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를 할리우드를 대표한 배우 바바라 스탠윅은 단순한 영화배우 이상이었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고, 스크린 밖에서도 강인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냈다. 불우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끝없는 도전과 성취로 채워진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미국 영화사에는 수많은 전설적인 배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바바라 스탠윅만큼 강인한 의지와 다채로운 연기력으로 60년 가까운 세월을 영화계에 헌신한 배우는 드물다. 1907년 7월 16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녀는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스크린 안팎에서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구현했다. 본명 루비 스티븐스(Ruby Stevens)에서 바바라 스탠윅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녀는, 어쩌면 그 순간부터 자신만의 운명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삶은, 마치 한 편의 할리우드 드라마처럼, 비극으로 시작되었다. 단지 4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전차 사고로 잃었고, 슬픔에 빠진 아버지는 다섯 명의 자녀를 남겨둔 채 떠나버렸다. 이로 인해 어린 바바라는 고아원에서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언니는 쇼걸이 되어 독립했지만, 어린 동생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이런 가혹한 환경은 스탠윅을 조숙하고 강인하게 만들었다.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흡연을 시작했던 것은 그녀가 일찍이 어른의 세계로 내던져졌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러나 불우한 환경이 그녀의 인생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지는 않았다. 오히려 스탠윅은 강한 의지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15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브로드웨이에서 코러스 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26년, 'The Noose'라는 카바레에서 댄서로 데뷔하면서 '바바라 스탠윅'이라는 예명이 탄생했다. 1927년, 코미디언 프랭크 페이와 결혼한 그녀는 2년 후 영화배우의 꿈을 안고 할리우드로 이주했다. 초기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그녀의 독특한 매력과 연기력은 곧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32년에는 아들을 입양했으나, 남편의 알코올 문제로 1935년 결혼 생활은 파국을 맞았다. 이 시기 스탠윅이 베티 데이비스, 조안 크로포드와 함께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그녀만의 독특한 캐릭터 소화력에 있었다. 당시 여배우들이 주로 내조에 충실한 행복한 주부 역할을 맡았던 것과 달리, 스탠윅은 억척스럽고 독립적이며 때로는 와일드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은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했다.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 1944)'에서는 치명적인 매력의 팜므파탈로, '스텔라 달라스(Stella Dallas, 1937)'에서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성애 넘치는 어머니로, '크리스마스 코네티컷(Christmas in Connecticut, 1945)'에서는 코미디 감각이 돋보이는 인물로 변신했다. 심지어 웨스턴 장르의 '포티 건즈(Forty Guns, 1957)'에서는 여성 총잡이 역할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장르를 초월한 연기력을 보여줬다.
1937년, '스텔라 달라스' 주연으로 그녀는 마침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며 배우로서의 정상에 올랐다. 이후 '이중 배상(1944)', '미스터 스켑턴을 만나다(Sorry, Wrong Number, 1948)', '피치 오브 골드(Ball of Fire, 1941)'로 세 차례나 후보에 올랐으나 본상 수상의 영광은 누리지 못했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불운한 노미네이션 기록 중 하나로 여겨지는 이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비록 1982년에야 공로상으로 명예 오스카를 받게 되었지만, 그녀의 예술적 업적은 이미 할리우드의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아카데미가 인정하지 않았을지라도, 업계와 관객들은 그녀를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1939년, 스탠윅은 배우 로버트 테일러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약 10여 년간의 결혼 생활 후 두 사람은 헤어졌고, 이후 그녀는 생의 마지막까지 혼자의 시간을 선택했다. 화려한 전성기를 지나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감초 같은 조연으로 계속해서 활약했다.
1983년, ABC 드라마 '콜비가(The Colbys)'와 미니시리즈 '새와 가시나무(The Thorn Birds)'에서 강인한 의지력을 지닌 할머니 역할로 골든 글로브상과 에미상을 수상하며, 노년에도 변함없는 연기력을 증명해 보였다. 마치 자신의 인생을 반영하듯, 스크린 속에서도 그녀는 끝까지 강인한 여성으로 남았다. 특히 '빅 밸리(The Big Valley, 1965-1969)' 시리즈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강인한 여성 역할은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여성 캐릭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이러한 캐릭터들은 후대 여성 배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스크린에서 강한 여성상의 원형을 제시했다.
1990년, 82세의 나이로 울혈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난 바바라 스탠윅. 그녀의 요청에 따라 장례식이나 추도식은 열리지 않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살았지만, 마지막은 그녀답게 조용하고 단호하게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