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부터 구혜선까지
2000년대는 미인의 기준과 트렌드가 끊임없이 변화한 시대였다. HD 화질의 등장으로 피부 미인이 중요해졌고, 의술의 발달로 '리페어 미인'이 등장했으며, 단순한 외모보다는 개성과 재능을 갖춘 스타들이 사랑받았다.
2000년대 초반은 김지수, 김정은 같은 연기파의 시대였다면, 중반은 최지우, 김태희, 송혜교, 전지현의 청순미가 대세였고, 후반은 김선아, 고현정, 김남주 같은 강한, 성숙한 여성상이 부각되었다. 또한 점차 피부 미인, 생얼 미인이 중요해지면서 메이크업 트렌드도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변화했다.
1980년대가 천연의 타고난 미인들의 시대였고, 90년대가 미와 재능을 겸비한 이들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다양한 미의 가치가 공존하고 경쟁하며 더욱 풍요로워진 시대였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다양성과 글로벌 경쟁력의 밑거름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 신예 미인으로는 송혜교, 한채영, 김정은, 명세빈, 채림 등이 있었으며, 김민도 황신혜의 뒤를 잇는 미모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패션 스타일로는 미래 시대의 불안함과 호기심을 담은 스타일이 지속해서 유행했다.
2000년 한국 영화 시장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영애가 대배우 송강호와 이병헌의 그늘에 가려져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은 느낌이었다. 전지현의 선택이 대박을 치기도 했다. 영화에서 수준 높은 작품이 나오는 동안 드라마는 점차 트렌디한 로코 풍이 대세였고, 특히 KBS의 '가을동화'가 히트를 쳤다. 2000년부터 가장 아름다웠던 미인은 세기말에 등장하여 21세기 현재까지도 대체불가 스타로 자리잡은 전지현이다.
2001년 최고 미인은 이미연이었다. 그녀가 낭송한 연가집에 실린 사진이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사진은 지금 봐도 너무 예쁘고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렇게 예뻐 보일 수 없을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연은 이를 통해 잠시 주춤하던 명성을 회복하고 톱 여배우로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주연으로 제2의 전성기를 달렸다.
2001년에는 센 캐릭터들의 활약이 돋보였는데, '여인천하'의 강수연, 전인화, 도지원 세 여인이 흥미를 끌었으며 특히 도지원의 '뭬이야?'가 오래전 고두심의 '잘났어 증말' 다음으로 히트 친 대사가 되었다.
영화 시장은 계속해서 호황을 누렸고, 그중에서도 전지현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엽기적인 그녀'가 그녀를 최고의 자리에 안착시켰다. 최진실 이후 귀엽고 깜찍한 가수 출신 배우 장나라가 등장했다. 아이유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 장나라는 지금도 최강 동안으로 착하고 성실하며 연기를 잘하는 바람직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1999년 SK통신 TTL 광고 모델이던 임은경의 외모가 장안의 화제를 모았으나 이후 성공적인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해 자취를 감추었다.
2002년의 최고 스타는 최지우였다. '겨울연가'로 초 대박이 난 배용준, 최지우 커플은 한 편의 드라마로 평생 아무것도 안 해도 될 만큼 부와 명성을 쌓았다. 또한,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받던 장나라와 문근영, 그리고 성숙미와 연기력으로 지분 제대로 확보한 송윤아가 있었다. '인어 아가씨'의 장서희는 비로소 만년 조연에서 탈피하고 A급 스타로 자리 잡았다.
