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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케이 진 Mar 28. 2016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

막장이 명품이 되는 순간

여기 의붓아들을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남편이 집을 비웠을 때, 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같은 이 스토리. 사실은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 <페드르>의 내용이다. 이 작품을 집필한 작가 장 라신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 <파이드라>를 재해석해서 이 작품을 썼다. 원래 고대 그리스의 작품에는 이처럼 비상식적인 사랑이 많이 그려졌다. 그런데도 막장이라 비난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페드르>의 내용부터 언급하겠다. 궁금할 테니까. 

페드르는 아테네의 왕비다. 그녀는 남편 테제 왕이 원정을 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붓아들 이폴리트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게 된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유모는 페드르에게 사랑을 고백하라고 조언해준다. 고심 끝에 페드르는 의붓아들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아들은 그 마음을 거절한다. 이후 죽었다고 믿었던 테제 왕이 살아 돌아온다. 페드르는 죄책감에 더욱 괴로워하고 유모는 이폴리트가 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을 말할까 봐 두려워한다. 결국 유모는 테제 왕에게 이폴리트가 먼저 페드르를 유혹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화가 난 테제는 아들 이폴리트를 추방한 뒤 죽여버린다. 양심에 가책을 느낀 페드르는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독약을 마신다. 

페드르는 금지된 사랑을 이성으로 극복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스스로를 단죄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불행해질 줄 알면서도 치명적인 사랑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인간. 어쩌면 우리에게도 이런 나약함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지독한 사랑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여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막장과 명작의 차이는 바로 이런 것이다. 비상식적인 설정으로도 사람들을 충분히 설득시킬 수 있는 개연성.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가 뒷받침될 때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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