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토픽션

습한 고백

by 무체

몹시도 더운 여름날 그를 처음 만났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옷을 입지 않으려는 노력을 많이 한 차림새였다.

당시 나는 브루클린의 클래슨 애비뉴에서 여자 둘과 지내고 있었다. 집주인이던 란솔은 조용하고 학구적인 미술 전공생이라 나와 제법 잘 맞았다. 하지만 또 다른 룸메이트는 얼굴 볼 일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낮에는 늘 남자 친구와 있었고, 밤에는 방 안에서 그와 통화를 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통성명을 할 틈도 없이 서로를 스쳐 지나갔으니까. 딱 한 번, 그녀가 밖에서 기다리는 남자 친구를 향해 신발을 신고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기억 속 그녀는 동그랗고 큰 얼굴에 붉은 여드름이 뺨 전체를 채운, 마치 수박 같고 딸기 같던 외모였다. 겁먹은 듯 물기 어린 큰 눈, 건조하게 튼 입술, 그리고 그 큰 얼굴을 지탱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가느다란 다리. 나는 밤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가늘고 구슬픈 목소리를 떠올려 보았다. 목이 가늘고 어깨가 좁은 뒷모습과 그 목소리는 제법 어울렸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가벼운 눈인사만 나눴다. 서로에게 견제도 관심도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란솔하고만 친했다. 그렇다고 매일 얼굴을 맞대고 수다를 떠는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나대로 돌아다니느라 바빴고, 란솔은 방에 틀어박혀 있느라 바빴다. 어쩌다 식탁에서 마주치면 밥을 같이 먹고, 시간이 맞으면 빨래나 장을 보러 가는 정도였다.


어느 날 란솔이 첼시의 전시회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행이 있다고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두 살 많은 동기 윤지 언니라고 했다. 그녀를 본 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눈에 띄게 예쁜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인기가 좀 있는 타입인 듯했다. 그녀는 란솔보다 훨씬 예뻤고, 나보다는 글쎄, 나와는 결이 다른 외모였다. 어쨌든 그녀가 나보다 나은 점은 훨씬 어리다는 것과 돈이 많다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공주처럼 군림하던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반신반의하는 눈빛. 그러니까 나는 절반의 완벽과 절반의 모호함을 가진, 그런 외모의 소유자였다. 거기에는 나이도 포함되었다.


우리 셋은 첼시의 갤러리들을 목적 없이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도중에 무슨 연유인지 남자 한 명이 동행하게 되었다. 혼자 구경하던 윤지에게 아는 척을 해온 남자였다. 같은 한국인이고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게 분명했다. 윤지는 그런 일이 익숙한 듯 대수롭지 않게 그를 일행에 끼워주었다. 그렇게 넷이 되었다. 란솔은 작품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꿰뚫어 보았고, 나는 건성건성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만 발을 멈췄다. 우리는 좁은 갤러리 안에서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마치 웃지 않고 하는 숨바꼭질 같았다.


윤지를 쫓던 남자가 심심했는지 우리 곁으로 와 말을 걸었다. 일종의 지적 허영심을 부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뉴욕은 코 푼 휴지를 걸어놔도 박수치는 곳이죠. 기괴하고 엉뚱할수록 인정받으니까요.” 란솔과 나는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의, 특유의 고상한 제스처를 유지했다. 멋모르고 떠벌리는 작자들에게는 그 방법이 최선이니까.


첼시는 볼거리는 넘쳤지만 먹을거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몇 군데를 헤매다 들어간 파스타 집에서 우리는 살다 살다 그렇게 맛없는 파스타는 처음 먹어 보았다. 파스타가 맛없기도 힘들 텐데. 우리는 그 기이한 맛이 신기해 서로의 접시를 번갈아 맛보았다. 맛없는 음식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친해졌다.


형편없는 파스타를 안주 삼아 씹으며 게이 스트리트를 걸었다.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동양인 특유의 호기심으로, 우리는 지나가는 게이 커플들을 티 안 나게—물론 티가 났겠지만—살펴보며 소근거렸다. 그때 윤지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를 보러 오겠다는 남자였다. 잠시 후, 연보라색 커플 티를 입은 대머리 커플 사이로 헐레벌떡 뛰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그가 바로 원이었다. 그는 윤지의 손을 잡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윤지는 우리를 아주 가볍게 소개했다. “갤러리 같이 구경한 사람들. 어학원에서 만난… 동생이에요.” ‘이에요’라는 말끝이 유독 작게 들렸다.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나 싶은 의구심이 가득한 말흐림. 이해는 갔다. 란솔은 원을 알았고, 아까 그 남자는 원에게 관심이 없었으며, 나는 원을 보고 싱긋 웃었다.


