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에게

by 뜻지

1년간 난임휴직을 쓰고 난임병원을 다녔다. 휴직을 쓴 목표가 하반기까지 이루어지지 않으니 마음이 복잡하고 초조해졌다. 임신은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한 내에 꼭 마쳐야 할 과제를 끝내지 못한 수험생처럼 조급해졌다. 노산에 해당하는 내 나이에 대한 압박감도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배란 주사와 각종 유도제로 몸이 망가져갈 무렵 원장님께서 휴식기를 선언하셨다.

그 휴식의 달에 정말 뜬금없이 자연임신이 됐다. 처음으로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고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테스트기를 했다. 날이 갈수록 진해져 가는 선을 확인하며 안도하고 기뻐했다. 남편과 함께 각종 임신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다. 엄마의 일기와 아빠의 일기도 쓰고, 태명도 만들어줬다. 우리가 한창 클로드로 바이브코딩을 할 무렵에 생겨난 아기라서 '클로드'라는 태명을 붙여주었다.

클로드. 프랑스에서 흔히 쓰이는 남성의 이름. 클로드 모네, 클로드 드뷔시. 밝고 현명하다는 뜻을 지닌 클로드. 요즘은 AI 언어 모델로 유명한 클로드. 예쁜 구름을 보며 그렇게 기도했던 클로드. 우리가 웨딩 사진을 촬영했던 스튜디오의 이름도 클로드. 붙일 수 있는 온갖 좋은 의미를 부여했다. 잔뜩 신이 난 나는 일찌감치 산후조리원도 예약하고 태아보험도 가입했다. 남편을 닦달해 아직 귀도 안 생겼을 클로드에게 밤마다 태담을 건넸다.

자고, 숭늉을 먹고, 자고, 토하고 외에는 그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는 극심한 입덧 시기를 보냈다. 입덧이 심해서 죽을 것 같았지만, 이렇게 강렬한 입덧은 아기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이리라 생각해서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다. 8주 차에 병원에서 계류유산 소견을 들으면서도 나는 내 입덧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설명하며 원장님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산이 진행되며 자연배출이 되거나 소파술을 진행한 이후더라도 임신호르몬의 수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입덧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원장님께서는 담담히 설명해 주셨다. 이제는 더 이상 기쁨일 수 없는 입덧을 잠재우기 위한 입덧약과 아기집을 자연 배출하기 위한 질정제를 처방받았다. 모순적인 조합의 약들이 가득한 약봉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차를 탔다.

적막한 차 안을 가득 채운 건 노래였다. 최유리의 '우리의 언어'. 그 가사, 단어 하나하나가 심장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너무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치 연말 선물처럼 우리를 찾아와 준 아기. 생전 처음 느껴보는 환희를 선물해 준 클로드. 당분간 요가를 할 수 없는 상황도, 호르몬으로 출렁이던 감정의 파고도, 지옥의 맛과도 같은 입덧도, 전부 감당하고 싶었는데. 이 모든 것이 만남을 위한 통과의례라면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는데.


네 이름은 내게는 아름다운 세상이야 그거면 난 충분해. 우리는 그거면 된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된다. 또 멀어지다 울음 훔치는 것도 찰나의 순간일 뿐 이렇게 모든 마음이 우리의 사랑일 거란다.


내내 괜찮을 거란 희망을 잃지 않았던 나는 처음으로 눈물을 쏟으며 내가 클로드를 잃었음을 받아들였다. 클로드의 상실보다는 내 몸의 상태가 더 걱정이었던 남편은 질정으로 아기집이 깨끗하게 자연배출되어 소파술까지는 진행되지 않기만을 다만 바랐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남편은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았다. 그의 단단함에 한없이 의지하면서도 나와 함께 서러운 눈물을 쏟아주지 않아서 외로웠다.

