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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체 May 27. 2024

문학 샤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올빼미

삶에는 서서히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나의 유일한 두려움은 나 자신을 알지도 못한 채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나는 나와 타인들 사이에 가로놓인 두려운 심연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침묵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가능한 한 오래 나의 속마음을 남에게 발설하지 않는 것임을. 인간들과 연결되어 있던 마지막 유대의 끈을 끊어 버린 이후,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욕망은 나 자신을 더 잘 아는 일이었다.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인가. 나는 단지 내 그림자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그 그림자는 등잔의 불빛을 받아 벽에 드리워져 있다. 나 자신을 그에게 알려야만 한다.




그녀가 나의 시야에서 사라진 지 두 달하고 나흘이 흘렀다. 그녀가 떠나간 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중단했다. 어리석고 성공한 체하는 자들과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술과 아편 속으로 도피했다. 내 삶은 내 방의 네 개의 벽 안에서 흘러갔으며 지금도 흘러간다. 내 모든 삶이 그 네 개의 벽 안에서 흘러갔다. 나는 필통 뚜껑에 그림을 장식하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내가 필통 장식사라는 우스꽝스러운 직업을 선택한 것은 오직 나 자신을 둔감하게 만들고, 어떻게든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는 집이 도시 외곽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는 이상하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자극하는 강력한 힘으로 도피함으로써 삶의 괴로움과 고통해서 놓여날 수가 있다. 


정적은 다른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내게 말을 걸었다. 


불행이 나를 따라다니며 결코 놓아주지 않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또한 어떤 비밀스러운 죄책감과 함께 설명이 불가능한 기쁨의 감정, 독특한 만족감이 내 안에 차올랐던 것도 사실이다. 


내 방은 이미 하나의 관이 아닐까? 


내가 살아온 삶이란 것이, 지금 목욕탕 벽에서 펄럭거리는 그림자처럼, 목적도 방향도 없는 무의미한 헤맴에 불과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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