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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Feb 09. 2019

크리스천(기독교인, Christian)이라는 개념(3)

"Ich bin Christ"라는 의미에 대하여

2018-12-25_[크리스천(기독교인, Christian)이라는 개념에 대하여(3)]


11월 29일과 30일 자 페북에서 "Ich bin Christ."라는 독일 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예수처럼 산다’ 또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한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기독교인인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누가 뭐래도 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해왔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1980년대 중반까지 나는 신앙의 선배들이 남긴 유산을 찾아 읽었다. 프란시스 쉐퍼, 제임스 패커, 마틴 로이드존스, 존 스토트 등은 나에게 큰 은혜와 감동이 있었다.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에서 나 자신에게는 어떤 부족함도 느끼지 못했다.


기독교는 본래 나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느낌으로 충분한 것인가? 기독교는 원래 그런 것인가? 내 마음은 찜찜했다. 기독교란 진짜 이런 것인가, 하는 일말의 의구심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 의구심은 나 자신의 문제라기보다는 의롭지 못한 사회현상에 대한 의문이었다. 


기독교가 사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악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제주 4·3 사건의 핵심이 장로교가 키운 서북청년단이었다는 점과 독재세력에는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항상 친화적이었다는 점에 대해 개신교는 아직도 침묵하고 있다. 목사들이 저지르고 있는 천문학적인 비자금이나 성폭행 수준의 악행은 빙산의 일각이다. 교회는 회개하지 않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명성교회, 사랑의교회 등 대형교회들이 몰상식하고 부도덕한 행태를 선도하고 있다. 이 정도로 타락한 교회에 속한 자들은 부끄러움조차 모른다.


예수는 거렁뱅이, 창녀, 고아, 과부와 같은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었지만, 교회는 권력자들, 부자들, 지식인들, 고위층의 친구가 되었다. 예수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 굽는 방법이나 돈 버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목마른 자들에게 포도주 빚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포도주를 주었다. 병든 자들에게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병을 고쳐주었다. 간음하다 붙잡혀 고통받는 창녀를 그 자리에서 용서해 주었다. 예수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의 가르침은 너무나 명확하다. 오해의 소지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는 당시의 고위층, 권력자들, 부자들, 지식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회칠한 무덤’이라고도 했다. 속은 썩어 문드러졌는데, 겉에만 분칠을 했다는 것이었다. 예수는 사회의 부도덕과 불평등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개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제자들에게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the least advantaged)***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예수는 이렇게 부자들이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당시 이런 가르침은 기득권층을 위협하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너무나 명백했다. 오해의 소지가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기득권층은 33살의 예수를 극형으로 다스렸다.     


*** 사회적으로 혜택을 가장 적게 받고 있는 최소 수혜자


우리 시대를 보자. ‘송파 세 모녀’ 사건(2014년 2월)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한국종합예술학교를 졸업한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이었던 최고은(1979~2011)은 <연애의 기초>, <격정 소나타>와 같은 좋은 작품을 남겼지만 굶어 죽었다. 영국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재능을 가지고 있던, 현대적이고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면서 놀라운 삽화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일러스트레이터 장하경은 일간지와 주간지에 삽화를 그려왔지만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이런 상황인데 특출한 재능이 없는 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최근 태안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어떻게 죽었는가? 이런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지금 이 땅에 예수가 재림했다고 생각해보라.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는 정치인들, 못 배운 사람들에게 사기 치는 지식인들, 예수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있는 성직자들을 향해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 너희들이야말로 천벌을 받을 놈들이라고 욕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 세상을 ‘우울한 소식’이 아니라 ‘복된 소식’이 넘쳐나도록 바꾸라고 가르쳤다. "Ich bin Christ."{예수처럼 산다는 것,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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