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27(월)_김용민 브리핑에 실린 [최동석 칼럼]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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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서 오며, 그 개념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를 서양사상사의 신학과 철학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째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점차 무딘 감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려면 우리에게 어떤 반성적 성찰이 있어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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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났던 용산참사와 2014년 4월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한 대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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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경제는 성장하고 국가는 OECD라는 선진국 클럽에 가입하고 경제적으로는 10위권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국민 개개인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고,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시나리오 작가가 끼니를 제대로 채울 수 없어 굶어 죽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름난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밥벌이가 되지 않아 자살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 없는 사회, 그래서 세 모녀가 집단으로 자살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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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송을 듣는 분들 중에는 혹시 이런 비참한 상황은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눈감고 있으면, 그런 상황은 점차 확대되어 언젠가는 거의 모든 시민들이 피를 흘려야 하는 상황으로 바뀐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악행의 싹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 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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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삼시 세 끼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을까? 그 근본 원인을 찾아서 치유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시민들이 자본권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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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의 잘못은 독재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독재하는 정치권력에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본권력은 피부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어사무사하게 슬금슬금 인간의 정신세계를 파고듭니다. 철학의 가치, 예술의 가치, 학문과 배움의 가치, 상상력과 창조의 가치, 우정과 신뢰의 가치, 사랑과 명예의 가치 등 자본주의적 발상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다양한 가치들을 자본권력이 붕괴시켜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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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의 다양한 이론들이 합리성이라는 표피를 뒤집어쓰고 인간의 고결한 정신을 파괴해왔습니다. 시장경제를 이용한 자본의 논리는 한 마디로 인간이 지금까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단일한 가치, 즉 돈이라는 것으로 붕괴시켜왔습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노력과 이성적인 모든 활동을 단순한 돈벌이의 수단으로 환원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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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인간의 모든 활동을 돈벌이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돈벌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와 아무 관련이 없는 수많은 가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돈벌이 없이는, 그것도 충분한 돈벌이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아주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오직 자본가치로만 표현되는 획일화된 사회로 변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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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창조적인 사회로 발전시키려면 다양한 가치, 다양한 해석, 다양한 의견, 다양한 배경, 다양한 신념이 존중되는 다원화된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 즉 다름과 차이를 귀하게 여기는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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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견디지 못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모습과 같지 않기 때문이지요. 같잖은 존재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우리의 이런 습성에 아주 딱 들어맞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생각을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런 자본주의 속성에 아주 쉽게 동화되었습니다. 이 지구 상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삽시간에 자본주의적인 생활습성에 동화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하여 계산하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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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본주의적 생활습성으로 우리의 정신이 획일화되었지만, 우리의 삶이 모두 동일한 수준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자본주의적으로 일원화되었지만, 삶의 양태는 자본의 양에 따라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또 다른 특성인데, 차별화라는 것입니다. 자본의 양으로 차별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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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이 사람들을 계급화했던 것처럼 자본권력도 모든 인간을 계급화하여 차별화합니다. 자본권력의 계급적 분리는 정치권력의 계급적 분리와는 차원이 다른데, 그 분리전략이 영구히 통용되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적 계급사회는 그것을 영속시키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가져야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조건을 조성하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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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를 구별합니다. 아파트의 평수로 구별하든, 담장을 쳐서 구별하든, 동창회와 같은 모임을 통해 구별하든 차별화함으로써 사회적 이미지가 확연히 구분되도록 만듭니다. 입는 옷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르고, 타는 차가 다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 차별화 때문이라도 부자동네로 들어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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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자본주의적 사고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뚜렷이 구분되어 계층별로 삶의 방식을 달리 규정해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합니다. 일단 하층민으로 떨어진 사람은 다시 회생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부자들의 운영하는 회사에서 서민들이 노동력을 저렴하게 공급하도록 사회를 구조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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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와 노동자로 이원화합니다. 노동자를 다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원화합니다. 비정규직을 다시 장기 계약직과 알바와 같은 단시간 노동자로 이원화합니다. 전 국토를 서울과 지방으로 이원화합니다. 지방을 다시 광역시와 보통시로 이원화합니다. 학교도 1류, 2류, 3류로 구별하여 차별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서열화하고 계급화하여 차별함으로써 서로 경쟁하도록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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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러 기업체에 가서 강의를 하다 보면, 꼭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조직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쟁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조직의 경쟁력은 경쟁을 통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협력에서 나옵니다.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비전과 경영철학적 메시지로부터 조직의 경쟁력은 촉발됩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까 아주 쉽게 서로 경쟁시키는 방법을 택합니다. 이것이 자본권력이 서민들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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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합니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데 상대방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반복합니다.
서열화
계급화
차별화
경쟁화
것이 자본권력이 시장경제라는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서열화로부터 시작하여 계급화하고 차별화하여 경쟁시키는 것으로 끝납니다. 뭔가 서로 경쟁하는 곳에는 반드시 자본권력의 음모가 숨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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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자본권력의 음모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서열화, 계급화, 차별화, 경쟁화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이성이 마비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제는 이런 인간을 '일차원적 인간'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열화하여 경쟁화시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하나의 차원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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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 사고, 비판적 사고, 추론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무제약적 인식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본권력은 이런 인간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자본권력이 무서운 점은, 인간이 이성의 무한한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무런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차원적 인간으로 퇴화시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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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권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우리 모두가 각성하여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대선 주자들 중에서 누가 자본권력으로부터 시민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토록 무시무시한 자본권력에 저항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길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