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마흔 넘게 살아오며 적어도 나의 인성이 인류 보편적 인성, 그 이상은 되리라고 생각했다. 불합리한 일에 침묵하지 않았고, 공공도덕은 늘 솔선수범하는 편이었다. 적은 금액이나마 기부도 틈틈이 해 왔다. 모난 구석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나름 '괜찮은 어른'인 줄 알았기에 아들을 키우며 드문드문 내 내면의 바닥을 경험했을 때, 당황스럽고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그러나 한번 바닥을 딛는 순간 직감한다.
아, 이렇게 된 이상 지하실이 없다는 보장이 없겠군.
두더지 인형같이 튀어 오르는 아이들의 욕구를 인내하고 있노라면 망치를 잡고 무어라도 탕탕 두들겨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실제로 분을 삭이지 못해 빈 방의 문을 탕탕 두드려 손이 얼얼해진 적이 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큰아이가 일곱 살, 작은아이가 네 살, 큰 녀석은 유치원에, 둘째 녀석은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기에 출근 동선이 꽤 길었다. 매주 월요일은 출근하면 주간회의를 준비해야 했기에 늘 조마조마한 시간이었다. 미리 준비해 두지 못한 회의자료는 아침 내내 명치끝에 걸려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양치하는 큰아이가 역시나 뿌연 양치자욱을 티셔츠에 묻히고 있었고, 작은 녀석은 별안간 큰 볼일을 보고 싶다고 엉거주춤 바지를 벗는다. 허둥지둥 새 옷을 꺼내러 가다가 컵을 만져 물이 쏟아지고 작은 아이는 바지를 뒤집어 시원하게 벗어던지고 하의실종인 상태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누군가 인생의 쓴맛을 보라며 정교하게 세팅해 놓은 것 같은 순간이었다. 머릿속이 툭-하고 끊어지고 훅 하고 울화가 끓어올랐다.
이대로라면 나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몰라 급하게 세탁실로 뛰어 들어가 뒤돌아 문을 잠그고 손바닥을 쫙 펴서 문을 있는 힘껏 내리 쳤다.
탕! 탕! 탕!
탕! 탕! 탕!
손바닥이 얼얼하니 아프니까 이상하게 기분이 나아졌다.
회사는 힘들면 그만두면 되고, 연인과는 헤어지면 그뿐인데 제길, 아이들의 요구에서의 해방은
얼떨결에 계약해 버린, 해지 불가한 종신보험처럼 의무 종료 시한 따위 아득히 멀어 보였다.
아이들이 귀하고 예쁘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다. 다만 예쁠 때와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닐 때의 차이가 저세상 간극이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반복되는 자기혐오와 널뛰는 감정 기복에 미치지 않기 위해, 이 불완전한 나 자신으로부터 아이들을 온전하게 키우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마음공부 수업에 참가해 보고, 불교 공부하며 이치를 깨닫고 싶었다. 그러나 깨우침이라는 것은 시간이 경과하면 자동으로 주어지는 졸업장이 아니었다. 그런 시간들의 누적에서 작은 변화는 감지할 수 있었지만 근본이 쉽지 바뀌지는 않았다. 아들 키우기에 적합한 인성을 기르기 위해선 나부터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가장 빠른 길 아닐까.
활어 같은 아들의 에너지를 받아 줄 공간이 필요했기에 무리하여 작은 주택으로 이사를 한다. 고라니가 수시로 출몰하고, 실개천이 흐르는 꼬마 숲을 이웃하고 있는 작지만 작지 않은 집을 만난 건 내 인생에 드문 행운이었다.
그 주택의 작은 마당. 뜻밖에도 그곳에서 마음 맞는 이웃과 함께 꽃과 나무를 키우면서 아들 키우기에 해답지를 조금씩 열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자연의 이치가 육아의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과거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회고는 아니며, 그보다는 닥쳐올 마음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 설정해 둔 재난 알림 문자메시지에 가깝다. 여전히 내 아들의 마음은 오리무중 일 때가 많고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의 행동은 자고 일어나 마주하는 거울 속 머리카락처럼 삐죽삐죽 제 멋대로 뻗치곤 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바닥을 뚫고 지하실 관광을 할 수 도 있을 나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한 친절한 재난 알림 문자를 써 보자. 미치지 일보 직전에서 정신이 번쩍 들지도 모를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