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인 saga

70년대 헤어 트렌드 아이콘 파라 포셋

by 무체

1970년대, 전 세계 여성들이 따라 하던 '사자머리'의 주인공.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 '미녀 삼총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파라 포셋은 한 시대를 풍미한 섹스 심벌이자 스타일 아이콘이었다. 미스코리아 머리로도 불리던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배경과 화려한 삶 이면에 숨겨진 아픔을 들여다본다.


1947년 2월 2일, 미국 텍사스주 코퍼스크리스티에서 태어난 파라 포셋(본명: 메리 파라 레니 포셋)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미모로 주목받았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미생물학을 공부하다 미술로 전공을 바꾼 그녀는 대학 1학년 때 '캠퍼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명의 여학생'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신입생이 선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할리우드 에이전트들의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부모의 뜻을 존중해 학업을 우선시하던 그녀는 결국 21살의 나이에 할리우드행을 결심한다. 이후 그녀에게 쏟아진 기회들은 그녀가 텍사스로 돌아갈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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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파라 포셋은 '육백만 불의 사나이'로 유명했던 리 메이저스와 사랑에 빠져 1973년 결혼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 커플로 꼽히던 두 사람이었지만, 리 메이저스는 그녀가 가정주부로 머물기를 원했고, 순종적인 성향의 포셋은 자신의 커리어를 뒤로하고 가정에 충실했다. 그러나 1976년, 그녀는 ABC 방송국의 TV 시리즈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에 출연하게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비록 한 시즌만 출연했지만, 그녀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롱 레이어드 섀기 커트(long layered shag cut)'에 '플립 아웃(flip out)' 스타일링을 한 이 헤어스타일은 한국에서는 '미스코리아 머리'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파라 포셋의 수영복을 입은 사진은 무려 1,200만 장이 팔릴 정도로 그녀는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이었다. 각종 매체와 상품에는 그녀의 사진이 가득했고, '미녀 삼총사'는 1976년부터 1977년까지 그녀를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성공은 그녀의 결혼 생활에 균열을 가져왔다. 두 사람의 상승하는 커리어와 바쁜 생활이 결혼 생활에 부담을 주었고, 게다가 아이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리 메이저스의 오랜 친구인 라이언 오닐이 그녀의 삶에 등장한다. 1970년 개봉한 영화 '러브스토리'로 스타가 된 라이언 오닐은 지고지순한 영화 속 캐릭터와는 달리 실제로는 바람기가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셋은 오닐의 딸을 돌봐주면서 친분을 쌓았고, 결국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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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포셋과 리 메이저스는 헤어졌고, 공식적인 이혼은 1982년에 이루어졌다. 이후 포셋은 라이언 오닐과 복잡한 관계를 이어갔다. 1985년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 레드몬드가 태어났지만, 포셋은 오닐과 결혼하지 않고 동거 관계를 유지했다. 17년간의 동거 생활 끝에 1997년 두 사람은 헤어졌다.

라이언 오닐과 포셋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일부에서는 이들의 관계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묘사하지만, 오닐의 딸 테이텀 오닐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아버지가 포셋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것이 포셋이 오닐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결혼을 거부한 이유였을 수 있다.

포셋은 50세의 나이에도 플레이보이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2006년 항문암 진단을 받는다. 성접촉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 희귀 암은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녀의 언니도 2001년 폐암으로 사망했기에, 유방암이나 다른 종류의 암을 예상했을지언정 항문암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치료에 전념한 그녀는 2007년 60번째 생일에 암이 완치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3개월 후 암이 간으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허용되지 않는 대체 치료를 위해 독일로 가기도 했고, 투병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많은 이들과 고통과 슬픔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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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 포셋은 2009년 6월 25일, 62세의 나이로 마이클 잭슨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암 투병 기간 동안 라이언 오닐은 그녀 곁을 지켰지만, 그의 행동에 진정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특히 포셋의 장례식에서 그는 자신의 친딸 테이텀을 알아보지 못하고 추근거렸다는 일화는 그의 성격을 의심하게 만든다.


파라 포셋은 약 600만 달러에 달하는 유산 대부분을 아들 레드몬드에게 남겼으며, 모교인 텍사스 대학과 암센터에도 일부를 기증했다. 하지만 그녀의 곁을 지켰다는 라이언 오닐에게는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레드몬드 오닐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약물 중독 문제로 여러 차례 법적 문제에 휘말렸다. 2012년에는 아버지 라이언 오닐과 함께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레드몬드는 자신의 문제가 단순한 마약 중독이 아니라 인생 전체의 심리적 트라우마라고 말하며, 그 원인을 부모, 특히 아버지의 탓으로 돌렸다. 2018년 레드몬드는 살인 미수 및 각종 혐의로 기소되었고, 2019년에는 정신적으로 무능력하다는 판결을 받고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조현병, 양극성 장애, 반사회적 성격 장애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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