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다 러브레이스
폰노이만이나 앨런 튜링같은 분들도 있지만, 이분들은 컴퓨터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신 분들이고, 시대적으로는 최초의 프로그래머와 거리가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바로 에이다 러브레이스입니다. 흥미로운 건, 그녀가 폰노이만이나 튜링보다 무려 약 100년 전인 19세기 중반에 활동했다는 점이에요.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살았던 시대엔 컴퓨터가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었을까요?
사전적으로 ‘프로그래머’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사람입니다. 프로그램은 컴퓨터가 수행할 작업에 대한 지시의 집합이죠.
그래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작업을 생각하고 지시를 만들 수 있다면, 코딩을 하지 않더라도 프로그래머로 인정될 수 있는 거죠.
에이다는 이런 ‘프로그램 작성’ 개념을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에 만들어낸 셈입니다.
에이다는 유명한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딸입니다. 사실 저도 바이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조사를 해보니 2009년 BBC가 선정한 ‘영국에서 사랑받는 시인 30인’에 들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더군요.
에이다의 어머니는 수학과 과학을 공부한 앤 이사벨라 밀뱅크라는 분인데요, 이 시대에 여성으로 과학과 수학을 배웠다는 것만으로도 독특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에이다의 부모님 결혼 생활은 불안정했어요. 그녀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인 바이런은 가족을 떠났고, 에이다는 그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요. 바이런은 방탕한 삶을 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모도 출중하고 시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해요. 에이다 역시 아버지처럼 시에 재능이 있었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에이다가 바이런처럼 자라길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에이다에게 시보다는 수학과 과학을 배우게 했죠. 덕분에 에이다는 당시 최고의 수학자였던 윌리엄 프렌드, 메리 서머빌, 그리고 집합론의 드 모르간 법칙으로 유명한 드 모르간 등에게 수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에이다가 17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찰스 배비지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했어요. 이 자리에서 그녀는 배비지가 만든 차분기관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고, 단번에 그 기계에 매료되었습니다.
찰스 배비지는 현대 컴퓨터의 선구자로, 지금의 계산기와 같은 차분기관과 해석기관을 설계했어요. 비록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이 기계의 개념은 이후 컴퓨터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에이다는 배비지의 강연을 따라다니며 공부했고, 결국 그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배비지는 에이다에게 프랑스어로 작성된 강연 자료를 번역해달라고 부탁했고, 에이다는 이에 더해 자신의 주석을 덧붙이기 시작했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는 알고리즘이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으면서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이 프로그램에서 반복문이나 조건문과 같은 개념도 언급했어요.
에이다는 아버지로부터 외모를 물려받아 사교계에서도 주목받았고, 시와 수학에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지만, 그녀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가정교사와 사랑에 빠져 함께 도망가려다 실패하기도 했고, 치명적인 단점인 도박 중독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믿고 전문 도박사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평생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결국 36세에 자궁암으로 생을 마감했어요.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했던 그녀는, 유언으로 아버지 옆에 묻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1950년대에 들어서야 에이다의 업적이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그녀는 비로소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인정받았습니다. 영국 컴퓨터 협회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러브레이스 어워드’를 제정해 매년 수여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구글이 그녀의 탄생일을 기념하여 로고에 그녀의 업적을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https://youtu.be/sMfTcE_f_3Q?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