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던 한 주 , 계획대로 안 됐지만 어쨌든 일이 벌어졌다. 많이 아팠고,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시험기간 직전에 스트레스로 너무 아팠던 게 아닐까 싶었다. 선생님한테 아팠던 이야기들을 했고, 시험 끝나면 게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잉여롭게 살고 싶어 졌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하면서도 내가 잉여롭지 못해서 버거운 상태구나 싶어지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아등바등 빠듯하게 사는 걸까 의문이 들지만, 매 순간 열심히 살지 않았던 적이 없으니 이것이 또 삶이겠거니 생각한다.
막상 오는 길에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덜컥 겁이 났다.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숙제 하듯 주제를 정해 가야 할지 아니면 그냥 가도 되는 건지에 대한 생각이 들긴 해서, 뭘 이야기해야햐나 고민이 많이 되었다고 털어뒀다. 오늘, 여기에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이 되었다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아마 불성실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주어진 시간들을 불성실하게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1시간을 얼마나 더 기똥차게 살아볼 수 있을까. 더 작은 시간 동안 최고의 효율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멀티가 그래서 가장 효율이 좋지 않다는 말을 이제는 안다. 집중해서 1시간에 끝내는 것들이 더 기억에 남고 효용성이 있다고 느낀다. 고로, 그런 연유로, 온전히 상담에 집중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 다짐하고 가니, 당연히 해야 할 이야기를 주제처럼 찾아가야 하나 고민하게 되고, 또 스스로 그런 것들을 일상생활에서 찾으려 애썼다. 결국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하기도 어려워서 그냥 왔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을 하니, 상담선생님이 언니 이야기를 해달라셨다. ( 역시 내면을 볼 때는 어린 시절의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
언니랑 같이 놀던 이야기들을 했다. 집안이 속상한 일에 말을 안 하고 삐지고 이런 이야기. 우리 가족은 어쩐지 화를 내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언니랑 싸운 이야기도 쓱 하고, 언니랑 살가운 때 혹은 살갑지 못할 때, 우리의 언어습관, 오고 가는 이야기들을 했다. 언니의 결혼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형부가 생겼다는 느낌보다 언니를 잃었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지금의 조카들이 크는 걸 보면서 언니는 요즘 나를 이해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언니한테 질척거린 어린 시절이었고, 언니가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 땐 나의 보호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여전히 언니는 나의 언니, 나의 우상, 뭐랄까, 언니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언니밖에 없디>라는 책이 있을 만큼, 나의 언니는 내게 꽤 중요한 사람인 것을 말을 하다 보니 느꼈다. 나를 이해를 해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에겐 어쩐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유혹이 있는 사람이 언니다. 의지하기도 많이 의지했는데,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도 같은 애정이었을까..? 불만이 있어도, 언니에게 잘 말을 하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그런 애정들 때문이지 않을까.
회사에 받은 업무에 대한 일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덜컥 겁이 난다. 지나치게 일을 안 하는 혹은 하기 싫어하는 직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내가 살려면, 그런 시선들 따위 중요치 않았다. 업무가 나를 갉아먹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문득 이런 이야기들을 상담 선생님께 하면, 내가 한 이야기들을 듣고 어떤 진단을 내리시거나, 혹은 그 이후의 피드백을 따로 준비해 오시는 것일까, 싶어졌다. 내가 지나치게 심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인지하지만, 그래도 혹여나 어떤 병명이 주어지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그 모든 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은 그저 있는 그대로 괜찮다, 할 수 있을 만큼만 하자, 안될 것 같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들이 필요했다. 그런데, 삶을 본다면 이게 과연 정말 능사일까. 매 순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불성실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싶은데, 나 몰라라 하는 태도로 있는 그대로 괜찮다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이 발전 없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그럼 삶에 어떤 이점과 노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그냥 사는 게 정말 괜찮다고? 어떤 시너지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태어난 이유들이 분명히 존재할 텐데 싶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나도 어떤 면에서 사람들을 무능하다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를 옭아매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선생님이 적절한 피드백과, 숙제를 내준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이행할 생각이 있는 것일지도 의문이다. 혹시 내가 질문으로 끝나는 말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피드백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흠. 애초에 나는 피드백을 정말로 원하고 있는 것일까. 상담을 하면서도, 내 치부를 드러내고 있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들이 정말 나의 생각과 상황들이 나아지게 할지 자꾸 의문이 든다. 그냥 나만 알아달라고 생떼를 부리고 징징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