우리의 임신 소식을 일찍 알게 된 가족과 지인들이 건네는 상심과 위로의 말을 마주하며, 왜 임신 소식을 최대한 늦게 전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나와 같이 초기 유산을 겪었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아픔을 열어 보여준 그 마음에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조리원과 태아 보험을 취소하며, 재빠르게 행동하는 일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행의 이유를 끝없이 생각했다. 25프로에 육박하는 초기 유산의 확률에 다만 내가 들었을 뿐일까. 역시 많은 나이 때문일까. 네이버를 켜고 유산 키워드를 계속해서 검색했다. 나보다 더 높은 주수에 유산을 한 사례가 너무나도 많았다. 타인의 불행으로 내 아픔을 치유할 수는 없었다. 그도 슬프고 나도 슬프고 두려움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다음에 임신이 되더라도, 기형아 검사를 통과하더라도, 29주를 넘기더라도, 유산할 수 있구나.

임신도 어렵지만 매주차의 퀘스트를 통과하여 건강하게 출산까지 가는 일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막달까지 입덧이 너무 심해서 외할머니가 차라리 나를 지우라고 했다던 엄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게 고생하며 낳은 딸내미가 당신을 그토록 모질게 대했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와 내가 한창 어려운 시기를 겪었을 때 내 꿈에 나타난 외할머니는 어떤 의미였을까. 상실에 대한 아픔은 불효에 대한 참회로 이어졌다.

한 달이 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누워서만 지냈기에 한없이 내달리는 내 생각 화로에는 장작이 마를 틈이 없었다. 불효에 대한 참회가 정리될 무렵 나는 또 다른 질문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왜 하필 난자 상태가 좋지 않아 쉬어가야 한다던 달에 그렇게 안 되던 임신이 성공하게 된 걸까?' 그러니까 대체 왜 클로드가 우리에게 왔고, 그리고 왜 그렇게 빨리 떠나버렸는지에 대한 이 질문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 안에서 그 답을 내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네이버로 검색할 수 있는 유산 키워드는 대부분 다 읽었기에 스레드로 넘어갔다. 스레드에서 본 한 글귀는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업이 거의 소멸되어 환생하지 않아도 되는 성숙한 영혼일수록 세상을 짧게 체험하는데 그게 자연유산되는 아기들이라고. 세상에 왔다 갔어야만 하는 영혼에게 내 몸을 잠시 빌려준 것이라고. 연말의 환희는 클로드가 내게 준 선물이었고, 연초의 상실은 내가 클로드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모든 업이 정화되어 클로드의 윤회가 끝났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업과 윤회에 대한 생각은 나의 카르마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내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내가 그들에게 준 상처보다는 내가 그들에게 받은 상처만을 생각하며, 지나가버린 인연을 참 오랫동안 저주하고 있었다.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에 결국 내 마음이 오염되고 스스로 업보를 쌓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미움은 결국 상대가 아닌 나 자신에게 원한을 쌓는 일이었고, 내가 옳고 그들이 그르다고 여겼던 분별심의 칼날 끝은 결국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물론 과거에도 그렇게 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진심으로 행하기는 어려웠던 역지사지. 이제는 만나서 따질 수도 없는 인연이기에 늘 정답 없는 질문으로 남아있던 원망들. 그들이 날 괴롭혔던 것이 아니라 내가 놓지 않았기에 여전히 괴로웠구나. 인연의 과보를 기꺼이 받겠다는 마음. 법륜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곧 마흔을 앞둔 나도 안 되는 역지사지를 열 살도 안 된 꼬마들한테 해보라고 가르쳤나 싶어 민망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클로드에게

너와의 짧은 인연이 그저 없었던 일로 사라지는 게 싫어서 남겨두는 이 기록은 어쩌면 나의 또 다른 집착일지도 모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너를 잊으려 노력하겠지.

윤회하지 않는다는 건 무엇일까. 너는 피안에 이르렀을까. 내가 이번 생에 좋은 업을 쌓는다면 너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이런 망상조차 또 하나의 집착이고 결국은 내 업보가 되는 걸까. 자꾸만 떠오르는 많은 생각을 멈추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

너를 만나리라 고대했던 여름은 매년 돌아올 거야. 8월 25일이 내게 잊을 수 없는 날짜가 되었다는 사실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아. 너를 보내주는 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인 걸 알지만, 그래도 널 완전히 잊고 싶지는 않거든. 너는 내게 또 다른 세계의 문이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존재해야만 했던 인연이었다고 믿어.

고요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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