영화 시장은 중흥기를 맞아 다양하고 재밌는 영화들이 쏟아졌다. 코믹한 갱스터 무비가 한국 영화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고,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는 이은주와 차태현, 이병헌, 엄정화 등이 영화계를 평정했다. 전도연은 말할 것도 없었고. 하지원과 손예진도 부지런히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걸그룹 출신 스타 성유리도 연기력 논란이 있었지만 운 좋게 출연작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TV 화질이 나날이 선명해지면서 피부 미인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헤어 스타일은, 여전히 영화 속 맥 라이언식 깜찍한 헤어 스타일이 유행했지만, 점차 생머리와 자연스러운 화장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싱글즈'의 장진영이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어 그녀처럼 뒤집은 머리를 하고 다녔다. 김정은, 김선아처럼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배우의 전성기였으며, 김하늘, 이나영, 이요원 같은 청순미인들이 화면을 꽉꽉 채워 나갔다.
2003년은 최고의 드라마들이 대거 등장한 해였다. 타겟층은 주로 젊은 층을 겨냥한 트렌디한 드라마가 주류였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1980년대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트로이카에 이어 2000년대는 김태희, 송혜교, 전지현의 시대로 이들의 세상이 열렸다. 그리고 90년대에 살아남은 스타 중 돌연 은퇴한 심은하의 자리를 이영애가 빈틈없이 메꿔주었다.
2003년을 대표하는 드라마로는 공효진의 '눈사람', 하지원의 '다모', 이영애의 '대장금', 최지우의 '천국의 계단', 정다빈의 '옥탑방 고양이', 송혜교의 '올인', 성유리의 '천년지애', 김희선의 '요조숙녀' 등이 있었다.
드라마계에서 여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을 무렵, 영화판에서는 장진영의 시대가 도래했다. 물론 국가 대표 배우 김혜수와 전도연의 활약은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진행 중이었고, 이미연도 드라마 세계는 시시하다는 듯 영화에서만 활동했다.
이나영도 광고만 찍은 줄 알았더니 이 시절에는 종횡무진 활약상이 대단했다. 미모 지존 고소영은 드라마 '엄마의 바다'와 영화 '비트' 이후 광고계에서 찰나의 매력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솔로 데뷔한 이효리는 가요계의 전설이자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섹시 담당에 주력했다.
영화 시장 또한 호황을 누렸다.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이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다. '올드보이'의 강혜정은 매력을 뽐냈고,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는 이나영, 김하늘의 맑고 청순한 이미지가 새로운 미인형으로 급부상했다. 손예진과 하지원은 계속해서 상종가를 달렸지만, 2003년 최고의 미인은 누가 뭐래도 광고의 여왕 고소영이었다. 산토리니 광고에서 보여준 고소영의 모습은 연기 빼고는 다 잘하는(어쩌면 연기도 나쁘지 않은) 궁극의 미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2004년의 특이점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향평준화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몸매와 얼굴 비율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도 독보적 미인은 존재했고, 명문대 출신의 지성까지 겸비한 김태희의 시대가 왔다.
김태희 이후로 연예계는 미모에 연기, 학벌, 집안, 학창 시절 문제없는 인성까지 좋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때 김희선이 잠시 은둔하고 전지현이 콘셉트 갈팡질팡으로 위기를 맞이할 무렵, 김태희가 본좌로 올라선 거다.
또한, 2003년 못지않게 대작들이 탄생한 해였다. 임수정의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지원의 '발리에서 생긴 일', 이은주와 정혜영의 '불새', 이나영과 김민정의 '아일랜드', 송혜교의 '풀 하우스'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2004년 '파리의 연인'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은 김정은은 2005년에도 열일했다. 2005년에는 연예계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았는데, 이혼한 고현정이 화려하게 복귀했고, 심은하와 김남주의 결혼 소식이 큰 화제를 모았다. 여복 터진 김승우는 당시 최고의 스타 이미연과 이혼 후 뒤를 이어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오른 김남주와 재혼했다.
