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2주 전부터 온다는 사람들이 드디어 왔다. 아침 7시 조회 시간과 오후 1시 기술협의 시간에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듣고 또 들었던 잔소리들, 소위 "점검"이라는 명목 아래 노동자들이 해야 할 행동 지침들,
- 입수 보행 금지
- 보행 시 전화사용 금지
- 사다리 사용 금지
- 지정된 장소 외 흡연 금지
- 작업장 간식 반입 금지
- 철근 걸림과 찔림 조심
- 우마 위 전도 주의
- 작업 후 잔재물 청소하기
- 남은 자재를 적재하고 소화기 비치
.... ,
한 두 번 들으면 노동자를 위해서 참 애쓰는구나 하겠지만 매달 있는 정기 점검 외에도 외부 기관에서 점검을 나오는 날이면 오전, 오후 작업 시작 전에 모아놓고 한 말 또 하고 또 하니 ‘현장점검’이 예정되어 있는 날이면 작업공정은 안중에도 없다.
점검 첫날, 노동자의 안전을 도모해야 할 안전 요원들이 아파트 8층 작업장에 올라와서는
"점검 나왔어요, 점검!"
"마스크 쓰세요!"
그리고는 점검자가 지나갈 통로마다 혹시 귀빈께서 모서리에 부딪혀 다칠까 봐, 모서리마다 배관 작업에 사용되는 주름 전선관을 구부려 예쁘게 타이로 묶어 놓은 것을 보니, 안전 요원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지난 몇 년간 보도된 통계에 의하면 출근 첫날 시행하는 안전교육과 안전순찰 활동을 계속해왔지만 노동자들의 사망과 부상 사고가 줄지 않은 이유는 저 앞잡이들이 멍멍이 흉내를 내며 윗분께만 꼬리 치는 걸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잠시 후 ○○건설 현장직원 백차장님이 올라와
"곧 올라오십니다. “라며 작업자들의 동태를 쓰윽 확인하고는 곧바로 사라졌다. 나름 그동안 교육한 결과물을 본인의 고과 점수에 담아내기 위함이겠지? 그리고는 안전교육 담당자를 비롯하여 네댓 명의 직원들을 동행한 그분들은 2~3분도 안 걸리고 그냥 쓱 스쳐 지나갔다.
아~, 빽차장!
고작 스쳐 지나가는 귀빈을 위하여 그리도 달달 볶으셨나요?
다음 날 퇴근 시간에 임박해서 전해 온 소식은
오후에 재기한다는 ‘현장점검’은 꿩 구워 먹은 듯하고 내일은 현장 전체가 휴무란 소식만 전해온다.
2주 간의 우리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지적을 받은 걸까? 아니면 어제 받은 점검 평가에서 인양물을 올리고 내리는 문제만 지적받았다는데, 휴무라니...?
우리 모두는 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려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본 회사 다른 사업장에서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답니다."
아! CD, 시베리아, 십팔색 크레파스...
아! ‘지랄ㅡ시스템’
한 동료는
"이놈의 회사는 '편의점'으로 만족해야 했어."
한 혹자가 말하기를 너그럽게도 '주유소'까지는 그 능력을 '허'한다 한다.
200628
*입수보행금지: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지 말 것
*우마: 사다리 대용의 발판
*전도:떨어져 넘어짐
*CD:플라스틱 주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