남자가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카페를 권했다. 원도 란솔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근처 카페 천장에는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었다. 동그란 원탁에 둘러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유학생들이 으레 하는 ‘언제 왔냐, 언제 가냐’는 숫자 놀이가 시작되었다. 내 나이를 들은 남자들은 꽤 놀란 듯했다. 나는 그 반응이 무서웠다. 놀라는 강도만큼 세대의 벽이 쌓이는 기분이니까. “제가 여자 나이는 기막히게 맞추는데, 누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손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누나는 손도 어려 보여요.” 가관일세. 원을 보는 윤지의 표정이 딱 그랬다. 결국 윤지는 먼저 일어났다. 자신에게 쏠리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새는 걸 견딜 수 없었으리라. 원은 윤지를 따라 나가면서도 굳이 내 연락처를 물었다. 뻔한 수작이다 싶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번호를 주었다. 아홉 살 차이. 연인은 성립되지 않을 거란 암묵적인 믿음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번호를 묻는 아이 같은 그에게 쭈뼛거리는 건 더 우스운 일 아닌가. 나는 친절한 누이처럼 굴었다.


윤지와 원이 떠나고 남자와 란솔, 그리고 나만 남았다. 남자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금 외로웠거나, 무슨 할 말이라도 남은 걸까. 그는 며칠 뒤 보스턴의 명문 학교로 간다고 했다. 자신의 입학이 믿기지 않는다며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었다. 우리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갈대밭쯤으로 생각했나 보다. 시원하게 자랑을 늘어놓더니 대화는 점점 이성 이야기로 흘러갔다. “전 송윤아 같이 생긴 여자가 제일 좋아요. 윤지 씨는 강아지 상이라 제 스타일은 아니고… 전 개 상이 좋아요.” “개 상?” 란솔과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개 상과 강아지 상은 엄연히 다르죠. 전형적인 개 상, 그런 얼굴만 보면 미쳐요. 란솔 씨는… 곰 상? 여우랑 짬뽕한?” 우리는 어처구니없어 웃었지만, 속으로는 절묘하다며 공감했다. 개 상에 미쳐있는 그 남자는 한국에 5년 사귄 여자 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서 여자 친구를 사귈 것이고, 한국에 가면 다시 옛 연인을 만날 거라고 떠들었다. 완전범죄를 확신하는 그 뻔뻔함. 보수적인 란솔은 불쾌했는지 자리를 정리했다. 남자를 불결한 물건 취급하듯 보내버리고 우리는 첼시마켓으로 향했다.


란솔은 첼시마켓이 건축학도의 필수 견학 코스라며, 아까 그 남자가 여길 봤어야 한다고 씁쓸해했다. 나는 구조학은 몰라도 이 비정형적이고 어수선한 미학이 좋았다. 무너져 내릴 듯한 외형에 교묘하게 덧댄 현대적 기술. 건물 안은 마치 로봇의 내장에 신기한 버섯이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거품 같은 구슬 조명 아래서, 나 또한 하나의 버섯이 되어 증식하는 기분이 들었다.


울퉁불퉁한 미트 패킹 거리를 걸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원이었다. 우리는 란솔 몰래 몇 번 더 만났다. 별 의미를 둔 건 아니었지만, 란솔에게 말하기엔 왠지 모를 겸연쩍음과 미묘한 수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은 조심스럽게 전화를 했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봤다.


