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구원의 수단이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지난 칼럼에서는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품의제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지배와 통제, 명령과 복종의 조직문화를 만들어 왔다는 점과 이로 인해 억압과 착취가 만연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문제의 근원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점을 살펴봤습니다. 심지어 정부 책임자들은 자신들이 조폭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그러니까 반성은커녕 그런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법의 이름으로 위협을 가하기도 합니다. 이들을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쉽습니다.
2.
그러나 이 사람들을 처벌하면 우리 사회가 과연 맑아질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와도 또 그 짓을 반복할 것입니다. 사회가 이렇게 부패한 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설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에 품의제도가 있습니다.
3.
품의제도는 제도라는 이름 때문에, 보상제도나 평가제도나 승진제도와 같은 어떤 규정체계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품의제도는 전혀 다른 겁니다. 제도가 아니라 문화로 굳어진 어떤 것입니다. 어떤 제도가 문화로 정착되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4.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직장에서 승진하면 할수록 역할이 커지고 권한은 많아지고 그에 따른 특혜와 특권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5.
일선 학교 교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교장에게 주어지는 급여, 권한, 특혜는 사실상 일선 교사들에 비해 과도할 정도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교장들은 실무를 하지 않고 교육계와 교육청의 조직정치에 관심을 쏟습니다.
5.1.
유학 중에 우리 아이들이 독일 초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독일 교육시스템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와는 정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교사들은 행정업무를 하지 않고 수업만 하면 됩니다. 교장은 수업도 일부 하지만 온갖 행정업무를 도맡아 합니다. 문제아가 생기면 별도로 교장이 훈육해야 합니다. 학교에 벌어지는 행사는 교장이 직접 주관합니다. 나아가 학교 내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해야 합니다.
5.2.
왜 그럴까요? 교장은 더 큰 역할을 맡은 사람이니까요. 나라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유럽인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교사들은 서로 교장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교육청은 늘 골머리를 앓습니다.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합리적인 조직의 특징입니다. 역할이 큰 사람이 더 많은 일을, 더 어려운 일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교육계가 왜 뒤집어져야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5.3.
한 걸음 더 들어가 세월호 사건을 보겠습니다. 정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월호 특위 활동을 정부가 방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월호 사건에 관여했던 일선 해경이나 말단 공무원들, 그리고 선원들 중에는 사태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중에는 진실을 밝히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해경, 국정원, 해수부, 청와대, 검찰, 사법부 등 수많은 고위공직자들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고위공직자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5.4.
이제 이것은 거대한 정치게임이 되었습니다. 공직자들은 이 게임에서 진실을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지배와 통제, 선악을 분별하지 않는 명령과 복종을 강요하는 제국주의적 문화 때문입니다. 이제는 권력자에 의한 일방적인 게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의 정신적 노예와 같은 상태가 됩니다.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기저에는 제국주의 문화가 깔려 있고 품의제도가 그것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사회가 왜 뒤집어져야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6.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은 제국의 특성을 묘사하면서 “공포에 의해 강요된 계약”이라고 했는데, 아주 좋은 표현입니다.(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제국의 구조』, 도서출판 b, 2016 참조) 품의제도는 제국주의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이자 공포에 의해 강요된 심리적 계약입니다. 공직자들이 왜 공포를 느낄까요? 철저한 위계질서 속에서, 잘못하면 지금까지 누리던 위세와 권력을 한 순간에 빼앗길 뿐만 아니라 경제적 무력감에 내팽겨 쳐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보편적 복지가 거의 없는 사회에서 경제적 쿠션이 사라진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입니다. 그래서 일단 제국주의적 조폭문화에 빠지면, 진실을 말하지 않게 됩니다. 진실을 말했다가는 자신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이전에 진실을 말했던 사람들에게서 끊임없이 학습해왔기 때문입니다. 지배와 통제, 명령과 복종이 강요되는 제국주의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할 수 없습니다.
7.
우리는 아직도 제국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메커니즘은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왕조의 군주제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독재 권력의 엄혹한 지배 하에서 살아온 경험밖에 없습니다. 민주화를 외쳐왔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진보진영에서도 민주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8.
