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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 Feb 25. 2020

'오리무중' 이탈리아·이란 코로나19

유럽, 중동도 '이동의 위기'

이탈리아 북부 상업중심지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 관광객들이 붐비던 광장의 식당이 24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산 사태 때문에 텅 비어 있다.  AFP


세계보건기구(WHO)는 24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판데믹(세계적인 대유행)으로 보기엔 이르다면서도 “판데믹이 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현재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한 나라는 34개국이다. 중국 감염자는 8만명에 육박하며 한국은 800명이 넘었다. 이탈리아도 200명을 넘어섰다. 싱가포르는 90명에 이르렀고 이란에서는 61명 감염에 12명이 사망했다. 
 

그 외에 감염자가 두자릿수인 곳은 미국, 태국, 대만, 호주, 말레이시아, 독일, 베트남, 영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프랑스, 캐나다 등이다. 세계가 주시하는 곳은 한국, 이탈리아, 이란의 감염자 폭발이다. 한국의 비밀스런 종교집단 ‘신천지’에 대한 해외 언론 기사들이 줄줄이 나온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큰 의문과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감염 경로조차 알 수 없는 이탈리아와 이란 상황이다.


밀라노가 멈췄다…그런데 왜?
 

이탈리아의 상업 중심지이자 ‘패션의 수도’로 불리는 밀라노. 관광객들이 몰리던 두오모 대성당과 라스칼라 오페라극장은 24일 문이 닫혔고 은행과 가게들도 셔터를 내렸다. 한창 붐벼야 할 식당과 술집들, 상점들 모두 문을 닫거나 한산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기업들과 은행들, 패션업체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현지 언론 코리에레델라세라는 “밀라노는 ‘정지’ 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고 표현했다. 밀라노가 있는 북부 롬바르디주가 코로나19 확산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근교 코도뇨의 교차로에 ‘카라비니에리’라 불리는 무장경찰이 서 있다. AP


이탈리아 내 감염자 수는 24일 현재 229명에 이른다. 누적 사망자는 7명이고, 20여명은 중태다. 감염자 절반이 롬바르디주에서 나왔다. 주 내 도시 11곳은 봉쇄 중이다. 정부는 지진 피해에 준해 감세 등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롬바르디주 전체로 보면 20%의 비중을 차지한다. 가뜩이나 정체된 이탈리아 경제는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게 생겼다. 확산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탈리아는 중국발 경제 피해를 걱정해왔다. 중국을 오가는 비행편은 중단됐고 이탈리아 회사들의 중국 내 공장들은 문을 닫은 터였다. 밀라노 회사들의 경우 중국에 생산의 20% 정도를 의존해온 것으로 추산된다. 롬바르디와 함께 코로나19가 퍼진 베네토주 역시 주도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 중심지다.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도 24일에는 관광객이 끊겨 한산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탈리아 북부 감염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당국은 지난달 말 로마에서 60대 중국인 관광객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자 곧바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4월 말까지 중화권 전역 직항노선 운항을 중단시켰다. 중국이 ‘과잉 대응’이라며 불만을 표했을 정도였다. 이후 우한에서 귀국한 이탈리아인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21일 롬바르디와 베네토에서 확진자가 나오더니 2명이 숨졌고 며칠 새 감염자 수가 폭증했다.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한 수퍼마켓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주민들이 식료품 사재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EPA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밀라노 근교에 사는 30대 남성이 ‘슈퍼 전파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남성이 폐렴으로 입원했던 병원의 의료진 등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하지만 이 남성은 중국을 여행한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서 옮았을 텐데, 최초 감염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롬바르디와 베네토의 감염자들 간 연관성도 의문이다. 현지 중국인 사업가들을 검사했으나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당국이 출입국 통제를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가 중국에서 감염돼 들어왔거나, 중국에서 직접 오지 않고 주변국을 경유해 이탈리아로 들어왔을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번 감염증에서 안전하다고 여기고 있던 유럽은 이탈리아 상황이 심각해지자 2015년 난민 유입 이래 가장 큰 ‘이동의 위기’(미국 뉴욕타임스의 표현)를 맞게 됐다. 이탈리아 북부는 프랑스,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5개국과 맞닿아 있으며 독일과도 왕래가 많다. 아직 접경국들이 국경을 닫아걸지는 않았지만 이동자들의 검역과 격리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북부 통제’가 시작됐다. 남부 바실리카타 지역은 북부에서 오는 이들을 검역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신혼여행객들을 격리시킨 인도양 섬나라 모리셔스는 로마발 알리탈리아 항공편에도 “격리와 회항 중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베네치아에서 24일 찍기 시작할 예정이던 영화 ‘미션 임파서블’ 촬영 일정을 보류했다. 


