. 맞는 말이에요.
어쩐지 가장 지우기 힘든 기억은 끝내 나오지 않고 남아있을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우리 기억 속에 가장 힘든 기억은 아무리 좋은 기억을 갖다 부어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끝내 불가능할지도 모르지요.
우리 기억에 새겨진 나쁜 기억들은 때로 우리가 언어를 시작하기도 전에 새겨진 것들도 많고요.
내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터득한 방어기제 일 수도 있지요.
미처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로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이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려고 노력한다면,
그래서 나를 좀 더 나은 경험으로 계속 채울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무거운 찌꺼기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고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지만 아직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수준이 될지도 모릅니다.
끔찍하게 싫지만 그렇다고 나를 아주 혐오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미치게 절망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 삶의 끈을 놓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지요.
싫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나를 헤치고자 하는 마음을 참을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견디는 힘이지요.
그것이 내 안에 힘듦을 가지고도 나아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렇게 버텨온 나 자신이 예뻐 보이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