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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 Soo Apr 06. 2018

베트남 유랑기 Part#3

틈날 때마다 옆동네 마실

특정한 어느 지역으로 여행을 가지 않는 한 회사 내 숙소에만 있기 답답해서 자주 옆 동네로 외출을 감행한다.

우기가 끝나갈 무렵의 베트남 하늘은 연무, 황사 등등으로 방해받지 않는 진짜 하늘색을 보여주기에 걸음을 내디딜만한 시간. 스쿠터를 몰고 회사 정문을 빠져나가 대략 20분 정도만 가면 작은 항구가 있는 마을로서 생기 있게 돌아가는 동네였기에 산뽀하는 것 치고는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동네


우기가 끝난 하늘은 마치 가을하늘과 같다. 이런 하늘을 머리에 이고 걷다보면 상념 또한 사그라 들더라

이렇게 도심 중심부가 아닌 외곽의 로컬 마을을 돌아보면서 내가 알게 된 베트남의 특수한 문화와 삶의 얘기를 해 보고자 한다. 베트남은 철저히 모계사회로서 생계의 대부분을 여자들이 책임지는 사회다. 거의 대부분 가정의 수입이 여자가 훨씬 많이 벌어오는 분위기, 그렇다고 남자들은 주야장천 노느냐? 그건 아니지만 가정에서 여자들의 위치가 높고 목소리도 크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의 자리가 작을 수밖에 없고 혹여라도 남자가 벌이가 없어 빈둥대며 가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치면 과감하게 여자들은 이혼을 요구하며 남자는 거의 그 요구에 따르게 된다. 양육권은 여자에게 우선 부여되고 남자는 거의 가진 것 없이 결혼생활을 접어야 하는 것이지.

현지 회사 현지인 직원 중 한 친구는 이렇게 얘기도 한다.

"형님, 제가 우리 와이프보다 더 벌기 때문에 전 이혼할 걱정 안 합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이다 보니 베트남의 이혼율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고, 재혼의 횟수도 상당이 많다. 

베트남에서 한, 두 번의 이혼은 그냥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분위기. 그게 참 적응하기 어려운 문화였으며 여성들도 자신들의 이혼 및 재혼 횟수를 자랑같이 얘기하는 풍토가 참 많이 낯설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하이퐁 시티 중심 번화가의 삶과 이곳 로컬 마을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나름 풍요를 만끽하는 삶이지만, 밤낮으로 휘황찬란한 도심의 삶에 비해면 비루하고 누추할 수밖에 없다. 

이 옆 마을을 걷고 있는데 2번째 벼농사의 추수를 하고 있는 베트남 청년이 한국인인지 알아보고는 황급히 달려와 내 팔을 잡고는 대뜸 얘기를 하자한다.


자기는 하노이 대학교를 나오고 대학원까지 나왔으나 워낙에 없는 집안이며, 관공서와 군경에 아는 사람이 없는 탓에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한국으로 가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슨 말을 해 줘야 할는지 떠 오르지도 않았으며 이건 괜히 내가 얘기할 문제는 아니지 싶어 돌아서려 하는데 그 눈빛이 너무 애처롭더라. 그래서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얘기를 전해줄 수밖에 없었는데

한국에 오려면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어 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한국어 활용 능력시험을 치른 후 지원자 명단에 올린 후 본인의 차례가 됐을 때 한국으로 들어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노라고 얘기를 전해 주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학원비도 한 달에 1,500,000 VND로서 그리 녹록지 않은 비용이고, 시험 보는 것도 비용이 들며, 한국에 오기 위한 서류를 접수하는 것에 있어서도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라는 이야기까지 전해주었는데 전부 듣고 낙심한 표정으로 뒤돌아 서던 그 친구..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보이지 않는 계층(급)이 존재하며 일정 부분 계층이 아닌 이상엔 한국으로 건너와 직장 생활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아니면 돈이 억수로 많던가..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면 이전 몽까이 여행 글에서 얘기한 것 같이 4,500,000 VND (한화 200,000원) 정도를 받으면서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삶이 불행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부족한 삶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컬 마을 주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해맑다. 재배하는 논의 주인은 따로 있고 거의 모든 주민들이 소작농 또는 대리 관리인의 개념이다. 추수도 우리와 같이 이웃끼리 돌아가면서 도와주는 문화도 있으며 그런 작업을 통해 서로 간 의지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베트남은 3 모작을 하는 동남아시아 최고의 곡창지대로 알려져 있고 우리 또한 그렇게 배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거의 2 모작을 하며 2 모작이 끝나고 나면 그대로 논은 비워두게 된다. 이는 우리의 감소되는 쌀 소비와 같이 베트남 역시 외국 문화가 퍼져 나가면서 패스트푸드로 인한 쌀 소비의 감소에 따른 현상이라 전해 들었다.

