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만 되면 회자되는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 알리 맥그로. 1970년대 개봉한 이 영화는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수백만 장의 크리넥스 티슈가 팔릴 정도로 관객들의 눈가를 적신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스크린 속 알리 맥그로의 삶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것은 배우 알리 맥그로의 실제 인생이었다.
풀네임 엘리자베스 앨리스 맥그로는 1939년 4월 1일 미국 뉴욕 파운드리지에서 적막하고 고립된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예술가였는데, 아버지는 우아한 외톨이자 신비로우면서 실패한 천재였고,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한 어머니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규율을 중시하며 조용하고 비판적인 성향의 인물이었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로 인해 맥그로는 교양 있으면서도 고립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공예와 탐구 그리고 관찰로 가득한 나날을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남다른 통찰력을 심어주었지만, 간혹 공포스러울 정도로 포악한 알코올 중독자였기에 그녀의 작은 집은 늘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완벽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힐러리 클린튼도 졸업한 명문 사립 여대인 웰즐리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미술사를 전공한 그녀는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1961년 졸업을 앞둔 알리는 전설적인 바자 패션지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조수로 일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와 같은 대우를 받았지만, 결말은 사뭇 달랐다.
그녀가 첫 패션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후, 알리는 1961년에 로빈 호엔을 만나 결혼했다. 명문가 시댁은 그녀를 미국의 귀족계급을 상징하는 소셜 레지스터에 등록시키길 원했고, 돈이 없던 그녀는 명부에 실릴 멋진 사진을 고심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멜빈 소콜스키라는 패션 사진작가를 제안했는데, 그는 영국 모델 트위기를 찍어 유명해진 사진작가였다. 그와 함께 프로필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그는 그녀에게 주당 80달러를 받는 스타일리스트 자리를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맥그로는 보그 잡지에서 사진작가의 스타일리스트와 모델로 일했다. 게다가, 그녀는 연기로 전향하기 전에 인테리어 장식가로도 활동했다. 알리는 1962년, 결혼 1년 만에 첫 남편과 이혼했다. 그녀가 소콜스키 밑에서 일하는 동안, 샤넬 넘버 파이브의 광고 모델로 그녀를 원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녀의 광고 사진이 고급 약국에 진열되자 영화계 관계자가 그녀를 찾아와 연기자로 전향하게 된다.
1968년 마침내 그녀는 작은 배역에 캐스팅되었고, 1969년 '굿바이, 콜럼버스'에서 그녀의 첫 번째 실제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해 '콜럼버스 굿바이'로 골든 글로브 신인상을 수상한 그녀는, 소속사 대표이기도 했던 로버트 에반스의 부유함에 취해 같은 해 결혼했다.
그녀는 다음 해 그가 제작한 영화 '러브 스토리'로 메가 스타가 되었다. '러브 스토리'는 알리 맥그로와 상대 배우 라이언 오닐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작품이다. 하버드 대학의 음대생과 법대생이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여자는 평범한 제과점 딸로 유학을 준비 중이었고 남자는 재벌집 외동아들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었으나 결혼 반대로 둘이 힘겹게 살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 여주인공은 백혈병에 걸렸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왔지만 그녀는 이미 죽어가며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란 명대사를 남기게 된다.
이렇게 지금 보면 유치한 스토리가 당시에는 너무 신선한 감동을 주었기에 어마어마한 히트를 기록했다. 영화 스토리를 몰라도 지금도 눈만 쌓이면 영화 속 장면을 흉내 내는 사람이 여전히 속출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이 영화가 시한부 인생을 가장하는 허언증 걸린 사람들을 양산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맥그로는 1972년 스티브 맥퀸과 함께 찍은 액션 영화 '겟어웨이'도 큰 인기를 끌었지만, 흥행요인은 영화가 재밌었다기보다 맥퀸과의 스캔들 때문이었다. 이미 두 번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 알리는 그와 사랑에 빠져 타블로이드지를 장식했고, 대중은 이들의 애정행각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좇기 바빴다.