19일 이란 테헤란의 국영 약국에서 시민들이 약을 사고 있다. 이란은 코로나19 사망자가 늘고 있으나 미국의 경제제재로 마스크와 항생제조차 부족한 형편이다.  AFP


‘감염 은폐’ 의혹에 눈총 받는 이란
 

이란은 24일 현재 사망자가 12명으로, 중국 다음으로 많다. 문제는 감염자 수다. 19일 첫 감염자가 나왔다고 발표한 이래, 정부가 밝힌 공식 확진자 수는 61명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사망자가 더 적은데 감염자는 800명이 넘는다”며 이란 측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란은 지난 21일 총선을 치렀다. 당국이 선거를 앞두고 감염증 발생 사실을 쉬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나온다. 현지 국회의원 아마드 아미리 파라하니는 마즐리스(의회)에 나와 “사망자가 최소 50명은 될 것”이라며 당국이 축소·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장관은 강력 부인했다.
 

테헤란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이슬람 성지 곰(Qom)에서 집중 발생한 이유도 의문이다. 연간 성지순례객 수백만 명이 몰리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최초 감염자와 감염 경로는 역시 파악되지 않았다. 순례자, 중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중국인 유학생, 중국과 거래하는 사업가들 등등 추측만 무성하다.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24일(현지시간) 의료진이 출입국자들의 발열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 EPA


지금까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레바논, UAE, 캐나다에서 이란과 관련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왔다. 쿠웨이트의 경우 24일 처음으로 감염자 3명이 확인됐는데 이란 시아파 성지 마슈하드를 다녀온 이들이었다고 국영 KUNA통신은 전했다. 쿠웨이트는 21일 이란행 항공노선을 중단시켰다. 이란에 머물렀던 외국인 입국도 금지하고 23일에는 뱃길까지 끊었다. 이란에 성지순례를 갔던 자국민은 전세기로 철수시키고 격리 조치했다. 이번에 확인된 감염자들은 격리됐던 성지순례자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란 체류 외국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이라크와 바레인에서도 24일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왔다. 오만 당국도 이날 이란에 다녀온 자국민 2명의 확진을 발표하면서 이란행 항공편 운항을 중단시켰다. 이라크, 바레인, 오만 모두 이란과 긴밀한 관계인 나라들이다. 걸프 국가들 중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예멘에는 아직 확진자가 없지만 이대로라면 중동 전역에 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사우디는 거주민의 이란 방문이나 이란서 오는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있다. UAE는 24일 이란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했다. UAE에서는 이란인 관광객 부부가 확진을 받고 치료 중이다. 


이란에서 돌아온 여행객들이 격리돼 있는 쿠웨이트 아흐마디의 한 호텔 앞에서 24일(현지시간) 군인들이 이동 차량을 검문하고 있다.  신화


이란 당국은 학교들에 휴업령을 내리고 대중들이 모이는 행사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 때문에 의약품을 구하는 데에 애를 먹고 있으며 마스크와 항생제조차 부족하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더 큰 문제는 이란에서 더 열악한 다른 나라들로 전파되는 것이다. 이란 동쪽 아프간에서도 곰을 방문하고 돌아온 1명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란은 국경선이 5894km에 이르며 7개국과 접경하고 있다. 서쪽의 이라크뿐 아니라 북쪽으로는 터키·아제르바이잔·투르크메니스탄과 아르메니아, 동쪽으로는 파키스탄과 아프간에 국경을 맞대고 있다. 파키스탄이나 아프간과 접한 국경이 각기 900km가 넘는데 국경 검문소도 몇 개 없고 주민들 이동도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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