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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Oct 08. 2016

백선하 교수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합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조직론적 해석

백선하 교수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합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조직론적 해석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오늘은, 이 칼럼의 흐름을 잠시 끊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의 사건을 조직론적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칼럼의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조직 의사결정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에 관한 것입니다.     


구성원의 직무수행상의 문제와 조직의 공식적 견해에 대하여


2.

우선 첫 번째 주제를 보겠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관련하여 의사라면 누구나 아는, 아니 의대생만 돼도 아는, 사망진단서 작성지침을 어기고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엉터리 사망진단서를 발급했습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2.1.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대 합동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이 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합의된 결론은 “외인사”입니다. 위원장이 합의된 공식의견을 문서로 병원 당국에 제출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외인사”는 서울대병원이라는 조직의 공식 견해입니다. 그러나 백선하 교수는 주치의로서 개인적으로 전혀 다른 의견인 “병사”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정리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3.

합의제 의사결정은 합의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당한 근거가 있는 소수의견을 윽박지르지 않으면서, 표결에 붙일 필요도 없이, 만장일치로 합의된 결론을 도출했다면 그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물론 다수결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결론이 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특별조사위원회의 결정이 서울대병원의 공식 입장이며, 백선하 교수의 결정을 뒤집는 것입니다. 백선하 교수의 병사라는 주장은 효력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조직론의 기초상식입니다. 백선하 교수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기 위해 특조위를 구성해서 결정한 것이니까요.     


모든 회의는 기록되고 문서화되어야 한다.


4.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의사결정 과정이 반드시 기록되고 문서로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론 과정에서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까지 일일이 녹음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문서화하여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 토론 과정에 참여한 것이 곧 공적 직무수행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토론기록이 없으면 누가 무슨 의도로 어떤 견해를 표명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이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공직자들의 공적인 직무수행 기록일 뿐만 아니라 조직관리에 있어 그 토론 참여자들에 대한 매우 소중한 인사판단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4.1.

선진국의 조직관리와 인사판단이 매우 합리적인 이유는 바로 이렇게 역사적으로 켜켜이 쌓인 인사정보들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인사가 엉터리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5.

현 정부의 행태를 봅시다. 대우조선해양에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지원하면서 고위공직자들이 청와대 서별관에서 결정했다는데, 아무런 기록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직자의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문서화된 기록도 없이 어떤 공적 의사결정을 했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의사결정을 보면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미르 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은 기록이 없거나 있는 것도 파기해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비선에 의지하여 중요한 국가정책이 결정되고 있으니 그 과정이 온통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어떤 기록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엉망진창인 정부가 있을 수 있는지 참담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생명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생떼를 부리는 또라이는 어떻게 처리하는가?


6.

회의를 하거나 토론 과정에 참여해보면, 소수의견 중에 정당한 근거도 없이 생떼를 쓰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백선하 교수가 그런 사람으로 보입니다. 백선하가 생떼를 쓴다고 보는 이유는, 의사라면 누구나 따라야 하는 사망진단서 작성지침을 어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백 교수는 사망진단서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생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떼를 쓰지 못하도록 사망진단서 작성지침이 있는 것입니다.

     

합의제 의사결정 시스템을 활용하는 조직이나 나라에서는 백선하 교수와 같이 생떼 쓰는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7.

전문가 집단은 고도의 합리적 이성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의사라는 직업군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합리적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백선하를 사실상 의사라고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조위의 위원장을 맡았던 이윤성 교수가 바로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내가 만일 뇌수술을 받으면 백 교수한테 가서 수술을 받겠다. 그러나 내 사망진단서를 백 교수에게 맡기지는 않겠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이 말을 듣고, 저는 백선하 교수는 칼을 잘 쓰는 기술자 일지는 모르겠지만 의사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기본적으로 합의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생떼 쓰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독일어가 있습니다. “unkollegial”이라고 합니다. 함께 대화할 수 없는, 토론할 상대가 되지 않는, 동료로 함께 일하기 곤란한,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당연히 그 전문가 집단에서 서서히 배제됩니다.     


8.

결론을 다시 말씀드리면, 서울대병원의 공식적인 기관 견해는 특별조사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외인사”로 결정되었으며, 백선하 교수의 “병사”는 배척됩니다. 아무리 주치의 견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물대포를 맞은 백남기 농민의 위중함 때문에 서울대병원에다 치료를 의탁한 것이지 백선하라는 개인에게 진료를 맡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에 대하여


9.

그런데, 백선하 교수만큼이나 문제적인 인물은 이윤성 교수입니다. 이윤성 교수는 특별조사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았습니다. 위원회를 잘 이끌어서 합의된 결론까지 도출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날(2016년 10월 3일) 오후 언론 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망진단서 작성 원칙과) 다르게 작성된 것은 분명 하나 담당 교수(백선하)가 주치의로서 헌신적인 진료를 시행했으며 임상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작성했음을 확인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진성성을 가지고 사망진단서를 작성했으므로 사인을 “병사”로 그대로 두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그 후 다른 여러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서울대병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외인사’라고 아주 똑 부러지게 대답했습니다.      


10.

저는, 백선하 교수든 이윤성 교수든, 이들이 조직론의 기초상식조차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이럴까를 생각해봤더니,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권력관계에 의해 해석되며 조직론적 보편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저 나름대로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11.

