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얼굴
J는 오늘도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화장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쫓기듯 서두르는 자신을 질책하고 후회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상이다. 어제도 영업부 K양의 꼬임에 넘어가 3차까지 가는 대장정을 마치고 집에 기어들어갔었다.
“J씨는 참 부지런하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도 항상 깔끔해.”
평소에 흠모하던 옆자리 김대리의 립써비스가 싫지만은 않으면서도 왠지 부담스럽다. 입사한지 3년차를 지나지만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고, 화장도 대충 해본 적이 없다.이제 주위 눈치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 화장을 마친 후에는 김밥도 먹을 생각이다.
‘에이 씨...속쓰려. K한테 또 속았어! 그 남자 뭐야?! 매너도 없고, 키도 작고, 얼굴은...뭐 그 정도면 괜찮은데.....풋!’
열심히 손을 놀리며 J는 어제 K양이 동반해서 나온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J는 어릴 때 친구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꽤 오랫동안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남들보다 유난히 동그란 얼굴과 큰 눈. 심한 곱슬머리 그리고, 주근깨 때문에 <잔디인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놀림을 당했었다. 우울했던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끝내고 대학생이 되었다.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J양은 몰라보게 변했다. 심지어 엄마도 가끔 딸을 낯설어 할 정도였으니 같은 과 동기들은 그녀를 알아보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녀는 BB크림을 사랑하게 되었고, 한창 유행하던 걸그룹의 가수가 보여준 스모키화장의 놀라운 변신술은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갑자기 J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어제까지 파우치에 들어있던 아이라이너와 색조화장품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헉! 어쩌지? 분명히 있었는데...!”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어제 노래방에서 K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릴 때 그 남자를 팬더로 변신시킨다면서 J의 가방을 뒤졌던 것이다.“큰일났네...”지하철은 목적지에 도착했고 J는 하는 수 없이 눈화장은 생략한 채 출근을 했다. 예의 또 김대리가 다가온다. “어이...일찍 왔....??!!!” 말을 못하고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다.J는 어디 도망갈 구석이라도 찾지 못해 안달하는 생쥐마냥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김대리는 그렇게 더 이상 말을 맺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갔다.‘이제 김대리하고도 끝이구나.’ J는 입사 3년만에 벌어진 사고(?)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사고가 J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 될거라는 걸 미처 모른 채 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퇴근시간 전 복도에서 만난 김대리가 다가온다. 평소와는 다르게 머뭇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J에게 말을 걸었다.“J씨 저랑 저녁 같이 할까요?”“네? 저랑요?”“네! 오늘 J씨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J는 두근거리며 두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들킬세라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그 날 저녁 김대리는 J에게 고백을 했다. 그동안 진한 눈화장에 가려 보이질 않던 그녀의 크고 예쁜 눈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단다. 흠모하던 남자에게 사랑고백을 받은 J의 눈가가 촉촉이 물들어갔다. 화장이 번져서 흉해질거라는 걱정도 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동안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눈 녹듯이 녹아들고 있었다. K양에게 밥이라도 사야지...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