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케이 진 Nov 12. 2017

언젠간 꼭 헤어진다. 우리 모두...

지구를 떠난 가족 이야기

중년의 나이인 오빠가 어느날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진한 곤색 양복을 입고 체크 문양의 넥타이를 매고 샤프한 턱선을 고스란히 간직했던 오빠의 모습은 20대 후반, 한창 오빠가 직장생활 할때, 오빠 인생에서 가장 빛나 보였을 때, 딱 그때의 모습으로 나타나 내 걱정을 해주었지요. 

또 한번은 금속공예가가 돼서 나타났습니다. 한번도 금속공예를 한적이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뚝딱 뚝딱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와 오빠한테 이런 재주가 있었어? 사업해도 되겠네' 라고 말했을 때,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빠가 엄청 쎈 토치 불에 손을 데였는데 전혀 아파하지 않는 겁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꿈이구나.... 맞아 오빠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그러면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던 그해, 오빠도 홀연히 이 지구를 떠났습니다. 떠나던 그날 하늘이 무너진 듯 비가 내렸습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늘 내 곁에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들이 언젠가는 하나 둘 내곁을 떠날거라고, 그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막을 수 없는 순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준비도 나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와 나이차이가 별로 안나는 오빠가 가장 먼저 떠날 거라곤 생각못했습니다. 


사실 오빠와는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소 닭보듯 한 적도 많았습니다. 어릴 적에도 그랬고 나이들어서는 오빠가 비교적 일찍 결혼한 후 분가를 했기에 정서적으로 더 멀어지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냥 오빠는 오빠가 새로 꾸린 가정 속에서 행복하기만을 바랬습니다.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각자 잘살면 된다. 오빠가 남은 아니지만 결혼 전의 한 집에서 함께 살던 그 가족은 아니다. 거리감이 있는 게 서로 편하다.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빠를 보고 싶어하거나 만나고 싶어한 적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자주 만났기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분가를 했지만 조카들이 어릴 때는 가까이서 살았고 부모님과 제가 조카들과 자주 놀아주기도 했습니다. 거의 일주일에 한번쯤은 얼굴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오빠와 올케언니가 의무적으로 시집을 방문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저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주고 생일때는 같이 외식하고 그렇게 무난하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행복하게 지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카들이 어느정도 자라고 오빠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간 후에는 자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그립거나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원래 무딘 편이고, 외로움을 느끼는 편도 아니고, 집을 떠나있어도 향수병에 걸리거나 그러지도 않는, 어쩌면 요즘 드라마에서 보이는 보그맘 같은, 물론 보그맘처럼 예쁘진 않지만, 그렇게 다소 기계적인 면이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빠가 떠난 후,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너무나도 명백하고 당연한 그 사실이었습니다. 다시는 대화 나눌 수 없고, 다시는 같이 밥먹을 수 없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이었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님은 하루하루 눈에 띄게 쇠약해지고 계십니다. 부모님한테도 살갑지 못한 딸이었지만 바꿔보려고 노력합니다. 함께 떠들 수 있고,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가끔 바보처럼 까먹을 때도 있지만, 그럴때마다 정신차리고, 다시 생각합니다. '감사하자. 아직 내 곁에 나의 가족이 있다. 언젠가는 이 분들도 떠날 것이다. 그 전까지 잘 지내자. 행복하자. 그래야 덜 후회할테니까....' 


저는 사후세계를 믿습니다. 죽음 후에 천국이 있다고도 믿게 됐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비극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게됐습니다. 오빠의 죽음 이후 그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죽음이 단지 비극이라면 우리의 삶은 모두 새드엔딩인데 그건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설사 죽음이 비극이 아니더라도 이별의 상황은 비극적입니다. 그 비극이 언젠가는 꼭 닥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 비극이 닥치기 전인 지금에 감사하려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삶은 명품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