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을 기다리던 계절

by 안녕 굿데이

사춘기 때 나는 벚꽃을 보려고 일 년을 살았다.


겨울이 조금 풀릴 무렵이면 괜히 일기예보를 자주 들여다봤다. 남쪽에서 벚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며칠 뒤에는 우리 동네에도 꽃이 필 것 같았다. 아직 피지도 않은 나무인데 괜히 한 번 더 올려다보게 됐다.


벚꽃은 그냥 지나가다 보는 꽃이 아니었다.

나는 꼭 하루를 따로 잡았다. 그날은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 벚꽃이 피어 있는 길을 오래 걷는 날이었다.


낮에는 꽃이 환했고, 밤에는 가로등 아래에서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하얀 꽃잎들이 빛을 받아 공기 속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면 나무 전체가 한 번씩 흔들렸고, 그때마다 꽃잎들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꽃이 질 무렵이면 길 위에 꽃비가 내렸다.

바람이 스치면 꽃잎들이 한꺼번에 흩어져 공중에서 잠깐 머물다 천천히 내려앉았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름답게 떨어지지만, 이제 곧 다 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따라왔다.


그래서 그 꽃비는 늘 예쁘면서도 조금 쓸쓸했다.


괜히 손을 뻗어 떨어지는 꽃잎을 잡아보기도 했다. 대부분은 잡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닿았지만, 가끔 옷 위에 꽃잎 하나가 얹혀 있으면 그걸 한참 바라봤다.


집에 돌아와 외투를 벗다가 소매 위에 붙어 있는 꽃잎을 발견하면 그날 하루가 괜히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벚꽃을 보고 돌아오는 날이면 왠지 그해를 잘 시작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한 해의 시작을 1월이 아니라 벚꽃이 피는 날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벚꽃이 피어도 예전만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벚꽃길을 지나가면서도 굳이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만개한 꽃을 봐도 오래 바라보지 않았고, 꽃잎이 흩날려도 괜히 손을 뻗어 잡아보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다.


어느 날 벚꽃길을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꽃을 그렇게 좋아했었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벚꽃이 피는 날을 기다리며 계절을 보냈는데, 지금은 그 기다림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벚꽃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피고 지는데, 내가 그 꽃을 바라보던 마음만 어딘가에서 조금 멀어진 것 같았다.


벚꽃이 변한 건 아닐 것이다.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속도로 피고 지고 있을 테니까.


다만 그 꽃을 기다리던 내가

조금 달라졌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벚꽃을 보면 가끔 잠깐 멈춰 선다.


그 꽃을 보려고 일 년을 살던 사람이

분명히 한때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잠깐 떠올려 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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