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무엇이든 많이 든다.
팔이 길어 슬픈? CD
20년 전, 잠깐 손에 쥐었던 골프채를 작년부터 다시 잡았다. 사회인 야구로 다져진 자신감 덕에 별 어려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처음엔 돈 안 들이고 해보려 했지만, 결국 몇 달간 레슨을 받으며 빈약한 살림에 허리가 휘었다. 레슨 중엔 갈비뼈가 오른쪽, 왼쪽 차례로 금이 가기도 했다. 무거워서 그렇단다. ㅜㅜ
상무님이 선물로 준 골프채는 중급자용이었다. 나에게는 자괴감만 더해줬을 뿐이다.
인터넷 골프 강의의 함정
인터넷엔 넘쳐나는 골프 강의들, “참 쉽죠~”를 외치는 강사들의 퍼레이드였다. 하지만 골프는 오랜 경력자들도 고통받는 운동이다. 모든 강의가 희망고문처럼 느껴졌다.
용돈을 쪼개 연습장에 다니며 독학을 시작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땀이 흠뻑 나니 살이 빠지는 순기능도 있었다. 그렇게 체중이 하루에 500그램씩 빠졌다. 그런데 어깨에 힘을 빼란다. 그런 건 고수나 가능한 일. 채가 내 몸을 축으로 흐느적 공전해야 하는데 잘 될 리가 없다. 그렇게 다이어트는 계속됐다.
정석대로 무릎을 조금 굽히고 스윙을 했다. 드라이버는 뒤땅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언은 답이 없었다. 그대로 1년을 넘게 쳤다. 유틸리티로 힘을 컨트롤하며 아이언 세트를 대신했다. 실력은 안 느는데 스코어만 줄이며 자위했다.
아이언이 맞기 시작하면 손맛이 그렇게 짜릿하다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1년 만에 포기하는 심정으로 다른 시도를 했다. 뒤땅이 나는 건 혹시, 내가 남들보다 팔이 길어서 그런 건 아닐까? 무릎을 조금 세우면 어떨까? 그렇다. 난 팔이 길었던 것이다. 공이 맞아나간다. 쭉쭉 나간다. 7번 아이언 아래쪽만 더럽히던 도장 같은 기록이 가운데로 몰리기 시작한다.
아! 난 팔이 길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처럼 치면 안 되는 구조였다. 원숭이...
짝! 하는 타격음. 그래 이 맛이야.
용돈이 떨어져서 다음 달 연습장 등록은 포기다. 30일 라운딩을 마지막으로 올해는 끝이다. 선배들이 매체사 행사에서 초대되어 누리던 호사는 광고계 폭망으로 넋이라도 있고 없고.
그래도 1년을 하루같이 스윙에 매진한 결과 오늘과 같은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와 성취감이 생긴다.
못하는 게 아니라 팔이 길었을 뿐이다. 무엇이든, 나에게 맞는 길을 찾으면 된다.
잘하고 싶을 땐, 내 팔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