얼마 후, 공교롭게도 이사 날짜가 붕 떠버렸다. 며칠 묵을 곳을 부탁할 지인은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원이 생각났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막연한 의무감, 혹은 평소 그가 보여준 호의에 대한 기대였을까. 그는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브루클린에서 어퍼 웨스트까지. 잠실에서 중계동을 가는 것만큼이나 멀고 귀찮은 거리. 게다가 나는 다시 브루클린으로 가야 했다. 차라리 게스트하우스가 현명했겠지만, 나는 애초부터 무모하고 의도가 다분한 행동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니온스퀘어 역, 비가 내렸다. 나는 갈 곳 잃은 사람처럼 커다란 트렁크를 옆에 두고 유난스럽게 청순한 복장을 하고 서 있었다. 원의 집은 컬럼비아 대학 근처였다. 붉은 카펫이 덩그러니 깔린 거실, 구석에 쭈그리고 있는 간이 매트, 쓰임 없는 벽난로 위의 성모 마리아상. 룸메이트들은 방학이라 집을 비웠다고 했다. 어쩌면 나를 위해 급히 비워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 안은 묘한 적막이 흘렀다. 그의 방은 좁았다. 창밖으로 옆집이 빼곡히 보였다. “옆집이랑 붙어 있어서 별소리가 다 들려요. 밤엔 괴로울 때도 있죠.” 우린 큭큭 웃었다. “재밌겠다.” “처음엔 신기했는데 점점 짜증 나요. 그래서 공부는 주로 거실에서 해요.” 침대 옆엔 스탠드와 책들이 쌓여 있었다. 딱 공부하는 냄새가 났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자 방안은 온통 습기로 가득 찼다. 후끈한 열기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 열기가 날씨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어색한 기운을 감지한 원은 산책을 제안했다. 나는 조금 더 가뿐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원과 함께 캠퍼스를 걸었다. 그는 내게 학교 곳곳을 지적인 어조로 설명해 주었다. 덥고 짜증 날 법도 한데 우리는 지친 기색 없이 걸었다. “정문이 무척 작죠? 개구멍 같이.” “들어오기 힘들다는 상징적 의미인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처럼.” “그런 생각까진 못 했는데… 누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미국은 입구가 거창하지 않더라. 좁고 허름한 문을 열면 놀랄 정도로 넓은 세계가 나오잖아.”


저녁으로 우동을 먹고 피칸 파이가 맛있는 카페로 갔다. 원은 사랑하는 사람과 오고 싶었던 곳이라 했다. 나는 웃으며 넘겼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여자 친구 없어?” 당연히 없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원은 있다고 했다. 나는 줄곧 우리 사이가 ‘아무것도 아님’을 유지했기에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지는 것 같아요.” 나는 첼시에서 만난 ‘개 상’을 좋아하던 남자 이야기를 해 주었다. 원은 유쾌하게 웃었다. “전 그런 스타일 아니에요. 끝내고 시작해야죠.” “그럼 윤지 씨는?” “그 누나요? 그냥 예쁜 누나죠. 처음 봤을 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지만.”


나는 그 누나가 윤지이길 바라면서도 나이길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파이는 지나치게 달았고 호두는 입안에서 꺼끌거렸다. 나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밤이 되자 공기는 더 습해졌다. 뉴욕 사람들은 ‘휴미드’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한국인인 나에겐 이 정도 습기쯤이야 쾌적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우리는 브런치를 먹고 ‘하바나’라는 쿠바 음식점으로 갔다. 맑게 갤 것 같던 날씨는 이내 또 비를 뿌렸다. 우중충한 빛깔이 혼자였다면 우울했겠지만, 둘이라서 오히려 낭만적이었다. 오후 4시. 만남을 준비하기도, 헤어짐을 준비하기도 적합한 시간. 꼬박 하루 반을 함께한 우리는 그사이 애틋하고 돈독해졌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무슨 사고라도 칠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 원은 비장해 보였지만,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떠나기 전에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즐거웠어. 잊지 못할 거야.”


마가리타 잔의 둘레에는 설탕이 발라져 있었다. 달콤한 맛 뒤에 새콤하고 쓴 알코올이 넘어왔다.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버터 바른 옥수수와 창밖의 빗줄기. 나는 알코올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원을 보는 내내 행복했다. 카페 안은 연인들로 가득했다. 나는 무심결에 말을 하고 있는 원의 입술에 내 입술을 살짝 댔다 떼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연상의 노련한 기술이라 해도 좋고, 과거의 연애 습관이 튀어나온 것이라 해도 좋았다. 아주 찰나였고 끈적임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의 연인 같은 모습. 원은 놀란 눈치였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 지었다.


원은 나의 충동적인 행동에 무척 흔들리는 듯했다. 차마 용기 내지 못했던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그는 너무 어렸고,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많았다. 나는 그와 짧게 지나가는 본능적 사랑 따위로 이 감정을 해소할 생각이 없었다.


우린 말이 없었다. 마가리타를 홀짝였고, 옥수수는 몸통만 남았고, 눈이 마주치면 피식 웃으며 비를 구경했다. 그리고 오후 4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 저 있잖아요.” 그가 나를 잡으며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다. 나는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들으면 끝이 뻔한 관계를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행한 예감 때문에. 나는 원의 말을 막았다. 우리가 이렇게 아쉬운 채로 서로에게 남는 일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시작은 반드시 끝을 수반하는 법이니까. 나는 서둘러 그에게서, 빗속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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