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소매

by 안녕 굿데이



올겨울은 혹독할 거라는 예보가 오래 머물렀다. 사람들은 김장을 하듯 미리 준비를 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두툼한 파카를 샀다. 안쪽에 공기를 채워 넣은 듯한 외투였다. 그러나 기록적인 한파는 오지 않았다. 파카는 두어 번 나를 감싸고는 옷장 속으로 돌아갔다. 문을 닫을 때마다 어둠이 한 겹 더해졌다. 이 나이에도 물건 하나에 마음이 기울어지는 일은 사소하게 반복된다.


소매를 쓸어내리면, 접혀 있던 시간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펴진다. 손끝에 닿는 두께를 따라 다른 겨울이 떠오른다. 열아홉이 스물로 건너가던 경계, 숨이 짧았던 2월의 공기.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이 공기 중에 떠다니던 무렵이었다.


현관 거울 앞에서 몸을 돌렸다. 패딩이 공기를 품고 천천히 부풀었다. 어깨가 먼저 자라난 사람처럼 앞서 있었다. 나는 그 안에 늦게 들어온 그림자 같았다. 몸이 아니라 부피가 나를 대신해 서 있는 느낌이었다.


강남의 한 빌딩 앞에서 잠시 멈췄다. 유리문에 비친 얼굴은 얇고, 겨울빛을 먹은 듯 창백했다. 외벽에 붙은 재수종합반 안내 문구가 바람에 한 번 접혔다가, 다시 펴졌다. 마치 숨을 고르는 것처럼.


엘리베이터 안은 사람들의 외투로 가득 차 있었다. 공기가 서로를 밀어내지 못하고 겹쳐 있었다. 그때 타인의 패딩이 내 소매에 닿았다. 두 겹의 부피가 맞물린 순간, 안쪽의 공기가 흔들렸다. 나를 감싸고 있던 둥근 윤곽이 잠깐 주저앉았다.


쉽게 눌렸다.


강의실 맨 뒷줄 창가에 앉았다. 앞자리의 남자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그의 파카는 빛에 따라 결이 달라졌다. 잠깐 시선을 붙드는 표면이었다. 신발의 광택도 옷의 질감을 닮아 있었다. 나도 닮아 있었다. 나는 이유 없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의 어깨는 과하게 부풀어 있었고, 동시에 굽어 있었다. 부피는 바깥을 향해 팽창해 있었지만, 몸은 안쪽으로 접혀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등을 바라보다가 나의 등을 곧게 세웠다. 어깨를 천천히 끌어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지금 내 어깨는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누군가의 눈에는 어떤 모양으로 읽힐까.

초라함이나 서글픔 같은 것이 틈 사이로 스며 나오고 있지는 않을까.


무심한 척 뒤를 돌아보려다 멈췄다. 이미 맨 끝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뒤에는 벽뿐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더 물러설 곳이 없는 자리였다.


수업이 끝난 뒤 편의점 앞은 환하게 밝았다. 지퍼를 끝까지 열어젖힌 아이들 사이로 얇은 과잠이 번쩍였다. 찬 공기가 스며들어도 그들은 웃고 있었다. 바람은 그들의 몸을 통과해 지나가는 듯 보였다.


나는 그 활기를 건너지 못한 채 멈춰 섰다. 다시 소매를 만졌다. 두툼했고, 따뜻했다. 안쪽에 고여 있는 온기가 손끝을 눌렀다.


그해 겨울의 정확한 온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2월의 공기가 스며들면 손끝이 먼저 소매를 찾는다.

옷감 속에 고인 온기를 꾹 눌러본다.

부풀어 오른 외투의 부피를 믿고 서 있던, 그해의 겨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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