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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인 saga

찬란했던 삶의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 비비안 리

by 무체

인생은 때로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 비비안 리의 삶은 그녀가 연기했던 어떤 작품보다 더 격정적이고 비극적이었다. 스크린에서 불꽃같은 열정을 보여주었던 그녀의 실제 인생은 찬란한 영광과 깊은 어둠이 교차하는 한 편의 서사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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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11월 5일, 인도 다즐링의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영국 증권 중개사 아버지와 아일랜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비비안 하틀리. 그녀는 6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운명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한 비비안은 탁월한 교육을 받으며 세계를 경험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학교를 다니며 프랑스어와 이탈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된 그녀는 일찍부터 천부적인 재능과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주목받았다. 왕립 연극 아카데미에서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19세라는 이른 나이에 변호사 홀먼과 결혼하며 잠시 자신의 꿈을 유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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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그녀는 '비비안 리'라는 이름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첫 주연작 '세상은 밝아지고 있다(Things are Looking Up)'에서 변덕스러운 요정 역할로 등장한 그녀는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영국 최고의 미남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를 만난 것이다.

이십 대 초반의 비비안과 28세의 올리비에. 둘은 첫눈에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문제는 둘 다 기혼자였다는 점이었다. 비비안에게는 딸 수잔 패링턴이, 올리비에에게도 가정이 있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 어떤 장벽도 뛰어넘을 만큼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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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비비안에게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열망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역할. 그녀는 1,400명이 넘는 후보자들을 제치고 이 역할을 따냈고, 이로써 그녀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그러나 폭발적인 인기와 정신적 부담은 그녀의 연약한 심신을 서서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1940년, 비비안과 올리비에는 마침내 각자의 가정을 정리하고 결혼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미 광채 뒤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1944년, 클레오파트라 역할을 준비하던 비비안은 촬영장에서 넘어져 유산을 하는 불운을 겪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불면증, 조울증, 그리고 결핵까지 겹치면서 그녀는 당시 실험적이었던 전기충격요법까지 받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얼굴에 화상 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정신적 고통을 견디기 위해 비비안은 점점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1949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그녀는 불안정한 블랑쉬 뒤부아 역할로 또 한 번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지만, 이 작품은 마치 비비안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았다.


올리비에와의 관계에서 또 다른 유산을 경험하고, 심각한 조울증과 의부증으로 고통받던 비비안은 결국 1960년 올리비에와 이혼하게 된다. 올리비에가 곧바로 재혼하자 비비안도 연하의 남자와 교제를 시작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올리비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1967년 7월 8일, 53세의 나이로 비비안은 결핵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장례식을 치르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평생 사랑했던 올리비에의 손에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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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리의 삶은 찬란한 영광과 깊은 슬픔이 공존하는 모순의 역사였다. 천부적인 재능과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세계를 매료시켰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깊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가 연기했던 작품들이 보여주듯, 그녀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고통을 연기로 승화시켰다. 올리비에를 향한 그녀의 집착적인 사랑은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그녀를 불멸의 예술가로 만들었다. 둘은 힘겹게 사랑하고 헤어졌지만, 비비안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올리비에만을 사랑했고, 올리비에 역시 그의 생애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비비안 리였다고 고백했다.


비비안 리는 떠났지만, 그녀가 스크린에 남긴 불멸의 순간들과 그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의 별빛은, 역설적이게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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