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대

조성범

by 조성범

잣대

땅거미가 대지의 빛을 메만진다
빛은 땅을 묻고 대지는 빛을 놓는다

보이는 지금은 참인가
이미 보인 것은 과거의 거짓된 시간인가

눈동자에 아로새겨진 기억의 잔해를 더듬으며
눈 앞에 드리워지는 꾸며진 허상에 눈길이 머문다

보고 싶은 눈은 이미 긴 세월 동안 길들여져
다른 세상에 속내를 감추고 멈칫거린다

얄팍한 잣대로 보이는 모습을 재단하는 데
능수능난하게 색깔을 교접하며
카멜레온의 살갗이 다칠세라 안절부절못한다

아침의 숨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저녁의 삶 소리는 거친 숨을 뱉느라 정신줄을 놓는다

하루의 간극조차 같은 숨을 쏟지 못하며
이러쿵저러쿵 갖은 신념을 표절하며
내 것인 냥 의기양양하구나

오늘 읽은 책의 향내가 내일 향기로 일취월장하네
언어에 마취되고 사람에 취하고 언론에 길들여지고 세상에 무너진

모레는 어디에 누구에게 기대야 사는 팔색조의 삶
하루하루 나날이 낯빛을 갈아 끼느라
살가죽 마르고 닳아서 핏빛이 터지네


2013.7.20.

조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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