속도의 쾌감을 즐기던 스티브 맥퀸은 스턴트맨 아버지와 매춘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갱단에 들어갔다 소년원도 다녀왔지만, 연기하는 재주 하나는 특출했던 위험천만한 배우였다. 할리우드에서도 유명한 마초남이던 '나쁜 남자'를 나름 최고 지성인에 속하는 맥그로와 불륜에 빠졌다는 것이 '러브 스토리'의 순애보적인 사랑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맥그로는 1973년 맥퀸과 결혼하여 헌신적인 아내로 살았다. 맥퀸은 자신의 어머니 때문에 여성을 의심하는 버릇이 있었음에도 자기는 쉴 새 없이 바람을 피웠다. 가스라이팅을 제대로 당한 알리 맥그로는 남편이 다른 여자들과 밤새 노닥거리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다음 날 아침을 차리라고 하니, 곧바로 차려 줄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에게 몸매 관리를 하라고 해서 그때부터 운동을 한 것이 훗날 요가로 이어졌다. 게다가 맥퀸은 그녀가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맥그로는 순순히 아이를 돌보는 데 주력했다.
결혼 후 스티브 맥퀸도 불륜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는데, 맥그로의 전남편은 당시 영화 산업을 쥐락펴락하던 인물이기에 한동안 할리우드의 메이저급 영화에는 발도 못 디딜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스티브 맥퀸도 만만치 않은 바람둥이였기에 맥그로 입장에서는 '그놈이 그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혼 막바지에 스티브 맥퀸은 그 버릇을 못 고치고 또다시 바람이 났고, 5년 만에 이혼했다. 그리고 그녀와 헤어진 2년 후에 맥퀸은 겨우 50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지만, 암 수술 회복 중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와 함께한 약물과 알코올 복용을 했던 날들을 후회하면서 "멋진 날들과 끔찍한 날들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맥그로는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하지만 1979년에 찍은 테니스 멜로 영화 '플레이어스'는 비평가들에게는 혹평을, 관객들에게는 무시를 당했다. 다음 작품을 몇 편 찍기는 했으나 이렇다 할 흥행은 하지 못하여 3년 정도를 쉬었다가 텔레비전 시리즈물에서 히트를 기록했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기에 지속적으로 배역을 맡았고, 1993년 이후에는 화면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녀의 스크린 경력이 끝나갈 무렵 그녀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마치 자신의 트라우마를 퇴마 시키기라도 하듯 그녀는 창조적이면서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 시작하여 1960년 로빈 호엔과의 짧은 결혼과 이혼, 그리고 사진작가 조수로 일하러 간 것부터 일대기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재활 시설에 들어간 것부터 평생 자신을 괴롭힌 악마들을 다루었다. 재활 시설에 들어가서 자신을 소개할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 이름은 알리이고 알코올중독자이고 남성 의존적입니다."
그녀는 우연한 스타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항상 그녀는 스스로에게 결함이 많고 충분히 똑똑하지도 충분히 예쁘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평생 우상인 젤다 피츠제럴드의 삶을 모방하려고 했다. 피츠제럴드의 아내이면서 유명 소설가이기도 한 젤다 피츠제럴드는 18년간 정신병을 앓은,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그 자체였다. 이런 작가를 평생 우상으로 숭배한 알리 맥그로는 어리석고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구석이 다분해 보인다.
스크린에서는 사라졌지만 지속적으로 튀는 행동을 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나름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었겠지만, 2000년 이후에는 1980년대 제인 폰다가 에어로빅 비디오로 전 세계를 강타했듯 맥그로는 요가 비디오로 사람들이 더 나은 몸매를 가질 수 있게 도왔다.
맥그로는 1971년 에반스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조시 에반스를 "지구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간"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를 따라 배우가 되었지만 크게 유명해지는 기미가 보이질 않자 영화감독으로 직업을 선회했다.
맥그로는 으레 다른 배우들도 그랬듯 동물 보호에 앞장섰다. 특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산불 등 재난이 생겼을 때 자신들의 반려 동물도 함께 챙기라는 캠페인에 적극적이었다.
현재 80살이 넘은 그녀는 멕시코의 집에서 비로소 행복을 얻었다며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맥퀸 이후 결혼은 안 했지만 한동안은 '유부남 킬러'로 지낸 적도 있고, 현재는 남자친구 제프와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알리 맥그로의 삶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이고 굴곡진 여정이었다. 예술가 가정에서 태어나 패션계와 영화계를 오가며 스타덤에 올랐지만, 개인적 고통과 알코올 중독, 실패한 결혼 생활을 겪었다. 그녀의 인생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순간보다 그 이면의 어둠이 더 깊었던 할리우드 스타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하며 동물 권리 옹호자로 변신해 왔다. 화려했던 '러브 스토리'의 여주인공은 이제 멕시코에서 자신만의 평화를 찾았다. 명성과 인기의 덧없음, 그리고 진정한 자아 찾기의 여정은 오늘날 셀러브리티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