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동석 Jul 09. 2016

로버트 오웬의 사회주의

인간을 생각하는 사람들

로버트 오웬의 사회주의

인간을 생각하는 사람들


2016-07-09(토) 김용민 브리핑에 나간 [최동석 칼럼]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9938
[0709토②]  '사드 반발' 중국 "한국 독립 원치 않나"



2016-07-09(삶의 풍요는 협동과 연대의 정신에서 나온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지난주에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자기 정체성을 알게 된 유럽인들은 어떻게 연대하여 오늘날과 같은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17세기 프랑스에서 벌어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인식론은 혁명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실성이 확보되자 개인의 정체성은 분명해졌습니다. 삶을 추동하는 힘이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고, 너는 너일 뿐입니다. 네가 나를 억압하고 착취할 수 없듯이, 나에게도 너에게 명령하고 지시할 권한은 없습니다. 이렇게 개인주의 사상이 서서히 싹텄습니다.    

  

3.

그러나 유럽인들도 인간이 자율적이고 독립된 개인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며, 국가와 지역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개인들이 모인 사회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3.1.

18세기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이런 현상을 ‘사회계약론’으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자유롭기 위해서는 강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계급적 사회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계약서에 서명한 적은 없지만, 그런 암묵적인 계약 정신으로 국가와 사회조직이 형성되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정정합니다.

청취자의 지적으로 다시 들여다 보니, 위의 두 문장은 진짜 빠졌어야 할 것인데, 그냥 들어갔습니다. 칼럼을 쓸 때, 보통 20분 분량으로 써서 10분 분량으로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데, 삭제되었어야 할 문장이 그대로 남아 들어갔습니다. 이에 바로 잡습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사회상과 사상가들을 연결시켜야 할 상황이어서 로크, 홉스, 흄, 볼테르와 루소 등의 사상가들을 정리하면서 함께 섞여 있던 문장이 삭제되었어야 하는데 잘못 남았습니다. 그래서 위의 두 문장은 삭제되었어야 합니다. 바쁘게 하다보니 방송일에 경험이 미숙해서 실수가 있었습니다. 김용민 PD의 조간브리핑에 누가 되었군요. 이제 이 일도 그만 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그런데, 계약이란 쌍방 간의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공정한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18세기 유럽은 엄격한 계급질서로 움직이는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러니 자율적이고 독립된 주체인 개인과 억압적 착취가 이루어지는 계급질서는 서로 모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서서히 계약과 계약 정신에 의해 사회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율적이고 독립된 주체로서의 개인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인들은 이것을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5.

시민혁명의 에너지가 응축되었고, 18세기 말에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었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이해하고 있던 프랑스인들에게 이것은 불가피한 사건이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시민들을 억압하던 수많은 지배층 인사들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나갔습니다. 드디어 시민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인권선언을 만천하에 공포했습니다. 프랑스는 지금까지 자유, 평등, 박애를 혁명의 정신으로 삼고 삼색기를 국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6.

이 위대한 사건을 계기로 19세기에는 크고 작은 시민혁명이 유럽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지배층이었던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혁명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하면서 전전긍긍했습니다. 지배층은 시민들의 요구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6.1.

이렇게 19세기 중엽부터 유럽은 서서히 민주주의 토대를 만들어갔습니다. 유럽의 시민들은 아주 현명하게 지배층의 권력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들을 설계했습니다.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입법부에서 법을 제정하면 그 법을 행정부에서 집행하도록 했고, 법집행의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사법부를 따로 두었습니다. 이렇게 권력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지 않고 적절히 배분하는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을 만들었습니다.      


7.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인 개인들이 이렇게 서로 연대하여 혁명을 일으켰을 때에만 사회는 발전합니다모래알처럼 흩어진 개인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8.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농업국가 시절에는 정치권력의 공정한 배분만으로도 충분히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에 농업이 대규모 공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 말은 산업 생산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의미입니다. 생산성 증가는 잉여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잉여는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았습니다. 잉여는 모두 자본가의 몫이 되었고, 급격한 부익부 빈익빈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9.

정치적으로는 혁명적인 변화를 성취해갔지만, 지배층의 권력, 즉 경제적 권력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자유와 평등의 사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자율적이고 독립된 개인의 경제력이었습니다. 더구나 경제력이 있는 자본가는 자유주의 사상에 따라 노동자들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9.1.

이것이 20세기인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나타난 신자유주의 사상의 원조입니다. 그래서 19세기를 그냥 자유주의 시대 또는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그냥 자유주의든 신자유주의든, 자유주의라는 말속에는, 결과적으로 보면, 지배층의 피지배층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자유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크게 잘못될 것은 없습니다.     


10.

