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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토픽션

알아서 좋을 게 없는

단편소설

by 무체

가치가 없어진 물건에 대한 처치 곤란으로 고민하고 있는 찰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셋째 이모 병문안 가는 길인데 올 생각 없느냐고. “셋째 이모가 왜?” “갑상선암 수술했잖아. 내일 퇴원해.”


몇 달 전에 이모가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갑상선암이라, 사람들에게 ‘예쁜 암’으로 통한다는 그 암. 예쁜 암은 또 뭐야, 하고 주이에게 물었더니 보험도 되고 수술도 간단하고 등등.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갑상선암 제거 수술을 이모가 선택한 이유는 돈 때문이라고 했다. 다섯 손가락을 펴며 그 정도의 보험금을 받을 거라고 했다. “오백? 오천?” “잘 모르겠어.” 옛날에는 암에 걸리면 집안이 망하는 줄 알았는데 요새 암은 집에 돈도 벌어다 주는 모양이었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이모는 이틀 전에 입원하여 곧바로 수술하고 다음 날 퇴원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도 퇴원 전에 한 번은 가봐야지 하는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병원으로 향했다. 이모는 간단한 혹을 제거하고 오백인지 오천인지 보험금도 받는다는데, 그래서인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생각보다는 일종의 부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 아픈 환자는 셋째 이모뿐만이 아니었다. 큰이모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거구의 체격에 항상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 이모가 암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정밀 검사를 받고 난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는데 결과 발표는 내일이라고 했다. 큰이모의 유방암도 셋째 이모의 갑상선암처럼 예쁜 암일까. 자식 속 썩이는 암이겠지. 큰이모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험을 들었을 리도 만무했다. 대신 큰이모에게는 딸이 큰 보험이니 그나마 안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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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갔더니 모처럼 이모 넷이 모여 있었다. 각양각색 네 자매였지만 미간을 찌푸리는 건 누가 누구에게 물려받았는지 똑같았다. 병원 입구에서 만나 같이 간 주이가 막내 이모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인상 좀 펴.” 그런 주이를 보며 내가 말했다. “너도 똑같이 인상 쓰고 있어.” “닮을 게 없어서 그런 걸 닮냐.” 막내 이모가 주이를 보며 말했다. 주이가 자신의 미간을 문지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엄마를 본체만체하고 큰이모 옆에 앉아서 안부를 물었다. 이모가 할 말이 많다는 듯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2013년에 이상 소견이 있었는데 내가 무시했더니 이렇게 병을 키웠지 뭐냐. 처음에는 무섭고 불안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 “이모! 괜찮아. 암은 스트레스에서 오는 거니까 맘 편히 가지고 수술받고 나서 잘 먹고 잘 쉬면 돼.” “그래. 그래야지.” “통증 같은 건 없고? 다른 데 아프거나 한 데는 없어?” “전혀 없지. 건강 검진받다가 알았지. 이렇게 될 줄 알았냐. 니 엄마도 건강검진 받으라니까 말을 안 듣고.”


막내 이모도 곁에서 거들었다. 그녀는 자매 중 가장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항상 걱정거리를 만들어내는 달인이었다. “그래, 니네 엄마도 검진받아야 하는데 말을 안 들어.” 그러자 엄마가 발끈했다. “아니, 멀쩡한 사람을 왜 자꾸 검진을 받으라 마라야.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신경들 쓰지 마!” 난 엄마를 자리에 앉히며 이모들을 진정시켰다. “우리 엄마는 그냥 내버려 둬. 겁나서 그러는 거야. 그냥 암말도 마셔들.”


큰이모가 내 곁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항상 가족의 중심이 되어 모든 걸 해결하려 했던 큰이모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건강 문제로 불안해 보였다. “그래, 니 엄마는 한마디만 해도 저렇게 난리다. 가만있으라고.” “그러게. 이모들이 걱정해서 해주는 소리를 괜히 지레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큰이모는 내심 불안한지 유방암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모가 사람들한테 잘하니까 주변에서 다 걱정해주고 도와주고 그러네. 이모 이렇게 자꾸 사람들이랑 얘기 많이 해서 겁나는 걸 떨쳐내는 방법도 괜찮아.”


