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인정욕구의 기원
내가 창작한 글에서는 꼭 인정받지 못해 환장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건 내 이야기인가? 내가 그렇게 인정 욕구가 강했던가? 인정해야겠다. 사실이다. 나는 인정 욕구에 매우 갈망하고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누구나 인정받는 걸 좋아하는 거 아니겠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걸 싫어하고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딱히 없을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은 한다. (내가 한 명 한 명 물어본 적은 없기에,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런 욕구에 메말라 있다고 느낀 건, 일의 강도보다도 누군가에게 나의 임무와 책무에 대해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 더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나서부터이다.
그래서 나는 왜 이리 누군가의 칭찬에 목말라 있을까? 돌이켜보면 또다시 불우한 (나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도 많으니 함부로 ‘불우한'이란 말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유년시절이 가장 악몽 같은 시절이라 여겨지기에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불우한' 시기라 개인적으로 칭하겠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겠다. 엄격한 어머니와 무관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그 어떤 순간도 칭찬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제나 엄마의 기준에 모자란, 아니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현격하게 떨어지는 사람이었기에, 늘 지적질당하기 일쑤였다.
오히려 학교에서 칭찬받은 기억이 더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그건 딱 네 번 정도로 기억된다. 첫 번째는 ‘도덕' 시간에 쓴, “통일"에 대한 길고 장황한 논설문. 무슨 내용인지는 딱히 기억에 나지도 않는데, 선생님이 나를 따로 보자 하셨고, 어쩜 이렇게 잘 쓰냐 하셨다. 두 번째 역시 중학교 때였는데, 그때 우리 학급 평균 점수가 떨어져서, 담임 선생님께서 단체로 반성문을 써오라고 하셨다. 나는 내가 공부를 게흘리 한 것에 대한 자책의 글을 길고 장황하게 쓴 기억이 있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께서 반성문의 표본이라며 아이들 앞에서 읽어주시기까지 했다. 반성문을 잘 써도 칭찬받나? 하는 의아함도 잠시, 그저 ‘잘 썼다'라는 말에 조금 으쓱해지긴 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이었다. 수능 언어영역을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지문들을 읽고 문제를 푸는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 마침 나온 게 ‘전함 포템킨' 내용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니 이럴 수가 이건 나의 전문분야 아니던가! 씨네필로서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익숙한 내용이었고, 옆 짝에게 ‘나 이거 다 아는 내용이야!’라고 혼자 조그맣게 읋조렸는데, 내 짝 ‘선희'는 갑자기 선생님께 “선생님, 얘가 이거 다 안대요!” 해버렸다. 선생님은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시더니, 나와서 그럼 설명해 보라 했다. 나는 부끄러움이라는 것도 잊은 채, 앞에 나가서, 소련의 영화, 에이젠슈타인, 몽타주, 전함 포템킨, 그 유명한 유모차 끌고 계단 내려가는 씬까지 술술 떠벌렸다. 선생님의 눈동자는 휘둥그레졌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쟤 뭔 소리하냐'라는 표정을 짓긴 했다. 어쨌든 선생님께 ‘대단하다'라고 칭찬을 받긴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교 교양수업으로 들은 ‘대중문화의 이해' 거참. 나로서는 너무나 쉬운 내용의 수업이었기에, 발제자를 누가 먼저 할 거냐는 강사님의 질문에 대뜸 손을 들고 ‘제가 할게요'라고 말하며 그다음 주에 두 시간 동안 낱낱이 내가 알고 있는 수준의 ‘대중문화의 이해'에 대한 이론, 실제 적용, 역사적 맥락 등을 줄줄이 떠들어 댔다. 역시나 애들의 표정은 “쟤 뭐야?” 하는 얼굴들이었으나, 실로 감탄을 받은 이는 강사님이셨다. 쉬는 시간에 강사 휴게실까지 친히 부르시며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시는데 무려 두 시간 동안 붙잡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내가 지금처럼 활발한 성격이었으면, 더 신나게 떠들어 강사님과의 친교를 두둑이 하였을 텐데, 그때만 해도 부끄러움 많은 소녀였기에, 그저 다소곳하게 따라주는 차를 마시며 묻는 말에만 슬쩍슬쩍 대답을 했을 뿐이다.
자, 이게 나의 유년시절, 아니 학창 시절에 받은 칭찬의 기억의 전부이다. 그 외에는 그저 말없는 아이, 수줍어하는 아이, 존재감 없는 아이 정도로 그림자처럼 지내왔다. 돌이켜 보니 그랬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생활에서도 누가, 특히 상급 관리자가 대놓고 ‘인정' 해주면, 그게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하나의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일을 많이 하니, 내가 내 마음대로 뭔가를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거야. 나보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리고 그건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마음 편히 직장생활을 했고, 누구 하나 나에게 시비 거는 이도 없었다. 다만 업무 강도만 셌을 뿐인데, 상급 관리자도 다 나의 노고를 항상 치하해 주니 뭐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바뀐 상급관리자는 그런 업무의 양이나 질보다 ‘정치질'을 잘하는 사람들을 더 인정해 줬다. 그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고, 난 그들의 타입의 인물도 아니었다. 무뚝뚝하기 짝이 없고, 싱글벙글 웃을 줄도 모르고(물론 나는 싱글벙글이라 여기지만, 그들이 보기엔 아니었다)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대신 늘 하던 대로 업무로 승부를 보려 하였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자신과 ‘히히덕’ 거리며 비위를 맞춰주는 부하직원들만 필요할 따름이었다. 다시금 어린 시절의 작은 소녀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해도 인정받기 힘든 그 시절. 내가 아무리 해도라고 말하지만, 스스로 지금도 자문하게 만드는 그 느낌. 내가 죽을 만큼 열심히 했나?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열심히 안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리고 붕괴되는 자존심과 자존감. 난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이다. 인정받을 만큼 뭔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자, 나는 ‘신체적으로'도 무너졌다.
나의 신체가 나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걸 깨달을 땐, 그게 나의 어떤 영역에서 작동되는지 원리를 깨닫지 못했다. 한 참 뒤에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건, 그저 나의 인정욕구가 만들어 낸 결핍의 소산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