아무튼, 19세기에는 노동자들이 보통 하루에 15시간 이상 일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공장에 나가서 일해야 했습니다. 갓난아이들도 부모를 따라 공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공장에 있던 아이들도 걸어 다니는 나이가 되면 그 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어린아이들도 보통 12시간 이상 일했습니다. 당시 공장에는 안전장치도 부실해서 작업 중에도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도 자유주의 사상에 따라 스스로 책임져야 했습니다. 늙어서 일할 수 없게 되어 수입이 없어져도 그건 자기책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느 나라와 매우 비슷하지 않습니까?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자본가들의 악랄한 노동착취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당시 지배층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1.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시도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로버트 오웬(Robert Owen, 1771~1858)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스무 살쯤 되었을 때는 공장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29살이 되었을 때, 스코틀랜드 뉴라나크(New Lanark)에 있는 방직공장을 인수해서 1800년부터 1825년까지 25년간 직접 운영했습니다. 그 공장은 2,500~3,0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할 정도로 큰 사업체였습니다. 그들에게 딸린 어린아이들도 수백 명이 있었습니다.    


  


12.

로버트 오웬은 당시의 노동관행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확 줄였습니다. 하루 10시간으로 제한했고 나중에는 하루 8시간 노동, 8시간 재충전, 8시간 휴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나아가 1817년에는 공장 내에 영국 최초로 유아원을 열었고 12살 이하 어린아이들의 노동을 금지시켰습니다. 나중에는 노동자들에게 의료보험과 연금보험까지 만들어서 시행했습니다. 그러자 저명한 정치인들과 사회개혁가들이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깨끗하고 안전한 시설과 복지제도에 놀라고, 노동자들의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과 합리적인 조직운영에 놀랐습니다. 개별기업이 그런 엄청난 실험을 했던 겁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습니다.     



13.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과연 이런 실험이 성공했을까요, 실패했을까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런 경영사상과 철학을 사회주의(socialism)라고 명명했고자신을 사회주의자(socialist)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상과 철학에 대해 강의하고 집필하면서 남은 생애를 보냈지만. 말년에는 정신 이상증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14.

당시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이나 자본가들은 로버트 오웬의 사상을 공상적 사회주의 또는 이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공상적, 이상적이라는 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뜻인데, 오웬은 노동자들의 삶을 충분히 보살피면서도 사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공상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15.

지배층은 항상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사태의 진실을 왜곡합니다. 얼마 전에 어느 당 대표를 했던 정치인이 그리스가 망하게 된 것은 복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태의 진실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는 사실상 너무나 복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까지 겹치는 바람에 나라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배층이 정보를 왜곡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은 모양입니다.     


16.

아무튼, 오웬의 사회주의 사상과 그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오웬의 강의를 듣고 영향을 받은 영국인이 있었습니다. 조지 홀리요크(George Holyoake, 1817~1906)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8살 때부터 방직공장에서 일했는데 18살이 되던 해 오웬의 강의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오웬주의자(=사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 후 영국의 협동조합 운동에 뛰어들어 맨체스터 근교 로치데일이라는 조그마한 도시에서 세계 최초로 협동조합을 만듭니다. 1844년에 버터, 설탕, 밀가루를 준비한 초라한 가게를 엽니다. 조합원은 고작 28명, 자본금은 1파운드였습니다. 이렇게 초라하게 시작한 인류 최초의 협동조합이 그 유명한 “로치데일 공정한 선구자 조합”(Rochdale Equitable Pioneers Society)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0여 년 후 1866년에는 조합원이 50배로 늘어났고, 자본금은 400배나 증가했습니다.      



17.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경제 실험이 성공적이었다는 기쁜 소식은 유럽 대륙에도 널리 퍼졌습니다. 이런 실용적인 경제사상과 철학이 정치적인 민주주의 사상과 결합하여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가 되었습니다. 사회민주주의를 줄여서 '사민주의'라고 합니다. 이 사민주의 사상은 유럽 전역에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이 사민주의의 기본 정신은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자유, 평등, 연대라는 가치를 내걸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소위 복지국가라고 부르는 나라들에서 사민주의 사상에 근거한 협동조합 운동이 이렇게 19세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자본주의적 산업혁명에 이어서 사민주의적인 정신혁명도 함께 일어난 것입니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18.

이런 협동조합 운동은, 시민혁명이 일으켰던 정치적 권력의 공정한 배분과 함께 산업혁명에 따른 경제적 잉여의 공정한 배분에서도 큰 몫을 했습니다.      


19.

이렇게 유럽의 복지국가에서는 협동조합의 정신과 조직운영방식이 보편화되었습니다. 법적 형태는 주식회사로 해 놓고도 사실상 협동조합처럼 운영하는 회사들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서로 협력하는 것은 곧 서로 연대한다는 뜻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런 사민주의 정신과 조직운영의 원리, 그리고 그것이 국가운영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 정체성은 어떻게 확보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