내 말에 이어서 엄마도 위로랍시고 수술이 간단한 거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셋째 이모가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얘기했다. 그녀는 평소엔 가장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 “간단한 것만은 아니지. 말을 왜 자꾸 그렇게 해.” 나는 엄마의 말을 막았다. “맞아. 아무리 그래도 간단한 수술이 어딨어. 말은 그렇게 해도 간단한 수술은 아니지.”


엄마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엄마는 그렇게 감정 이입을 시키는 분이니까. 정신력으로는 뭐든 못 할게 없다고 믿는 양반이었다. 그런 엄마를 보면 외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외할아버지는 셋째 이모의 신혼집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할아버지는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자동차 사고만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병이었다. 할아버지는 밤마다 머리를 쥐어흔들며 고통을 호소했고 낮에는 몸에 좋다는 것을 다 찾아 드셨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노력으로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뒤늦게 교회도 다녔고. 그러나 오래 못 버티시고 돌아가셨다. 환갑을 겨우 넘긴 나이였는데. 만약에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도 당하지 않고 뇌종양인 것을 모른 채 지내셨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 그랬다면 조금 더 사시다 가시지 않았을까. 그 뒤로 엄마는 병이란 미리 알아서 좋을 게 없다는 주의로 변했다.


외할머니는 큰 병치레 없이 90세까지 살다 가셨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의지와 외할머니의 근성을 물려받았음이 틀림없다. 세상에 맞서는 태도에서는 할아버지를, 건강에 대한 무관심에서는 할머니를 닮았다. 아무튼 그런 엄마를 걱정하며 검진 운운하는 다른 자매들이 엄마에게는 같잖은 참견으로 느껴졌다는 걸 내가 모르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모들은 했던 말을 반복해서 하는 일종의 ‘윤회 토크’를 하는 버릇이 있다. 나는 병실에서 있던 30분 동안 똑같은 얘기를 들어야 했다.


큰이모에게선 2013년 발병된 이모의 유방암 사이즈에 관한 이야기를, 셋째 이모에게선 목이 아프다는 이야기, 막내 이모는 엄마의 검진에 관한 말, 엄마는 요즘 수술이 간단하다는 이야기. 전부 다 자기 안의 세계에 빠져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다 서로의 말 궤에 부딪혀 한 번씩 투닥거리고는 또다시 자신이 생각한 얘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엄마의 말로 셋째 이모는 여태 멀쩡하다 우리가 들이닥치니까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막내 이모는 그런 셋째 이모더러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라고 수군거렸고, 큰이모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미라서 그렇다고 했다. 셋째 이모에게 몇 번 호출당한 간호사는 그럴 수 있다며 이모의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모는 계속 트집을 잡았다.


“저렇게 아프면 내일 퇴원 못 할 텐데.” 셋째 이모의 표정이 편치 않아 보였다. 혹시 과실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엄마 말대로 요즘 암은 암도 아니라 수술만 하면 낫는다고 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여긴 수술 후의 부작용으로 급사한 확률이 높아지다 보니 더 불안했다. 올 1월에 돌아가신 셋째 이모부도 골수암 초기였고 수술만 하면 낫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수술 후 몸이 급격히 쇠약해져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전에 막내 이모와 썸 타던 한 남자도 위암 초기라 간단히 수술만 받으면 된다고 했는데 별안간 죽었다. 수술은 잘 되었으나 갑자기 세상을 뜬 사람들에 대한 불안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의사나 기술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왜 죽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자 이모의 불안한 표정이 더 눈에 밟혔다.

나는 이종사촌들과 병실을 나왔다. 그 와중에 셋째 이모는 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라는 말을 백 번도 더 했고. 나는 혼자 집으로 가는 엄마를 향해 말했다.


“엄마가 검진 안 받는다고 했으니까 아프면 그냥 죽어. 알았지?” “그래, 아프면 콱 죽어 버릴게. 걱정하지 마라.”


엄마는 웃는 듯 우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표정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우리 가족의 역사는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걱정과 무관심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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