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신호등

마음과 마음 사이

by 뜻지
아이들이 동그란 이름표를 만들어 빨간불, 노란불, 초록불에 붙였다.

꼭 신호등처럼 생겼지? 이건 마음 신호등이야.

우리 반은 아침 맞이 활동으로 내 마음 신호등을 표시할 거야.

어떤 날은 몸이 아프고 피곤하고 그냥 다 짜증이 나.

반면에 어떤 날은 기운이 넘치고 뭐든 즐겁고 좋아.

선생님도 그래.

너희의 몸과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줘.

너희가 붙인 마음 신호등을 꼭 살펴볼게. 선생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너희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 지 알 수 있어. 마찬가지로 나 또한 다른 친구의 상태를 살펴볼 수 있지.


빨간불에 있는 친구에게는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그래, 좀 더 배려해주면 좋겠지.

내가 빨간불에 있을 때 친구들이 어떻게 대하면 좋겠어?

응, 잠시 내버려 두면 좋겠구나.



내 마음 신호등을 표시하고 다른 친구의 마음 신호등을 살펴보는 활동을 아침 맞이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음 신호등을 예상치 못한 용도로 사용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마음과 마음이 다정하고 귀여워서 기록해두었다.


민지와 영교가 있다. 영교의 과한 행동에 민지가 기분이 상했고, 영교는 바로 사과를 했다. 민지는 영교의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아직 마음이 덜 풀렸다. 민지의 눈치를 보며 영교는 내내 민지 옆에 붙어서 계속 사과를 하고 또 했다. 영교의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도, 마냥 싫다고 뿌리치기도 힘든 민지의 마음. 민지는 결국 엎드린 채 울고 있다.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꼬마들이 와서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마도 그걸 말해주러 온 아이들의 속뜻은 이럴 테다. 비상 비상! 선생님은 당장 가서 이 사태를 해결하시오, 출동 출동!


그러나 당장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지 않고 이렇게 말하며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친구가 울고 있으니 걱정이 많이 되나 보구나. 그런데 당사자인 민지가 선생님께 직접 온 것은 아니어서 난 일단 지켜보려고 해. 민지가 어떻게 하려나 기다려볼까?'


내 말에 수긍하며 돌아선 아이 몇은 젠가 게임을 하러 떠났고,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뒤돌아 선 아이 몇은 불편한 감정이 고여있는 두 친구 주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민지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별안간 일어서더니 마음 신호등 판 앞으로 다가갔다. 초록불에 붙여진 제 이름을 빨간불로 옮기고는 민지는 화장실로 휑하니 가 버렸다. 한창 민지의 눈치를 보던 영교도 민지를 뒤따라 마음 신호등 앞으로 갔다. 마음 신호등에서 민지의 이름표를 찾았는데, 빨간 신호등으로 옮겨진 것을 확인한 우리의 영교. 영교도 초록불에 붙여진 제 이름도 빨간불로 옮기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가 '힝'하며 엎드렸다.


두 아이는 진지하게 속상한데. 그 순간 두 꼬마의 그 행동이 어찌나 귀엽던지. 수업이 마치면 꼭 글로 써야겠다 다짐하고 메모장에 휘리릭 마음 신호등. 영교. 민지라고만 저장해두었다. 그리고 한참을 이 일을 잊고 지냈다. 방과 후쯤에는 민지와 영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행복한 기록은 코로나 이전의 학교의 모습이다.

공용물품 사용금지라는 지침이 없던 시절. 옹기종기 모여 친구들의 마음 이름표를 살펴보는 일이 당연했던 날들. 짝꿍, 모둠, 놀이, 싸움, 웃음, 울음이 일상다반사였던 10살들과의 하루. 그 소중한 시간의 기록을 부지런히 하지 않은 나 자신의 게으름을 반성한다.


마스크가 가려버린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이 그립다. 서로 꼭 붙어서 아웅다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지금, 코로나 시대의 아이들은 서로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지나간 소중한 기억도, 애틋한 지금의 시간도 부지런히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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