이 서울대 교수들이 헷갈리는 이유는, 서울대병원이라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직무에 주어진 역할, 즉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카운터빌리티는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용어입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설명책임 또는 성과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업무수행과정과 그 결과물에 대해 설명해야 할 책임을 말합니다. 의사도 병원에 소속되어 있는 한, 직무의 무게에 따라 엔(N)분의 몇의 역할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엔(N)분의 3이라는 조금 더 큰 역할을, 어떤 사람은 엔(N)분의 1이라는 조금 더 작은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12.

자신의 직무와 역할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업무처리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것을 스스로 교정하지 못하는 경우, 그 문제의 크기에 따라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공식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번 백선하 교수 사건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라는 임시기구가 발족되었습니다. 그 위원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문제를 일으킨 백선하 교수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료조사와 토론과 합의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는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인 백선하 교수는 당연히 자신의 업무수행과정과 그 결과를 충분히 설명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설명책임을 어카운터빌리티라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부조리와 부패와 직무유기와 비도덕적 행위는 이 어카운터빌리티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13.

사실 제가 이 시대 최고의 팟캐스트인 김용민 브리핑에다 칼럼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어카운터빌리티 개념을 소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직무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성과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상명하복의 엄격한 통제 상태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러니 직무가 요구하는 성과를 직무담당자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성취해야 할 역할과 책임 또는 그 과정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13.1.

대통령이라는 직무에서부터 우리 동네 주민센터 주무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무를 어카운터빌리티 개념으로 재설계해야 합니다. 이런 조직혁신이 일어나지 않고는 우리 사회는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4.

결론을 다시 반복합니다.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위원들의 토론 과정을 거쳐 공식적으로 ‘외인사’로 결론이 났습니다. 합의된 ‘외인사’ 결정은 백선하 교수의 ‘병사’ 결정을 뒤집은 것이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서울대병원이 공식적으로 ‘외인사’로 변경한 것입니다.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병사‘라는 표현은 당연히 그 효력을 잃어버립니다.     


15.

그러니까, 언론 브리핑에서 이윤성 교수가 특별조사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외인사”로 결론을 냈다는 사실만 발표하면 됩니다. 백선하 교수가 헌신적이었고 진정성이 있었다는 말은 전혀 필요 없는 얘기입니다. 백선하 교수가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만 명시하면 되고, 백선하를 윽박지를 필요도 없고 사망진단서를 수정하라고 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백선하는 주치의로서 그것이 옳든 그르든 개인적인 견해를 유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생떼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대로 백선하와 같이 불합리한 사람은 고도의 합리성을 요구하는 전문가 집단에서 점차 사라져야 할 운명에 처하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레지던트 3년 차 권씨와 백선하 교수의 권력관계에 대하여


16.

자, 이제 두 번째 주제인 상명하복의 야만적인 조직문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레지던트 3년 차 권씨는 사망진단서를 직접 작성한 의사로서 백선하 교수로부터 '병사'라고 작성하라는 전화지시를 받고 권씨 자신도 매우 의심스러워 '병사라고요?'라는 질문을 세 번이나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사망진단서를 유족에게 건네면서도 이것은 내 뜻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상명하복의 야만적인 조직문화에서 레지던트가 무슨 저항할 힘이 있겠습니까?     


17.

우리나라에서 상하관계는 갑을관계를 뛰어넘는 거의 생사여탈의 관계를 형성합니다. 윗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자신의 생애가 어떻게 변질될지 알 수 없는 매우 위험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공무원 조직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멀쩡하던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면 대부분 영혼이 없는 좀비 같은 존재로 변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직자들은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나 주어 먹는 개 같은 신세가 된 지 오래입니다.      


18.

이런 현상은 특히 검찰 조직에서 아주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검찰개혁은 적당히 해서는 안 되며 완전히 조직을 뒤엎어서 검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검찰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철저한 어카운터빌리티를 요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민주화된 검찰입니다.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로서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을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백선하 같은 불합리한 업무처리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럴 땐 그 경중에 따라 그것을 수정하는 절차를 마련하면 됩니다.      


19.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누구라도 계급구조의 상명하복이라는 이 생사여탈의 사슬에 걸려들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불의한 사슬을 끊어주어야 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이런 사슬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 19세기 중엽부터 이 사슬을 서서히 끊어왔습니다. 이걸 끊지 않으면 어떤 개혁도 혁신도 물거품이 됩니다. 이 사슬을 끊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합리한 명령과 지시에 불복종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obligation to dissent)를 부여하도록 조직을 설계하면 됩니다.      


20.

백선하 교수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박근혜 정부가 국가적 아젠다를 정리해가는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서울대병원 역시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합리적으로 해결해가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 지식인 사회의 치명적인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21.

지난 칼럼에서 150여 년 전, 그러니까 19세기 중반 제국주의 시대에, 프로이센의 몰트케 장군은 군대 개혁을 위해 조직의 분권화와 자율성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했습니다. 그 후, 독일은 독일인들에게 따라다니던 야만적이고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무색하게 할 만큼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몰트케는 장병들 한 사람 한 사람도 소중히 여기는 영혼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이 모인 조직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조직론을 진정으로 고민했던 군인이었고 철학자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철학이 있는 정치가와 영혼이 있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몰트케 장군의 이런 놀라운 철학적 성찰에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상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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