조직론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화된 사회란 역할이 큰 자리에 앉을수록 특권이나 특혜가 없으면서도 더 많은 업무량에 시달리는 사회를 말합니다. 역할이 클수록 더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만나서 서로 적대적인 의견들을 수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설득력 있는 아이디어와 대안을 직접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역할이 큰 사람들은 이런 힘든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무거운 역할과 책임을 품의제도에서처럼 아랫사람에게 시켜서 그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가로챌 수 없습니다.
9.
그래서 역할이 클수록 업무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적 사유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고, 동료들로부터 그 자리에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암묵적인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야 역할이 큰 자리에 도전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습니다. 공사판의 십장도 해서는 안 될 사람이, 동네 아파트 부녀회장 감도 안 되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큰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란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민주화된 사회입니다.
10.
우리나라가 이렇게 비민주적인 사회가 된 이유를 알려면, 우리가 조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전 칼럼에서 “공동의 목표를 가진 구성원들의 협동체”를 조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렇게 정의된 조직을 구성원들이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1.
첫째, 조직을 지배의 도구로 인식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헤게모니를 장악한 권력자가 조직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지배의 도구로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독일 제국주의 시대에도 히틀러는 국민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11.1.
오늘날 자본주의 이념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기업 조직은 대주주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인식되었습니다. 그 기업의 구성원들도 이윤추구의 자원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조직이 통치자의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지배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합해서 아주 무서운 정부가 생겨났습니다. 국민은 정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 명령에 토를 달면 안 됩니다. 오늘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이런 조직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특히 독일의 경우에는 나치시대의 경험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국주의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해 왔습니다.
12.
그래서 두 번째 조직인식이 중요해집니다. 조직을 구원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조직이 생겨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맹수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해서 위협적인 공격으로부터 생명을 구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조직을 통해 구원을 얻었습니다. 인류는 이 조직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고 이것이 곧 인류문명이 되었습니다.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을 위협으로부터 구원해주는 방주의 역할을 하도록 조직을 운영합니다.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학교에서부터 배웁니다. 학생들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태도와 행동을 학습합니다.
이런 과정은 서양 언어에 명시적으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체계를 그리스어로 organon이라고 했는데, 논리학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하기 위한 문명의 도구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organization이란 단어가 여기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게끔 이 세계를 잘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라는 의미로부터 조직 개념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조직을 구성원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조직인식입니다.
13.
조직론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유럽의 역사는 조직설계와 그 조직을 움직이는 여러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어떻게 디자인해야만 인간을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던 역사였습니다. 고대로부터 이런 조직론적 고민을 했었던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와 같은 철학자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14.
그러나 한반도를 지배한 공맹 사상에는, 이런 조직론적 관점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직 개인의 품성을 훌륭하게 닦은 사람이 조직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훌륭한 인격자가 되도록 닦달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과연 훌륭한 인성을 갖게 되었나요? ‘헬 조선’은 최근에 나온 용어지만 우리 민중은 임진왜란 당시부터 이미 ‘헬 조선’에서 살아왔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가 되자 다시 엉뚱한 기술을 익히도록 닦달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기술, 돈 버는 기술, 성공하는 기술을 익혀서 서로 경쟁하도록 가르칩니다. 이런 가르침은 민중을 속이는 것입니다. 지배층이 된 사람들은 자본과 권력을 이미 가졌기 때문에 이런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런 조잡한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는 민중들에게만 강요합니다. 개인적인 인성론만 있고 조직론이 없는 사회는 이렇게 헬 조선이 됩니다.
15.
우리는 지금 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지배자가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주 잘못된 조직인식입니다. 이 때문에 온 국민은 불합리한 제국주의적인 조직문화에 갇혀 버렸고, 속절없이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조직운영 메커니즘을 완전히 뒤집어엎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분권화된 자율적인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음 주에는 유럽인들은 어떻게 해서 제국주의적 조직인식에서 벗어나 분권화된 자율 조직으로 변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