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 Soo Mar 04. 2018

베트남 유랑기 Part #2

중국과 맞닿은 국경도시 몽까이...

그렇게 주말을 자유시간으로 만들고 처음 발걸음을 한 곳은 베트남 동북부 제일 끝에 있는 몽까이(Móng Cái)라는 곳이다. 그러면 대략적으로 몽까이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것이 우선이지 싶다.

이곳 몽까이는 베트남 꽝닌성의 도시로, 인구는 대략 78,000명 정도 되며 중국 광시 좡족 자치구 뚱싱시와 접하고 있는 국경도시이다. 이곳의 주민 소득이 20,000달러 정도로서 베트남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시에서 (필자는 하이퐁에서 이동을 하였으나 일반 여행자들은 하노이에서 이동이 많을 것이라 하노이 기준으로 설명을 하겠다.) 버스로 약 8시간 정도 소요되는 그다지 가까운 지역은 아니다. 

이동수단으로는 슬리퍼 버스라고 불리는 침대형 버스 (베트남어:Xe nằm giơừng - 쎄남지웅)로 요금은 대략 350,000 VND (16,000원) 일반 좌석버스의 경우 150,000 VND (7,000원) 정도의 비용으로 이용 가능하다. 그렇게 몽까이 버스 터미널에 하차를 하면 택시 또는 쎄옴(오토바이 택시)이 벌떼같이 달라붙는데 이것을 이용하여 약 20,000 VND (900원)으로 중국 국경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근데 이 촌구석 동네가 여타 다른 베트남의 지역의 물가와 중국 뚱싱시와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러니 베트남 몽까이에서 숙박을 하고자 한다면 국경을 건너가 가급적 중국 뚱싱의 호텔에서의 숙박을 하는 것이 애먼 스트레스받지 않고 좋다. 그러나, 예상하려나 몰라도 중국의 뚱싱시도 촌동네로서 친절을 기대하는 건 상당히 어리석으니 그냥 잠만 잔다..라고 생각하시길.. 

이것이 베트남의 침대형 버스이다. 침대가 있는 것은 아니고 2층 구조로 되어있으며 좌식 시트의 등받이가 150도까지 뒤로 젖혀지는 좌석으로 되어 있다

참고로 키가 필자같이 180Cm 이상인 사람들은 다리가 펴지지 않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베트남 공장에서 만든 버스이니 전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의 신장에 맞춘 버스니까 


자정이 넘은 시간 도착한 몽까이 버스터미널.. 택시와 쎄움(오토바이 택시)들이 벌떼같이 몰려든다.요금은 대동소이 그러니 인상 좋게 생긴 기사로 골라서 잡아타고 목적지로 가면된다


하이퐁에서 6시 40분 침대버스 막차를 타고 새벽 2시 30분경 도착한 몽까이는 말 그래도 적막 그 자체였다. 오로지 문이 열려있는 곳은 터미널 밖에 없다. 이곳 몽까이는 자정이 넘으면 호텔도 문을 닫고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어야 했다. 본의 아니게 새벽이슬을 맞지는 않았을 건데... 

그렇게 택시를 타고 투숙이 가능한 호텔을 찾아 몽까이의 새벽을 달려야 했다. 유일하게 영업을 하고 투숙객을 받는 곳인 카지노 호텔로 향했다. 고작 4시간 정도를 자고자 이미 예상했던 숙박비의 2.5배를 지불해야만 했다

보통 일반 호텔은 1,500,000~1,700,000 VND(70,000~80,000원) 이면 충분하지만 3,600,000 VND

(175,000원)의 고가의 5성급 호텔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난다. 


겨우 175,000원 5성급 카지노 호텔인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을 덧붙임 한다. 물론 우리 개념으로 생각을 하면 상당히 싼 가격임엔 맞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원화를 갖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설령 갖고 있더라도 받지도 않으며, 베트남 화폐인 VND(베트남 동)으로 바꾸고 이곳의 생활상으로 비춰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베트남의 일반 직장인의 한 달 평균 월급이 대략 4,500,000~5,000,000 VND이다. (200,000~250,000원)

자.. 답이 나왔을 거다. 그리 싼 가격도 아니고 심지어 일반 베트남 인들은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곳인 거다.


그렇게 잠시 눈을 붙이고는 원래의 계획보다 훨씬 늦게 일어나 느긋하게 몽까이의 하루를 열어본다.

몽까이 시의 전경


다들 그렇게 직장을 향해 아침을 달린다. 어딜가나 자동차 보다는 오토바이가 우선이다.



베트남은 집에서 거의 밥을 해 먹지 않는다. 아니 거의 해 먹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조리기구가 구비되어 있는 집들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최근 지어 올린 아파트나 맨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으나 일반 가정집의 경우는 그러하기에 거의 길에서 식사를 한다. 메뉴는 단출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Poa(포)라는 쌀국수와 Ttem(뗌)이라 부르는 볶음밥이 거의 전부다. 그렇게 어딜 가던지 아침 풍경은 아침식사를 하는 베트남인들의 모습으로 시작을 한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베트남 체류 초반이었기에 "난 이곳 음식이랑 너~무 잘 맞아."라는 최면을 걸면서 살았었기에 무턱대고 먹었던 아주 행복했던 기억이 존재한다. 곧, 그 느낌함과 니글니글함에 진저리 칠걸 생각지도 못 한 체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죽을 맛이다.)


이곳 역시 분주하게 하루를 연다.

상점들이 열리기 시작하고, 은행들이 셔터를 열고 있으며 각자의 삶의 터에서 각자의 삶을 이뤄나가기 위해 하나 같이 열심들이다. 그 와중에 느긋한 한량 한 명이 몽까이의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거지..