2005년 영화는 계속 쏟아졌지만, 이때부터 점점 한국식 신파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올드보이'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강혜정은 영화계에서 보석 같은 존재가 되었고, '웰컴 투 동막골'에서의 광녀 역할은 역대 최강의 사랑스러운 배역이었다. 그리고 드라마 '대장금'에 이어 이영애란 배우의 명성을 한층 더 높여준 영화 '친절한 금자 씨'도 개봉했다. 리틀 고현정 느낌을 주는 이요원도 상승세였고, '마이걸'에서의 이다해는 사랑스럽게 연기를 해냈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도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 보일 정도로 잘 나갔고, 그중에서 가장 대박을 친 스타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였다. 완벽한 바비인형 몸매로 주목받은 한채영은 연기력 논란으로 안티가 많았으나, '쾌걸춘향'으로 정상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2005년 최고의 미인은 당연히 이영애였다.
매년 최고의 미인을 꼽으라면 김혜수를 추천하고 싶은데, 이유는 매년 활약상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로 초특급 스타가 된 김태희는 영화계를 기웃거리며 '중천'이라는 대작을 찍고 흥행에 실패했지만, 인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타짜'에서는 김혜수의 매력이 이만 배로 드러났고, 잊을 만하면 언제나 트렌디하게 한국의 문화예술을 선도하는 김혜수의 존재감이 빛났다. 명작 만화 '궁'을 드라마로 만들어 기대가 컸는데, 검증되지 않은 윤은혜가 맡아서 처음에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후 한국 대표 배우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환상의 커플'에서는 한예슬이 인생 캐릭터를 만났고, 떠오르는 신예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도 화제를 모았다. 그럼에도 2006년 최고 미인은 자신의 매력을 원 없이 보여준 드라마 '황진이'의 하지원이었다.
2007년에는 오랜만에 등장한 배용준 주연의 '태왕사신기'가 화제였고, 작품에 출연한 이지아가 신예 스타로 등극했다. 잡지 모델 출신 수애도 공효진과 배두나의 뒤를 이어 열심히 활동했고, 아역배우로 시작해 바람직하게 성장한 김민정이 소주 광고를 하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로 등극했다.
'궁'에 이어 '커피프린스'를 찍고 완소녀가 된 윤은혜, 그리고 '풀하우스'를 찍은 뒤 완전하고 완벽하게 대한민국 톱클래스 배우로 올라선 송혜교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래도 2007년 최고의 미인은 윤은혜였다.
2008년에는 '태양의 여자'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남자 배우 이병헌이 연기력 하나로 모든 게 용서되듯, 배우 김지수도 연기력으로 그간의 불명예를 씻어낼 수 있었다. 재밌는 드라마 '온에어'에서 송윤아와 김하늘의 매력도 돋보였고, 최강희는 독특한 캐릭터로 개성 강한 팬층을 형성했다. 손예진은 정점을 찍었고, 포스트 정윤희 콘셉트로 나온 여러 배우 중 수애만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김고은 이전 매력적인 마스크의 최강자로 꼽히던 한지혜의 활약도 돋보였다. 2008년 최고의 미인은 사랑도 연기도 모든 면에서 아름다웠던 송혜교였다.
영화계는 잠시 주춤한 반면, 2000년대 후반은 미녀 기근 혹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강해져서 김태희, 송혜교, 전지현이 독식하는 모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왕년에 잘 나가던 선배 여배우들은 계속해서 빛났다. 고현정과 김남주가 화려하게 귀환했고, 특히 김남주는 '내조의 여왕'으로 라끄베르 광고 여왕에서 드라마로 독보적인 이미지 굳히기에 성공했다.
'찬란한 유산'에서 캔디 역할을 맡은 한효주는 깜찍함으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냈고, 드레수애란 별칭을 얻은 수애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우아함을 뽐냈다. 무엇보다 2009년은 '선덕여왕'의 고현정이 연기의 여왕으로 활약했으며, 하이틴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꽃미남 배우들이 등극한 것은 물론 새로운 미인 구혜선이 주연 배우로 안착했다. 그리고 한예슬은 작품으로 크게 뜬 것은 없었지만 미모가 한창 물이 올라 CF퀸으로 올라섰다. 2009년은 다소 애매하긴 하지만 국민 첫사랑 칭호를 들은 구혜선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