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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인 saga

독특함으로 미의 기준을 세운 에스테르 카냐다스

by 무체

90년대 패션계를 회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독특한 개성과 카리스마로 런웨이를 장악했던 에스테르 카냐다스(Esther Cañadas). 클라우디아 쉬퍼, 신디 크로포드, 나오미 캠벨과 함께 '슈퍼모델'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던 그녀의 삶은 성공과 시련이 교차하는 일종의 현대판 영웅담과도 같았다.


스페인 남부 알리칸테의 한적한 해변 마을. 이곳에서 창백한 피부와 투명한 눈동자를 가진 한 소녀가 자라고 있었다. 또래와는 다른 외모 때문에 '독일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녀는 어린 시절 법의학자를 꿈꿨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서점에서 오빠와 함께 탐정 소설과 모험 만화를 탐독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소녀는, 모친의 권유로 14세에 미인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하며 패션계의 문을 두드렸다.

"넌 탐정보다 모델에 딱이야." 모친의 이 한마디는 훗날 글로벌 패션계를 사로잡을 인물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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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미의 기준과는 다소 거리가 먼 에스테르의 외모는 패션 산업의 혁명적 변화 시기와 맞물려 폭발적 주목을 받았다. 앙상하게 마른 체형, 불규칙하고 두툼한 입술, 고양이 같은 눈매, 초점이 살짝 빗나간 듯한 시선은 '예쁨'보다는 '독창성'을 추구하던 당시 패션계의 새 바람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 그녀의 여정은 밀라노를 거쳐 뉴욕으로 이어졌고, 1997년 DKNY 광고의 얼굴로 발탁되면서 에스테르는 세계적인 슈퍼모델로 발돋움했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 모델'로 불리던 네덜란드 출신 마크 밴더루(Mark Vanderloo)와 함께한 화보는 패션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되었다. 둘은 실제 사랑으로 이어졌고 결혼까지 하였다.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그림자도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크 밴더루와의 결혼은 불과 1년 만에 파경을 맞았고, 이후 스페인 출신 오토바이 레이서와의 두 번째 결혼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더 큰 시련은 건강의 위기였다. 혈관염 진단을 받은 에스테르는 만성적인 피로, 발열, 체중 감소에 시달렸다. 패션계에서는 그녀를 다소 오만하고 속물적이라는 평판이 돌기도 했다. 1999년 피어스 브로스넌 감독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했으나, 대사 한 마디 없는 역할에 그쳤다.

2013년, 유명 호텔리어이자 '바람둥이'로 알려진 비크람과의 약혼은 30만 달러짜리 반지를 둘러싼 소송으로 번졌다. 그의 과거 연인 목록에는 린제이 로한, 케이트 모스, 지젤 번천 등 화려한 이름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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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그녀는 딸 갈리아를 출산하며 새로운 인생 장을 열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되었고, 온갖 추측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한때 세계 최고의 모델료를 받으며 패션계를 주름잡던 에스테르 카냐다스는 이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90년대 패션 혁명에 남긴 족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업계 사람들은 에스테르 카냐다스가 대중의 미적 취향을 재정의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전통적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그녀의 독특한 외모는 획일화된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며 다양성의 가치를 일깨웠다. 불완전함 속에서 독창적 개성을 빛내던 90년대 아이콘 에스테르 카냐다스의 존재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 이브 생 로랑의 명언은 에스테르 카냐다스라는 한 모델의 삶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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