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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Oct 13. 2024

엄마가 우리 엄마라 다행이야

산티아고순례길 전지훈련

드디어 생장 피드 포흐에 도착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이 동네. 순례자 사무실의 친절과 순례자여권(크레덴시알) 가격은 예전과 동일하다.


첫 방문엔 정신없이 길만 보느라 풍경이 어땠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을 그냥 지나치고 크레덴시알 받자마자 걸어버렸다니. 다시 오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기쁨이다.


사실 생장 피드 포흐까지 어렵게 당도했다. 10월 10일에 중국 상해에서 환승과 15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프랑스 파리. 11일엔 숙소 인근 데카트론, 방센느 국립공원, 개선문, 에펠탑, 파리 자유의 여신상을 누볐다. 특히 자유의 여신상부터 베흑시 버스터미널까지 센강 따라 2시간을 무거운 배낭을 이고 지고 야밤에 걸었다.


밤 버스를 9시간 타고서 12일 아침에 도착한 바욘. 바욘대성당부터 주말시장, 요새 한 바퀴까지 알차게 돌았다. 바욘의 명물인 하몽, 초콜릿, 바스크케이크까지 섭렵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고.


다시 오후 2시 기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정착한 생장 피드 포흐인 것이다. 하루 넘게 머물 곳도 없이, 씻지 못하고, 무거운 짐을 이고 두 발로 돌아다니는 일정이 계속된 셈. 끝내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 여권 받고, 언덕을 좀 더 올라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나서야 속이 시원했다. 땀내로 가득한 축축한 나를 드디어 뽀송하게 씻을 수 있어서.


샤워를 마치고, 동키를 신청하러 갔다. 동키는 배낭 하나에 8유로. 파리를 하루종일 누빈 끝에 엄마는 동키행을 결정했다. 무사히 접수 완료. 내일 아침 8시까지 숙소에 배낭 싸두면 된다는 안내에 순례자가 된 것이 이제 좀 실감이 나더라.


사실 내가 계획한 일정이지만 3일간의 강행군에 심신이 지쳤다. 근데 엄마는 절대 힘들다는 말이 일절 없었다. 엄만 괜찮다고 연신 말하며, 생장 피드 포흐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성벽 전망대도 야무지게 쏘다녔다.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일정은 우리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 무거운 배낭 메고 파리를 하루종일 누비는 사람은 우리뿐이더라.  ” 순례길을 위한 전지훈련만큼은 짧지만 혹독하게 했다.


개 한 마리와 고양이 10마리가 있는 파리 에어비앤비에서 하루 묵어보고. 파리에서 10kg짜리 배낭 메고 하루종일 걸어 다니고, 배낭 크기 때문에 개선문에 못 올라가기도 하고, 야간버스로 숙소 없이 밤을 지새워도 보고. 바욘 구시가지를 배낭을 품고 굳이 구경 다니고, 생장 피드 포흐 한 바퀴를 지도 없이 누비고 말이다.


 그 피곤함이 사르르 녹아든 순간은 바로 커뮤니티 디너. 맛있는 저녁식사를 순례자 1일 차 신입들과 나누는 시간. 이름, 나라, 나만의 순례길 역사를 소개하며 서로를 처음 알아갔다. 엄마와 함께 걷는 첫 번째 프랑스길을 다 같이 응원해 줬다.


 엄마도 나도 샐러드와 카레접시를 여러 번 리필하여 듬뿍 맛봤다. 순례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맛과 사람 사이의 다정함. 혼자만 알던 이 맛을 우리 엄마에게도 맛보게 하는데 10년이 걸렸네.


 어려운 길도 뚜벅뚜벅 같이 걸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안심되는 일인지. 덕분에 생장 피드 포흐까지 무사히 왔다. 곧 넘을 피레네산맥도 난이도는 별 다섯 개이지만 힘차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씩씩한 우리 엄마랑 함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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