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의 나날들 번외편
서울의 어느 한 지역에서 첫 번째 협치회의를 개최하는 날이었다.
협치회의는 뭔가 더 활동적이고, 권위보다는 행동을 강조하는 협의체이다. 그런데 첫 번째 협치회의 장소는 영화에서 나오는 듯한 엄숙한 분위기의 짙은 고동색 원목 책상과 마치 봉황이 그려져 있을 듯한 명패들이 나란히 줄을 세운 공간이었다. 사람들 간의 간격은 손짓이 필요한 듯한 상황이었다. 뭔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회의는 진행되었다.
역시나 회의 시작 후 예상했던 두 가지 상황이 재현되기 시작한다. 일단 아무도 말을 안 한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르자 두 세명만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막바지로 흘러간다. 여기서 압권이 나온다. 바로 의장봉이다. 우리는 의장봉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TV에서 국회의장이 항상 회의 마지막에 두들이는 엄숙하게 생긴 나무 봉이다. 협치회의 마지막에 그 의장봉이 등장해서 살짝 놀랐다. 활동적이고, 권위보다는 행동을 강조하는 회의라고 많이 이야기했지만 그 지역의 구청은 그것이 관례였던 것이다. 사실 의장봉을 사용하는 곳은 여전히 꽤 많다. 공간적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당연히 권위도 필요하고, 공간적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것도 찬성이다. 더군다나 그 공간적 권위가 시민에게 나누어진다면 나쁠 것이 있겠는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적합성'이다. 모든 것에는 그에 적합한 것이 있다. (참고로 패션계에서는 TPO가 매우 중요하다) 청와대를 구글 본사처럼 해놓는다고 상상해보자. 뭔가 이상하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의장봉은 협력과 협치의 시간과는 좀 어울리지 않지 않을까?
"왠지 의장봉은 너무 무거워 보인다"
당연히 그런 공간과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공간과 장소가 엄숙하고 어려울수록 머릿속 솔직한 생각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우리는 아직 시대적으로 여러 가지로 과도적인 상황이지만 이제 의장봉은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이 어떨까 싶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박수'라는 좋은 수단이 있지 않은가.
최소한 의장봉 정도는 사라져야 사람들은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