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날의 추억

삼각관계 이야기

by ziwoopa

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유치원 원장 선생님 딸인 민정이와 짝꿍을 해야 했다. 포크댄스를 출 때도 짝이 되고 소풍을 갈 때도 손을 잡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나는 순남이를 좋아했다. 곱슬머리에 오동통한 얼굴과 웃을 때면 함박 쏟아질듯한 박속같은 이가 너무 좋았다. 민정이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의례 당연한 듯 내 옆에 와서 짝꿍을 하려 했고, 그럴 때마다 무슨 핑계를 대서든지 순남이와 짝을 이루려 노력해보았지만 그때마다 민정이의 방해로 순남이와는 안타까운 눈빛만 교환해야 했다. 그렇게 가슴 아픈 날이 지나면서 우리들은 국민학교에 진학을 했다.

국민학교 입학식 날.


가슴에는 코 닦는 면수건을 단 채 운동장에 쭈그려 앉아 입학식 행사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앞에 앉아 있던 같은 반 여자아이의 등에 흙을 뿌리며 장난을 쳤고, 그 아이와 투닥거리면서 그렇게 친해졌다. 길 건너편에 살고 있던 세탁소집 딸이었던 영희. 학교가 끝나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숙제도 하고 영희의 연필 깎는 솜씨에 반해버렸다.

순남이와는 같은 학교에 입학했지만 반이 갈렸다. 경쟁자(?)였던 민정이는 다른 학교로 진학을 했고,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에 놀러 갔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영희와 짝꿍이 되어 순남이를 불편해하고 있었다.


가끔이었지만 어쩌다 셋이 만날 때면 운동장에서 놀기도 하고 같이 숙제도 하곤 했다. 어색해하던 순남이가 쉬는 시간에 놀러 오는 빈도도 점점 적어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1학년 겨울방학도 지나갔다.

2학년 첫 등교날 순남이가 보이질 않는다. 며칠이 지나도 보이질 않는다.

"엄마! 순남이가 보이질 않아."
"응. 순남이 이민 갔단다."

"이민?....."

"그래! 엄마들 모임에 갔다가 들었구나."

어린 나이에도 왠지 모를 죄책감과 밀려오는 후회가 나의 마음속을 덮쳤다. 눈물이 나려 했지만 왜 울어야 하는지도 잘 몰라 그냥 참기만 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몇 번이나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었던 순남이의 의도를 그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순남이는 잊혀 가고 나도 2학년 2학기 때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영희와는 연락이 끊겨버렸다.




옆집에 살던 세모를 다른 아이들로부터 용감하게 지켜주기까지 했으면서도 순남이의 마음은 아프게 했던 내가 미웠다. 10여 년 후인가 다시 그 동네를 찾았을 때 우리 집은 철거가 되었지만 길 건너 세탁소는 그대로 있기에 기웃거려봤다. 인기척이 들리고 또래 여자가 나오는 실루엣을 보고는 허겁지겁 그 자리를 피해 도망 나왔다.

다들 잘 살고 있겠지?



작가의 이전글J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