모두들 알랑미라 들으면서 알고 있는 쌀은 베트남 쌀이 아니라 태국 및 방글라데시 주변 국가에서 재배하는 쌀이며, 베트남 쌀은 우리의 쌀과 거의 대동소이하게 기름기가 흐르는 맛있는 쌀에 속한다. 그래서 주변 국가로 수출하는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수로를 끼고 늘어서 있는 집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도 모기가 많지 않다
동네를 돌며 자전거에 잔뜩 실은 생활물품을 팔고 있는 만물장수.. 역시 여성이다.

어디이건, 어느 나라이건 아이들은 해맑다.

빈부의 격차가 있건, 사회적인 폐쇄성이 짙던 그건 아이들의 관심거리는 아니기 때문, 그저 자전거를 타며 놀 수 있는 골목이 있으면 행복하고, 이쁜 동생을 뒤에 태우고 바람을 쐬어주는 동네가 있다면 아이들의 행복은 그 어느 것 보다도 최고의 선물이 아닐는지. 이 아이들을 보며 우리나라 아이들을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학교에 학원에 과외에 번외 교육에, 공부라는 사슬에 묶여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내는 우리의 아이들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뛰어노는 이 아이들의 행복을 알 수 있을까?라는 마음.. 그 한편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만약에 결혼을 하게 돼서 아이를 나아 키우게 되면 공부 지지리 못해도 좋으니 졸업만 하라고 해야지." 

라는 기존의 생각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 시간이 베트남에서 갖게 되었지. 근데 와이프가 동조를 하려나?

아.. 일단 결혼부터 하는 게 급선무, 아니지 옆지기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가끔씩이라도 이런 식의 산책을 하다 보면 기존 베트남 여행에서 보지 못 했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여행지에서 봤던 휘황찬란하며 번쩍번쩍한 네온사인과 시끌시끌한 음악의 번화된 베트남 모습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이곳 일반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푸석한 삶의 모습.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POD 서비스를 이용해 내 이름의 여행 에세이(그리움이 문득 다가올 때) 출간 작업을 베트남에서 진행했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 글들 중엔 이전 베트남 여행 때 썼던 글도 존재했었는데 그 글들을 갈무리 지으면서 심한 괴리감이 들었다. 밝고 활기차며, 화려한 시간 속의 그들의 모습을 보며 써 내려갔던 그때의 감정들이 얼마나 사치였나 지금의 이런 느낌이 교차되는 상황에서 그때의 이질적인 느낌들의 글을 책에 넣어야 할까?라는 생각과 고민으로 인해 잠시 편집 작업을 중지했다. 화려함 속에 느꼈던 그 감정이 옳은 건지 지금 이들의 적나라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이 감정이 옳은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마음. 그렇게 몇 날을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은 그때의 나도 나이고, 지금의 나도 나 이기에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나름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사람, 삶

그 속에 묻어있는 진실의 향기를 추구하는 게 나의 여행이기에 그런 발걸음 속에서 타인의 삶의 비추어진 나를 투영하여 조금 더 나와 가까운 나를 찾는 여행. 어찌 보면 그 여행은 죽는 그날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이야기는 일상에서 바라본 그들의 모습을 풀어내어 봤습니다.

그들의 문화, 정치, 사회 이런 거 잘 모릅니다. 그저 그네들의 삶 속에서 내가 피부로 느꼈던 것들을 그대로 옮기고자 했기에 약간의 이질감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점에 있어서 참고하시고 바라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여행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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