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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체 Apr 28. 2024

도덕이란 무엇인가



신호가 바뀌지 않았는데도 성급하게 앞서 걸어가려는 초라하고 늙수그레한 남자가 있었다. 이를 본 중년 여자가 호통치는 말투로 그를 말렸다. 함께 동행한 중학생뻘되는 딸 앞에서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작정이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남자가 앞서 걸으려고 하면 여자가 아저씨 그러시면 안 되죠,라고 말리는 사이 나도 이들 뒤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가난한 사람은 여유마저도 없구나. 조금 앞서 간다고 뭐가 달라질까. 아저씨 그렇게 급하게 가다 골로 간다고요. 


드디어 신호가 바뀌자 남자는 제일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남자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어깨춤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조바심이 느껴졌지만 그의 다리는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고 있었다.


 제시간에 신호등을 건너지 못한 초조함이 신호가 바뀌기 전부터 걷는 습관으로 이어졌던 모양이다. 좀 전에 남자를 나무라던 여자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남자는 걷다가 뛰길 반복하며 걸었는데 보폭수는 어린아이만큼도 못되었다. 이미 모녀도 그를 앞질러 걷고 있었다. 긴 횡단보도를 건너고 짧은 횡단보도가 나왔을 때 빨간 불이 켜졌고 차들은 움직일 틈도 없이 꽉꽉 막혀 있었다. 사람들은 멈칫했으나 남자는 막힌 차들 사이로 쉼 없이 걸어갔다. 그러자 사람들도 그를 따라 신호를 무시한 채 건너갔다. 나도 따라 걸어갔다. 오직 두 모녀만이 꿋꿋하게 신호를 기다리려고 서 있었다. 


남자가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먼저 건너려고 했던 게 아니란 걸 안 순간, 모녀의 도덕심이 때론 융통성 없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조금 더 서둘러 내 실속을 챙기고 싶어졌다. 겨우 2미터도 안 되는 신호등 규칙 따위는 조금 어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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