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콩 Sep 25. 2023

쓰는 사람들

수필교실은 없어졌지만 우리는 계속 쓴다.

"다음 학기는 도서관에서 수업이 어렵습니다."

 선생님이 갑자기 폭탄선언을 하신다. 모처럼 수필반 회원들과 모인 자리였다. 선생님은 담담하게 소식을 전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멀어지는 선생님의 뒷모습은 물론이고 그림자까지 쓸쓸해보였다.


 선생님은 일곡도서관에서 근 5년을 성실한 열정으로 수필반 수업을 진행하셨다. 언제라고 수월했겠냐마는 코로나19로 방역수칙이 엄격했던 지난 2년간은 선생님에게 특히나 벅찬 시간이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현장 수업이 어려워지자 노구의 선생님은 줌ZOOM 사용을 익혀가며 수업을 진행하셨다. 다음 학기를 위한 교재를 만들며 의욕을 불태우시던 것이 생각나 허망한 마음이 더욱 컸다.


 고향집처럼 푸근한 수필반이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수필반이었다.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니. 문득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동안 게으름을 피우며 수업에 소홀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더 열심히 했더라면 덜 아쉬웠을까? 그날 자리에 모인 회원들과의 상의 끝에 한 달에 한 번 글 모임을 갖기로 했다. 물론 나중에 전해들은 선생님도 회원들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져주셨다.


 처음 수필반에 갔을 때는 새침한 새댁이었던 내가 이제는 수다쟁이 아기 엄마가 되었다. 부모님 뻘 문우님들과 글을 나누고, 인생을 나누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이 신기하다. 매 학기마다 과제로 글을 써온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의 문집을 펼치면 그 안에는 일상이 글이 되는 순수한 기쁨이 흐르고 있다. 회원들의 글을 보면 소박하고도 평범한 일상이 자잘하게 녹아들어있다.


언젠가 수필수업에서 선생님은 ‘유명한 작가가 쓴 글보다 우리들이 글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말씀하셨다. 글을 한 편 쓰는데 기울이는 노력과 정성이 전문적인 작가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 이유였다. 선생님의 그 말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내심 내가 쓰는 글, 우리가 쓰는 글의 가치를 제한하고 있었던 마음이 들킨 듯 했다.


이제 생각해보니 글이 될 수 없는 일상은 없다. '글을 쓰는 사람', '쓰지 않는 사람' 정해져 있지 않은데, 사람들은 자신을 미리 판단한다. 그 사이에는 ‘뭐라도 써 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바로 우리 들이다.


 추석이 지나면 우리의 글모임이 다시 시작된다. 이 모임에 참석하려면  글을 한 편 써야한다. 이번에는 또 어떤 보석 같은 일상을 들고 오실지 기대가 된다. '한새봉 수필 동호회'를 이끌어가는 고병균 수필가님과 우리 멋진 회장님, 문우님들까지. 우리 모두는 일상을 글로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쓰는 사람들'이다.


(2022년 길문학 가을호)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만 앞서는 (feat. 프리랜서강사의 첫 특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