몽까지 중심가 분주함속에 하루가 지나고 있다.


얼마를 찾으시나요?


아.. 이걸 어디서 부터 손봐야 하나. 미치겠네...


우리나라이건 해외이건 간에 어딜 가나 들리는 곳이 시장이다.

그 이유는 내 여행의 모토가 사람이며, 삶이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사람 냄새나고 삶의 향기가 풍기는 시장이 좋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서로서로 흥정하며 한사코 깎아 달라는 사람과 절대 방어선을 지켜내서 물건을 내주는 상인들의 모습. 적당한 선에서 깎았기에 구매자도 승리자이고 절대 방어선을 지켜내었기에 판매자도 승리하는 그곳.. 바로 우리네가 사는 모습이고 전반적인 삶의 모습이 아닐까? 바로 그런 모습들이 올곧이 내려앉아 있는 시장, 그래서 난 시장이 좋다.


파란색 천막으로 지붕을 덮고, 바닥은 곳곳의 상점에서 흘러나온 물로 저벅저벅 하며 생선 비린내와 야채들의 풋내로 가득한 곳, 우리네 어머님들과 같고 그들의 어머님들인 분들이 하루를 보내며 우리 같은 손님들로 북적대며 삶의 한 자락을 이끌며 살아내고 있는 그곳, 바로 그것을 삶이라고 일컬음을 하기엔 아직 살아온 날이 부족하긴 하지만, 감히 표현을 해 본다. 

이곳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라 중국인들의 상당히 많다. 중국에서 구할 수 없는 품목들을 구매하기 위해 아침에 국경을 넘어와 장을 보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주부들도 상당수 차지한다.

그렇게 사진을 담고 있는데 한 중국 여성이 와서 말을 건다.


"한국인이세요" 하는 앳되어 보이는 여성분

"네"라고 답을 하니 이곳 몽까이에서 한국사람 보기 힘든데 느닷없이 반갑다며 악수를 건넨다. 

악수를 하며 한국이랑 관련 있냐며 묻는 질문에 자신의 남편이 한국사람이라는 답이 건네지고 엉겁결에 내 손에 쥐어진 작은 찐빵 봉지 하나가 들려있다. 여행하며 출출할 텐데 먹으라는 중국 여성분.. 

시장을 빠져나가면서 잠시 나눈 대화는 이러하다.

"한국 남편분이면 한국에서 생활하시지?"

"아이들 교육 때문에요. 한국은 교육비도 많이 들고, 중국인과 혼혈이라 왕따를 당해서 하는 수 없이 중국으로 왔어요."

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겠더라. 괜히 내가 왕따를 시킨 건 아니지만 한국인인 나 자신이 상당히 미안해지는 마음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게 되더라.

"괜찮아요, 그쪽이 미안할게 뭐가 있어요." 하면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 여자분의 모습

괜히 민망해지는 이유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잘 가요, 좋은 여행 되시고요."라고 손을 흔들며 국경 쪽으로 뒤돌아 서는 모습이 괜스레 짠하다.

(바로 위의 사진 중에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분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해는 이미 중천을 지나 오후로 접어든 시간, 몽까이의 중심부에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보러 발걸음을 이동한다.

몽까이 센터 마켓이 바로 그곳. 이곳은 중국의 물건과 베트남의 물건이 공존하는 우리나라로 치면 두X, 밀리X레 와 같은 쇼핑몰 갖가지 의류와 패션 소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곳. 그러나 그저 내 눈엔 우리나라 80년대 물품들로 가득한 곳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몽까이의 이번 걸음은 그저 평범하고 일반적인 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생활을 하고 있는 하이퐁의 화려하고 번화한 모습이 아니라 베트남 북부의 지극히 일반적인 도시의 삶,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보고 싶어서 한 발걸음이었기에 많은 곳은 다니지 않았다.

물론 이곳도 삼성에서 만든 드넓은 골프장도 있고, 스쿠터를 타고 40분 정도만 가면 바닷가(해변)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기에 철저히 배제된 이유다.



내 여행의 특별함은 없다. 단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여정일 뿐이다.

관광지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핫스폿을 다니는 것도 아니다. 더불어 패키지 같이 여러 곳을 한꺼번에 묶어 다니는 것 또한 아니다. 항간엔 이런 말도 하더라, 뭐 하러 다니냐?라는

그 말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깊이 있게 보기 위해서야. 그 속엔 너의 삶도 있고 나의 삶도 있거든."


여행은 많이 본다 해서 여행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1인이기에 더욱이 그러하다. 여행은 삶이 반영되는 장면을 얼마나 많이 잡아채느냐가 중요하지 그렇지 않고는 관광일 뿐이기에..



다시 하이퐁으로 돌아가기 전에 강변 노천카페에 앉아 비어 하노이로 목을 축여 본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자근자근 이야기를 나누는 베트남 사람들 사이로 몽까지의 하루는 깊게 그리고 촉촉하게 젖어 들어간다.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이 국경 출입국 사무소 앞에서


다음 주엔 어딜가지?라는 고민은 돌아가는 버스에서부터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여행자의 쓸데없는 고민이 끝나지 않는 하이퐁 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ESSAY

기억이 존재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야

너로부터 그리고 지난 시간 속에서의 나로부터 말이야

사랑하니까

보고 싶으니까

그리우니까


바로 네가 말이야..





본 글은 의뢰사의 의뢰 기사가 아니며 개인의 여행 글이기에 저작권 보호법에 의거하여 사진의 불펌을 금지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 유랑기 Part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