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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인 saga

할리우드의 불손한 숙녀 루이즈 브룩스

by 무체


1920년대 할리우드에서 루이스 브룩스만큼 완강하게 자신의 길을 고집한 아이콘은 없었다. 그녀는 오늘날 재즈 시대의 대담한 스타일과 몇 편의 잊을 수 없는 무성영화에서 보여준 용감무쌍한 연기, 그리고 영화 산업에 대한 솔직하고 통찰력 있는 글로 기억된다. 무엇보다 그녀는 단순히 관능적인 배우가 아닌 지성을 가진 예술가로 인정받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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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할리우드는 그녀의 야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스튜디오 간부들의 눈에 그녀는 댄서, 코러스 걸, 그리고 지나치게 똑똑하고 제멋대로인 스타를 꿈꾸는 신인 여배우에 불과했다. 게다가 보수적인 사회 지도층은 그녀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스커트와 짧은 단발머리의 '천박한' 플래퍼 룩을 유행시켜 젊은 여성들을 방종하게 만든다고 비난했다.


세월이 흐른 뒤, 루이스 브룩스의 작품과 스타일에 대한 평가는 그녀가 살아생전 받았던 인정보다 훨씬 높아졌으며,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명성과 영향력은 건재하다. 무성영화 시대에 퇴폐적이고 관능미 넘치는 배우들이 득세하던 시절, 브룩스는 지성과 앞서가는 스타일로 영화계의 '밉상'이 된 예술가였다. 마치 쇼펜하우어가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듯, 루이스 브룩스의 진가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제대로 평가받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브룩스는 실제 촬영장에서 쇼펜하우어의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영화 비평가들은 브룩스가 당시 유행했던 과장되고 인위적인 연기 스타일 대신 좀 더 사실적인 감정 묘사를 택하며, 자연주의적 연기의 선구자였다고 평가한다. 당시 사람들은 그녀의 연기를 두고 "그녀는 연기를 하지 않아요! 그녀는 아무것도 안 해요!"라고 말했지만, 이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를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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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브룩스는 1906년 11월 14일 캔자스주 체리베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15세의 어린 나이에 데니숀 댄서스의 댄서로 입문해 뉴욕으로 건너가 1922년부터 1924년까지 활동했다. 그러나 그녀의 독립적인 성격과 예의 없는 태도로 쫓겨나게 되었고, 그 길로 브로드웨이로 방향을 전환했다.

꾸준한 활동 끝에 1928년 하워드 혹스의 '에브리 포트의 소녀(A Girl in Every Port)'와 윌리엄 웰먼의 '구걸하는 인생들(Beggars of Life)'로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했다. 그녀의 특별한 매력과 연기는 독일 감독 게오르그 빌헬름 파프스트의 눈에 띄었고, 1929년 그의 영화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에서 팜므파탈적 매력을 지닌 '룰루'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영화에서 브룩스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어 제작된 '길 잃은 소녀의 일기(Diary of a Lost Girl)'에서는 매춘을 강요당하는 16세 소녀 역할을 맡아 연기의 정점을 찍었다. 영화 속 그녀의 자연스러운 성적 표현과 함께 창백한 피부, 갈색의 완벽한 단발머리는 당시 보수층에게는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대중들에게는 플래퍼 룩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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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브룩스는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녀의 지적인 태도와 거침없는 발언을 할리우드는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가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결정적 사건은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에서 '카나리아 살인사건(The Canary Murder Case)'을 유성영화로 전환하기 위해 목소리 더빙을 요청했을 때, 브룩스가 이를 거부한 일이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지나치게 독립적이었던 브룩스는 당시 말 잘 듣는 관능적인 배우들만 선호했던 스튜디오 시스템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매사에 자기 방식대로 하려 했고 지적 우월감까지 표출했던 브룩스는 트러블의 연속 끝에 1938년, 불과 32세의 나이에 영화계를 영원히 떠나게 된다. 그 후 그녀는 댄스 스쿨을 열고 댄스에 관한 소책자를 집필했다. 1943년에는 뉴욕으로 이주해 영화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1982년에는 지적이고 자전적인 에세이를 담은 '할리우드의 룰루(Lulu in Hollywood)'를 출간했다.


뉴욕 타임스는 그녀의 책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똑똑하고 독설에 가득 차 있지만, 그녀의 진술 중 대다수는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라고 평했다. 브룩스는 촬영장에 항상 늦게 도착했음에도 자신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제작진이 자신을 해고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이런 오만한 태도, 불성실함, 자기 관리 부족은 현대 관점에서 보면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독특한 스타일과 선구적인 연기는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결국 그녀는 시대를 초월한 스타일 아이콘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오늘날 루이스 브룩스의 시그니처 보브 헤어컷은 수많은 현대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녀의 자연스러운 연기 방식은 현대 연기의 기초가 되었다. 그녀의 삶은 오만함과 천재성, 반항과 혁신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우리에게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의 고독한 여정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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