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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Mar 11. 2024

[치앙마이 1일 차] 또 왔어요 취향마이

취향여행자의 마음의 고향

어젯밤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벌써 네 번째 치앙마이라면 믿겠는가. 작년 1월에 한 달 살기 이후 1년 만이다.


치앙마이 직항 편이 생긴 지 오래됐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직항을 타고 왔다. 그동안은 에어아시아로 방콕에 들렀다 오거나, 침대열차 로망 때문에 야간기차 타고 치앙마이로 넘어왔으니 말이다. 근데 제주항공, 진에어, 대한항공 3곳이나 치앙마이로 바로 데려다주더라. 운전해서 부산 갈 시간 정도니 마음의 고향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놀랍게도 이번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에 캐리어를 끌었다. 매번 위탁수화물 추가 안 하고 다녔기 때문. 저렴한 항공가격과 쉬운 이동에 집착하다 보니 배낭여행이 최고라 생각했다.


그동안 기내수화물 7kg에서 쩔쩔맨 사람은 나야 나. 물론 7kg을 넘는 짐은 빨간 낚시조끼에 캥거루처럼 차고 다녔던 건 비밀이다. 작년에 배낭 하나에 노트북까지 이고 주렁주렁 6개월을 어떻게 다녔나 싶다.


위탁수화물 15kg와 기내수화물 10kg가 되면 여유가 생길 줄 알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나. 캐리어 무게도 초과할 뻔했다.


공항 곳곳에 설치된 무료저울에서 무게를 확인하니 18kg였다. 내 캐리어엔 무게 재는 저울이 달려있어서 집에서 쟀을 땐 15kg였는데. 웃긴 게 캐리어 본인 무게는 못 재나 보다. 허겁지겁 주머니를 꺼내 4kg를 꺼내 담았다.


온라인으로 하루 전에 체크인해서 앉고 싶은 자리도 정해놨고, 별도의 종이티켓도 필요 없었다. 위탁수화물도 키오스크에서 스스로 붙이는 신세계를 맛봤다. 불확실성에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자동화가 좋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숙소 찾는 게 한달살이 여행자에겐 중요한 이벤트이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치앙마이 한달살이 숙소 구하기 콘텐츠는 조회수 만능열쇠다. 집 구하기는 한달살이의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해서 도착하자마자 혼이 빠질 수 있다.


다행히 지난 숙소에 머물며 엄마뻘 사장님과 친구가 되었다. 이번엔 사장님의 다른 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주거안정이 내게는 중요한데, 미리 집을 구하고 갈 수 있어 편안했다.


그녀는 지금 일본여행 중이다. 돈은 나중에 만날 때 주고, 빈 집에 마음 편히 지내고 있으라고 안심시켰다. 보통은 이런 신뢰가 없어서 직접 집을 구하면 1~2달짜리 보증금을 현금으로 미리 내야 하는데 말이다. 예전에 쌓아둔 신뢰가 있어서 감사하다.


저번에 공항에서 볼트를 잡다가 하도 안 잡혀서 애 먹었던 경험이 있다. 이번엔 돈을 더 내고 공항택시를 타기로 했다. 시내면 150밧인데, 외곽이라 200밧을 냈다. 비싸지만 빠르고 안전하다. 밤 12시 전에 무사히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태국 시간은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니, 일단 2시간을 잠시 번 느낌이 든다. 아침엔 짹짹이는 새소리에 잠에서 깼다. 핸드폰 모닝 알림 콜을 안 맞춰도 될 것 같다.


오전엔 중고자전거를 샀다. 자전거를 빌릴 돈으로 실컷 내 자전거를 탈 수 있기 때문. 그동안 목적지까지 걸어가고 숙소 돌아올 때만 볼트 오토바이 택시 뒷자리에 타고 다녔다. 짧은 두 다리로 갈 수 있는 거리엔 한계가 명확했다. 드넓은 기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전거구매를 미리 알아본 것이다.


오토바이 면허를 50만 원 주고 한국에서 속성으로 취득하거나 태국에 와서 면허를 발급받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급하게 새로운 걸 도모하는 건 위험하다 느꼈다. 친구 등 뒤에 오토바이를 타보니 속도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게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20년 넘게 큰 사고 없이 낮은 속도로 안전하게 타온 자전거에 집중했다.


새 자전거는 2,600밧에 lotus에서 살 수 있는데, 중고자전거는 1,200밧에 살 수 있더라. 자전거 렌털업체에선 한 달을 빌리려면 여권 사본과 보증금 1,000밧을 걸어야 하는데. 그건 좀 부담스럽지 않나.


 지난주에 미리 페이스북으로 자전거 거래약속을 잡아놓았다.  판매자가 연락이 엄청 잘돼서 안심이었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 늦게 오긴 했지만.


판매자는 프랑스인 아저씨인데 가족들과 9년째 치앙마이에 살고 있단다. 그의 고향을 물어보니, 보르도였다. 작년에 뚤루즈에 다녀왔다고 하니 자기도 뚤루즈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자전거를 샀을 뿐인데, 보르도가 궁금해졌다. 와인 맛도.


한껏 높아있던 안장이 부담스러웠다. 돈을 지불하기 전에 가장 당당히 요구사항을 말할 수 있는 법. 아저씨가 안장 위치를 조정해 주셨다. 그제야 내게 맞는 자리를 찾았다. 자전거 값이 들어있는 봉투를 드렸다.


필요한 자전거용품은 20 바트샵이 곳곳에 많으니 구하고, 언제든 필요할 때 편하게 연락하란다. 자전거 구매로 치앙마이 로컬 한 명을 얻었다. 이것도 기념이니 사진 찍자고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헬멧과 이런저런 자전거용품을 세팅했다. 낑낑대며 챙겨 온 보람이 있다. 아저씨가 한국 돌아갈 때 다시 자전거 사주신다고 하셨다. 과연 얼마에 다시 팔 수 있을까.


수많은 나라와 도시들이 있지만, 마음의 고향 치앙마이에 다시 왔다. 친구들은 또 치앙마이에 가냐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 긴 여행에서 느낀 건 내가 결국 좋아하는 걸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도. 야간버스 이동도. 산티아고 순례길도. 돈은 물론 긴 시간도 필요하고, 내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끝까지 해낼 끈기도. 남들은 한 번도 엄두를 못 내는 걸 계속한다면 그건 재능은 아니더라도 나의 취향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곳에 다시 와서 좋아하는 걸 씩씩하게 알려봐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확실한 내 길이 아닐까.


물론 좋아하는 것만 하지는 않고 안 해본 것도 도전해 볼 것이다. 이미 여러 번 와본 곳에서 느끼는 안정감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리라 믿는다. 어찌 됐든 내 글을 접하는 사람들이 치앙마이에 관심이 생기고 자기만의 취향을 찾길 바라며 돌아다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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