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그리움의 시간

by 구름나무

올해가 서기 2021년, 그러니까 지저스가 기원전 7년경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고 기원후 26년 하늘로 돌아간 후, 곧 오리라 약속한지 침묵 속에서 2천년이나 지났건만 영원의 세계에선 시간은 찰라에 불과한 것이라, 믿음은 미증유의 구원에 대한 불꽃같은 것일까.

그리움의 시간. 한때는 그리도 간절했건만 바람 속의 먼지처럼, 불꽃처럼, 풀꽃처럼 소멸되어 그 자취조차 찾을 수 없고, 오직 퇴색한 기억으로만 남아 가끔 열어보는 꿈처럼, 그 꿈마저 이해할 수 없는 형상과 색채로 각자에게 고유한 추상일 뿐, 같은 사건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도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움이란 언어도 똑같진 않겠지.

보고싶다. 간절함 속에 제대후 32년만에 다시찾은 대구, 앞산 아래 <캠프 워커> 거기엔 빈 둥지만, 렉센터 아저씨도, 봉신 가드도, 트랜스레이터 아저씨도, 얄미웠던 Hare 일병도 인자했던 Hamilton 병장도 세월과 같이 모두 다 어디론가 떠나가고, 군시절 시간을 일부 같이 했던 우리는 각자의 추억을 가지고 시간을 스쳐 지나왔지. 다시 각자의 현실로. 일상으로. 지난것은 지나간대로 보내버리고, 지금 현재 현실에 충실하자고.

제망매가. 삶의 죽음의 길이 예 이시매 두려워...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만남과 헤어짐. 우리는 헤어지며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구의 21세기를 같이 호흡해도 동시공존은 이론, 이념의 카테고리일뿐. 우리는 남북통일을 논하지만 동서화해와 빈부해소에 방점을 두지 못한다.

완주군 동상면이라는 깡촌에서 여섯째로 태어난 나는 일곱 살에 동네 형들을 따라 시오리길을 걸어 동봉국민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고 배움의 길을 나섰다. 이에 농사 짓던 부모님은 초등학교만 졸업한 9살 터울 큰누나를 붙여 전주풍남국민학교에 입학시켜주셨고 이듬해 나오셔서 막노동의 길을 걸으셨다. 아버지는 처음 제재소에서 일하셨고 다음엔 연탄공장과 연탄배달일을 하셨으며 손수레로 이삿짐등을 나르는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밭매는 일을 다니셨으며, 자세히는 모르지만 외국우표등을 가져오셨던 것을 보면 폐지처리하는 곳에 다니셨 던 것 같다. 집짓는 곳에서 벽돌을 이고 옮기는 일도 하셨고 아버지와 같이 연탄배달일도 하셨다.

나는 부모님께 그야말로 귀한 장남이었다. 순서는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께서는 뱀띠 큰누나와 개띠 작은누나 그리고 나에 이르기 전까지 세명의 자녀를 잃으셨다. 사인은 주로 아사다. 아니 정확한 것은 모른다. 알 수 없다. 의료진이 전혀 없는 깡촌에서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더구나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어머니는 피가 나빠 아기를 못키운다는 언어도단의 상처를 받으신 분이다.

1927년생 토끼띠인 선친은 할아버지께서 가르치지 않은 유일한 아들이다. 백부님께서는 경찰이셨고 숙부들도 가르치셨지만 웬일인지 아버지는 할아버지랑 산일을 해서 논마지기 마련하여 농사짓는 농부의 길을 걸으셨다. 1944년 수풍발전소 건설에 노무자로 징용되셨다가 해방으로 귀가하셨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의용군으로 허벅지 관통상을 당하셨지만 국가유공자로 챙겨주는 이가 없었다. 어머니가 이런 사정을 동네 반상회를 통하여 읍소한 결과 40년이 지나 6급을 받으셨다.

그러니까 다 늦은 겨울에, 꽃피고 아름답던 봄,여름,가을을 지난 계절에 김영삼 정부가 하사한 국가유공자증을 만지시던 선친이 떠오른다. 늦게나마 얻었던 아들처럼 뿌듯하셨으리라. 늦게 갔던 군대를 제대하고 귀가했을 때 안아주시던 모습, 제대후 100일 열공으로 공사에 합격했을때 기뻐하시던 모습, 그리움의 시간이다.


1981년 지방국립대생으로 입학했던 시절, 음악 동아리(세고비아라는 고전기타반) 시절에 집사람을 처음 보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에델바이스와 같은(Clean & Bright) 이름을 가진 그녀, 지금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세아이의 엄마. 안방에 책상이 있는 그녀. 날이 갈수록 더 어여뻐지는 그녀. 오늘 밤 원고를 위하여 설거지를 해준 그녀.

