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인 saga

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허시

by 무체

"전 위대한 배우가 될 것이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만 남았어요."

이 당돌한 말은 어린 소녀가 연극학교 학장 앞에서 한 선언이었다. 훗날 세계적인 아이콘이 될 올리비아 허시(Olivia Hussey)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에서는 '올리비아 핫세'로 더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녀의 본명은 올리비아 허시다. 1970년대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그녀는 90년대 데뷔한 걸그룹 S.E.S 유진이 '허시를 닮은 외모'로 화제가 될 정도로 강렬한 미의 기준을 제시했다. 현재까지도 그녀와 비슷한 콘셉트로 화보나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들을 보면, 그녀의 미모가 얼마나 시대를 초월한 영향력을 지녔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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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허시는 1951년 4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 오페라 가수 아버지와 영국 출신 법률 비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아르헨티나계 영국인이라는 이색적인 배경을 지녔다.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일곱 살 때 남동생, 어머니와 함께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고, 어머니의 성을 따라 '올리비아 오수나'에서 '올리비아 허시'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어린 올리비아의 첫 꿈은 의외로 배우가 아닌 수녀였다.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수녀가 되는 방법을 몰라서, 연기자가 되면 수녀인 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독특한 이유로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그녀의 어머니는 사실 그녀가 수도원에 들어가길 바랐지만, 올리비아는 "배우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연기학원 오디션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그렇게 그녀는 이탈리아 콘티 아카데미 연극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입학 인터뷰에서 학장에게 했던 당찬 선언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곧바로 단역과 모델 일을 시작한 그녀는 13살에 연극 무대에 데뷔했고, 이내 영화와 텔레비전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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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허시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은 1968년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그녀가 16살 때 출연한 이 작품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캐스팅된 역할이었다. 그녀가 줄리엣 역을 따낸 이유는 "앳된 얼굴에 육감적인 몸매를 갖춘 '베이글녀'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에서 걸어 나온 듯한 순수함과 성숙한 관능미를 동시에 지닌 그녀는 "시대를 초월한 미인이 줄리엣으로 태어났다"는 찬사를 받았고, 이 영화로 1969년 골든 글로브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4년에는 '블랙 크리스마스'에서 청순한 이미지와는 대조되는 역할을 맡아 '스크림 퀸'으로 불리며 다양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캐릭터 중에서 대중의 기억 속에는 오로지 '줄리엣'만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올리비아 허시의 사생활은 스크린 속 낭만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굴곡이 많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호흡을 맞췄던 레오나르드 파이팅과는 약혼까지 했으나 결국 결별했고, 이후 '제임스 딘을 닮은 배우'로 불리던 크리스토퍼 존스와 교제했지만 그가 조현병을 앓고 있어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후에 밝혔다.

그녀는 당시 할리우드의 비극적 사건인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과도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테이트와 폴란스키의 신혼집을 인수하려 했으나, 이사하기 한 달 전 테이트가 임신 중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샤론 테이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집"이라며 이사했고, 그곳에서 딘 폴 마틴과 교제를 시작했다.

올리비아는 1971년 딘 폴 마틴과 첫 결혼을 했고, 아들 알렉산더를 낳았다. 하지만 그녀가 임신 중일 때 남편의 외도와 불법 무기 소지죄로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며 결혼 생활은 파국을 맞았다. 불과 22살에 이혼하고 싱글맘이 된 그녀는 폭식과 다이어트를 반복하는 식이장애, 알코올 중독, 광장공포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명상가 스와미 묵타난다를 만나 1982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에게 의지하며 심신을 회복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녀는 1980년 한국계 일본인 가수 아키라 후세와 재혼하여 아들을 낳았으나 1989년 이혼했고, 1991년에는 미국 록가수 글렌 아이슬리와 세 번째 결혼하여 딸 인디아 아이슬리를 낳았다. 현재 그녀의 자녀들인 알렉산더와 인디아는 모두 배우로 활동 중이다.


2003년, 그녀는 영화 '마더 테레사'에서 주연을 맡아 어린 시절 품었던 '수녀'의 꿈을 스크린에서나마 이룰 수 있었다. 성스럽고 기품 있는 연기를 선보였지만, 대중의 인식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건강 문제와도 씨름했다. 2008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10년간 크고 작은 수술과 치료를 받았으며, 2018년 재발한 암에 대해 방사선 치료를 받아 생명을 구했다.


그녀의 이름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된 것은 2023년, 그녀와 레오나르드 파이팅이 '로미오와 줄리엣' 촬영 당시 성착취와 아동학대를 당했다며 파라마운트사를 상대로 6,400억 원 상당의 소송을 제기했을 때였다. 두 배우는 영화 속 누드 장면 촬영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부적절한 행위였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판사는 해당 장면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으며, "명백히 불법이라고 판단할 만큼 선정적이라는 증거가 없다"라고 판결했다.

이 소송에 대해 공감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70대가 된 배우들이 10대 시절의 결정을 뒤늦게 문제 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었다. 특히 허시가 지난 50년간 해당 누드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기도 했다는 점, 그리고 문제가 된 장면이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는 점에서 현대의 신정교도주의 적 분위기에 휩쓸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개인적인 논쟁과 별개로, 올리비아 허시는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배우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녀의 삶은 영광과 고통, 아름다움과 투쟁이 교차하는 복잡한 궤적을 그려왔다. 하지만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으로서, 그녀의 청순하고도 관능적인 이미지는 영원히 영화사에 남을 것이다. 아마도 유일무이한 '영원한 줄리엣'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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