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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뷰티 칼럼

추녀에서 트렌드세터로-21세기 고은애 여사의 부활

by 무체

오래전 만화 '달려라 하니'에서 홍두깨 선생의 부인으로 등장한 고은애 여사는 독특한 외모로 씬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낸 캐릭터다. 당시 만화에서는 하얀 피부에 곱슬머리, 두툼한 입술이라는 흑인 여성의 전형적 특징을 차용했고, 여기에 주근깨까지 더해 당시 미의 기준에서는 '쿵쾅이' 혹은 '추녀' 이미지로 그려졌다. 물론 그녀의 지고지순한 성격 묘사로 인해 미움받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핑크색 립스틱을 바르고 고슬고슬한 앞머리에 둔탁한 몸매를 가진 여성을 '고은애 여사 같다'라고 놀리는 것이 한때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재의 글로벌 뷰티 트렌드를 관찰해 보면, 이러한 고은애 여사의 특징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미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솔로지옥'의 송지아만 봐도 그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녀는 슬렌더 한 몸매를 가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얼굴 특성은 놀라울 정도로 고은애와 닮았다.


고은애 닮은 셀럽들.jpg


그렇다면 현재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미의 기준이 된 이 독특한, 그리고 어쩌면 한국의 전통적 미의 기준에서는 다소 벗어난 스타일의 원조는 누구일까?

물론 실제 원조가 고은애 여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들은 이 만화 캐릭터의 존재조차 모를 것 같다. 단지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적인 취향이 단일화되는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 뷰티 트렌드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미국 흑인 사회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비욘세는 완벽한 비율과 조화로운 미모를 지녀 '흑인 미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선 압도적인 미인으로 평가받았다. 그렇게 비욘세는 넘사벽이었다. 그래서 보다 친밀한 마스크의 리아나가 주목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녀의 도톰한 입술은 인공이 아닌 자연산이었으나, 그녀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외모가 대중화되면서 이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변종 미인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카다시안-제너 가문의 영향력


이러한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은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이다. 원래 패리스 힐튼(Paris Hilton)의 하녀 취급받던 그녀는 스캔들 이후 급격히 인지도를 높였고, 점차 그녀의 독특한 외모를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과장된 둔부와 실루엣으로 유명해진 킴 카다시안과 그녀의 가족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성공하면서, 그녀의 자매들까지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할 인물은 카일리 제너(Kylie Jenner)이다. 처음에는 언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외모로 콤플렉스를 가졌던 그녀는 2017년 입술 확장 수술 후 완전히 새로운, 이른바 '포스트 킴 카다시안'으로 재탄생했다. 그녀는 본래는 그렇지 않았으나 두툼해진 입술이 자신이 개발한 립스틱 덕분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의료적 시술이었다는 것이 훗날 밝혀졌고.

그러면서 이러한 트렌드는 뷰티 업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 그렇게 패리스 힐튼으로 대표되는 시대가 저물고, 킴 카다시안과 그녀의 자매들이 주도하는 미의 기준—큰 둔부와 두툼한 입술—이 새로운 표준으로 등장했다. 이는 대략 10년 전부터 본격화되었다.


신인류 뷰티 트렌드의 글로벌화


카일리 제너의 입술 성형 성공 이후, 카다시안-제너 자매들은 모두 유사한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킴 카다시안의 인기 요인이 단순히 타고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술과 메이크업 기술을 통해 구현 가능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이로써 '흑인+중동+아시안 뷰티'의 조합으로 대표되는 신인류 뷰티 트렌드가 탄생했다. 니키 미나즈(Nicki Minaj)와 같은 독특한 개성의 흑인 셀러브리티부터 블랙핑크의 제니,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에 이르기까지,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통해 이 새로운 미적 기준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트렌드가 빠르게 수용되었는데, 특히 인터넷 쇼핑몰 모델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국내에서 이러한 스타일을 선도한 인물로는 '스타일 난다'의 김소희를 꼽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과거 한국에서 '고은애 여사'라는 이름으로 희화화되었던 외모적 특징들이 글로벌 미디어와 셀러브리티 문화의 영향으로 오늘날 새로운 미의 표준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이는 미의 기준이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얼마나 가변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다만 이러한 트렌드가 때로는 지나친 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연령과 상관없이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미의 기준은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며, 현재의 트렌드 역시 언젠가는 새로운 흐름에 자리를 내줄 것이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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