1981년 공돌이가 싫어 반수를 하여 sky에 입학했다. 나의 철없던 서울 유학시절, 청춘에 눈멀고 종교에 심취하고 겉멋에 절어 방황하던 시절, 그 끝에 카투사(KATUSA)에 지원하여 대구에서 군생활을 했었다. 미8군 헌병대(MP, Military Police) 캠프 워커(Camp Walker) 생활. 많은 것을 생각케했던 시절. 대체로 미군애들은 우리보다 어린 나이의 직업군인들이었다.

문화와 성장 배경이 다른, 민족과 국가라는 이념의 틀 안에서 부딪히는 젊은이들과의 부조화. 결국 카뮤니스트라는 어정쩡한 언어의 소통오류로 지역 보안요원 사찰도 받고 감정대립에 의하여 포항에 있는 미해병대 기지 캠프 무적(Camp Muchuck)에 유배(파견근무)를 가게 되었는데 이때 같이 간 미군이 해밀턴 병장이다. 그는 내게 카펜터스의 탑오브더월드 테이프를 주고 읽을 책을 주었으며 자유로운 시간을 배려해주었다. 덕분에 포항 다른 부대에 있는 동기도 만나고 집에 휴가도 다녀올 수 있었다.

내 이름 J.W.Park 이니셜과 발음 때문에 John Wayne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늘색 눈동자의 그 미군도 어느 하늘 아래 잘 지내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 21세기를 같이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는 만나기 어렵다. 이 세상에서... 헤어짐은 죽음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우리에게 있다.
지난 2018년 5월 회사 재직 30주년을 기념하여 집사람과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불과 열흘 남짓한 여행기간을 같이한 사람들 중에 같이 한 시간이 많았던 분들, 그렇지만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모두 일상으로 복귀했다. 지난 2020년 1월 대만에 다녀올 때만해도 이렇게 여행의 자유가 통제될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리움은 순전히 나만의 몫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헤어진다.

불가의 가르침에 생노병사, 애별리고, 원증회고가 있다. 괴로움의 원인은 욕심과 무명(무지)이고, 이 사실을 깨달음으로 해서 벗어날 수 있다(해탈)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각론에 가면 실천궁행이 어렵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가톨릭 교리를 잠깐 옮겨보면 이렇다.
- 인간의 삶은 하느님을 깨닫고 사랑함에 있다. 하느님께서는...당신의 복된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셨다. 인간은 하느님에 의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 하느님께 대한 갈망은 인간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진리와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 세상의 불행에 대한 반발, 종교적인 무지나 무관심, 현세와 재물에 대한 근심, 신앙인들의 좋지 못한 표양, 종교에 대한 적대적 사조, 하느님이 두려워 몸을 숨기며, 그분의 부르심을 듣고 달아나는, 죄인인 인간의 태도 등이다.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모든 지성적 노력, 올바른 지향, "올바른 마음"과 그에게 하느님을 찾도록 가르치는 다른 이들의 증언이 필요하다.
- 하느님 인식에 이르는 길, "하느님의 존재 증명"으로서 세계: 세계의 움직임, 변화, 우연성, 질서와 아름다움으로부터 우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다. 변화하는 이 아름다움들을 변화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그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 인간: 이 영혼의 근원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 제1원인이며 최종 목적인 실재가 존재한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신앙이 인간의 이성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인간이 이성의 타고난 빛을 통해서 피조물로부터 출발하여 만물의 근원이며 목적이신 하느님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 인간이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 인간의 정신은 감각과 상상력, 원죄에서 발생한 그릇된 욕망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오류 없이 확실하게 모든 이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계시의 빛이 필요하다. 인간은 그 본성으로나 소명으로나 종교적인 존재이다.
- 우리는 피조물들의 다양한 완전성과 무한히 완전하신 하느님께 대한 유사성에 근거해서 실제로 하느님을 어떠한 분이시라고 말할 수 있다. 창조주가 없다면 피조물은 허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각자의 눈으로 세상(세계)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나에게 아름다운 것이 네게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진위, 선악, 미추, 정오, 시비, 성속, 희비, 애오는 상대적 개념이다. 입장에 따라 가치의 세계는 돌변한다. 그렇지만 정말 절대의 세계가 있을까? 그렇다. 거기가 바로 영원에서 비롯한 그리움의 샘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시간의 존재이지만 거기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영원한 평화와 안식(쉼)이 있는 곳에서.

갑자기 글을 끊었다. 내일 출근해야 하기에. 아니면 어여쁜 이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방학숙제를 끝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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