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토론회에 초대를 받았다.
내가 하고 있는 정책사업과 연관된 토론회이기도 하고, 토론자의 자리는 오랜만이어서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더군다나 연구 내용을 정책화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있어 나름 실질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있었다. 이래저래 내용을 좀 준비하고, 행사장 근처에 미리 도착해서 저녁도 먹고, 여유롭게 장소로 향했다. 작은 회의장에 온라인 촬영용 카메라 한대와 함께 출출함을 대비한 김밥 한 줄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0분 정도 발제를 듣고, 잠시 자리를 정돈한 뒤 토론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두 가지 방향을 준비했다. 비판적 관점에서 문제적인 부분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전형적인 방향이다. 그런데 여기서 약간 당황함이 다가온다. 각자에게 주어진 토론 시간 7분. 나는 전체적인 느낌을 먼저 말하고, 다음 돌아오는 순서에 대안을 제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7분은 총평만 말하기에는 꽤 긴 시간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2~3분 전체적 느낌을 말하고, 발표 내용에서 문제적인 진단을 말하고……7분이 끝났다. 그리고 다음 토론 순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두 번 정도 토론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날은 다음 일정이 촉박하게 있어, 토론 순서를 한 번씩만 하고 끝난 것이다.
이렇게 토론회가 끝났다.
매우 찜찜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발표내용에 대해 비판만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평소에 대안 없는 비판을 선호하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이런 결말은 매우 찜찜하다. 괜히 발제자에게 미안함 마음이 들고, 뭔가 준비한 내용을 다 하지 못한 아쉬움도 크다. 물론 이런 작은 토론회에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그날 참여한 사람들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장면들일 테니깐. 하지만 나는 많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동시에 나를 의식하는 경향이 크다. 물건을 고를 때도 나의 만족도가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토론회는 나에게 매우 찜찜하다.
그렇게 토론회가 지난 몇 주 후,
주말 아침에 소파에 기대 주섬주섬 책장을 넘기는데, 문장이 하나 들어왔다.
“가치를 깎아내리는 글은 쓰지 않겠다.”
일본 작가 사이토 다카시의 글쓰기의 힘이라는 책이다. 읽지 않는 시대에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써 내려간 책인데, 이 문장을 보고 뭔가 번쩍 지나갔다.
내가 찜찜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가치를 깎아내리는 토론을 한 것 같은 기분. 두 번째 대안을 말하지 못해 더욱더 발표내용의 가치를 깎아내린 것 같은 기분. 바로 이것이 찜찜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나는 평소에 어떤 일을 대할 때 플러스 효과를 지향하려고 한다. ‘이렇기 때문에 어렵다 ‘ 보다 ‘어렵지만 그 안에서 잘해보자 ‘ , 물론 매번 좌절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이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상대 혹은 상대의 어떤 내용에 대해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보다는 가치를 인정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다소 부족한 것은 대안을 덧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 토론회의 찜찜함은 바로 이것의 부재였다.
가만 앉아 생각해보니 최근 ‘내가 뭔가 너무 팍팍한 환경에 있었나‘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너무 드라이한 업무적 관점에 매몰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책사업을 하고 있고, 당연히 실용적인 부분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와 담론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눈앞에 일들만 너무 보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상적 행동과 일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비록 삶이 조금 팍팍하더라도.
다음 토론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치를 깎아내리는 토론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무조건 7분에 맞춰서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