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디킴 Jun 12. 2019

믿지 못할 기계

기술은 인간을 자학하게 한다


광고주 시사엔 변수가 많다. 그중 최고봉은 기계적 변수다.

발표자의 떨리는 손은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보정되고, 잘못된 프린트는 다시 뽑아서

갈아 끼우면 되지만, 기계의 변덕은 통제 불능.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저질러야 전문가가 된다고 했던가.

테이프 시절부터 UHD에 이른 지금까지

기계의 실수를 빙자한 수많은 실수를 경험했다.     


당황하지 않는 법을 터득했고, 시간을 보내기 위한 전무님의 임기응변에

감탄했으며 아직도 부족한 내 모습에 장탄식.     


15초 cm의 파일 크기가 무려 200mb에 가깝다. 최신 노트북이 아니면 돌아가지 않는다.

5년을 지랄 같은 광고인들에게 시달린 도시바 노트북은 완전 방전과 함께 전사했다.

애플빠 사장님이 신경 써 마련한 맥북은 사양이 달린다.     

결국, PD를 겸업하다시피 하는 내 데스크톱이 낙점돼 전장에 섰다.

무거운 본체를 들고 1차 시사의 사선을 넘어 마침내 다가온 임원 시사.     


편집실에서 파일이 늦게 도착했을 때부터 불안&불길한 기운이 감지됐다.     

대충 확인하고 외장을 꽂아둔 채 회의실로 뛰었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는 엄마 발

카톡이 주머니에서 흔들렸다.

꽂았다. 반응이 없다. 포맷 메시지가 뜬다.

컴퓨터 재시동. 티브이 볼륨이 70이다. 윈도 시동 소리가 우렁차다.

(딩띠리리리~ 이승탈출 작사 저승 환영 작곡)

또 안 된다. 또 재시동. 곁땀이 울컥!

혹시나 해서 앞에 붙였던 외장 하드를 뒤로 옮겨 붙였다.     


‘바탕화면에 옮겨 놓을 것을, 이런 에이틴!!’


국장님이 달려온다.

“왜 이래, 괜찮아?”

사장님이 낮은 목소리로 외친다.

“뭐, 뭐야. 문제 있어?”    

“괘.. 괜찮습니다.”    


회의실은 7층. 충분히 높다. 고통이 없을까?

기적처럼 파일이 물렸다.

별 수정 없이 시사는 끝났다.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망쳤다며 크게 혼났다.     

덕분에 최신형 노트북 3대가 새로 생기게 됐고

데스크톱의 오묘한 전류 흐름에 대한 지식도 얻었다.     

앞에 있는 USB는 전류가 약해서 외장 하드가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단다.     


그러나 내 잘못이다.

이 글의 제목부터 잘못 뽑았다. 기술은 인간을 자학하게 한다.


하긴 이런 빈 구석을 채워가며

경우의 수를 미리 읽는 잔재미(?)가 없다면

삶이 얼마나 부스럭거리겠는가.     

기계를 믿는 세상이 올까?

그렇다면 인간도 기계가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